“자다 깨 맨손으로 방범창을 뜯었습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

건물에서 불길이 치솟는 모습(좌, KBS 보도화면). 급박했던 화재 현장에서 김도현 상병은 신속하게 사람들을 구조했다.(우, 대한민국 육군측 제공)

한밤중 옆 건물에서 갑작스레 불이 났습니다. 치솟는 불길, 짙어지는 연기가 눈앞에 보일 때 우리는 보통 어떤 행동을 할까요. 무서워서 황급히 대피하거나(현재 위치가 위험한 경우), 반대로 무서워서 그 자리에 얼어붙을(현재 위치가 안전하다고 판단될 경우) 겁니다.

그런데 정반대 행동을 한 청년들이 있었습니다. 육군 30기갑여단에서 복무 중인 김도현 상병(22)과 그의 친구의 이야기입니다.

김 상병은 지난 9일 휴가를 나와 충북 청주시 청원구 내덕동 한 주택가에 있는 친구(청주대 학생) 자취방에서 머물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새벽 2시30분쯤 옆 건물 다세대주택에서 3~4번 정도 큰 폭발음이 들려왔습니다. 모두가 잠들어 있었을 시각, 갑작스런 화재에 뛰쳐나온 주민들이 놀라 “불이야” 외치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그 소리에 뛰쳐나온 김 상병과 친구는 옆 건물 사이에서 불기둥이 솟아오르는 것을 보고 주저 없이 달려갔습니다.

바로 119에 신고한 이들은 화재 건물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건물 지하층에서 “살려달라”는 애타는 외침이 들려온 것입니다. 불길에 갇힌 40대 어머니와 10대 딸이었습니다. 삽시간에 불이 번지며 지하층 현관문 쪽으로 연기가 들어오자 나가지 못한 모녀는 밖으로 나 있는 방범창을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패닉 상태에 빠진 모녀를 본 김 상병은 ‘방범창을 열지 않으면 이들을 구출하지 못하겠구나’ 직감했습니다. 아무런 도구도 없었지만, 주저할 겨를조차 없었습니다. 굳게 못 박힌 방범창을 무작정, 온 힘을 다해 흔들고 당겼습니다.

방범창을 맨손으로 뜯어 주민을 구조하는 김 상병. KBS 보도화면 캡쳐

김 상병의 간절함이 통했을까요. 방범창은 결국 뜯어졌고, 모녀는 무사히 구출됐습니다.

김 상병과 친구의 행동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김 상병이 모녀를 구하는 사이 친구는 집에서 소화기를 들고나와 초기 화재 진압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빠르게 번지는 불길은 쉬이 잡힐 기미가 없었습니다. 김 상병은 소방대원들이 오기 전까지 주민들을 최대한 대피시켜야겠다 생각했다고 합니다. 화재 현장에서 어쩔 줄 몰라하며 우왕좌왕하던 10여명의 주민들을 큰길까지 이동시켰습니다. 다행히 그사이 도착한 소방대원들은 빠르게 화재를 진화했습니다.

한밤중 다세대주택에서 벌어진 이번 화재가 큰 인명 피해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김 상병과 친구의 신속하고 적극적인 대처 덕분이었습니다.

김 상병은 11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어떻게 그렇게 침착하고 재빠르게 현장으로 나갔느냐’는 질문에 “불길이 너무 커서 처음에는 몸이 굳고 손이 떨렸다. 그렇게 큰불을 본 건 처음이었다”고 털어놨습니다. 그 역시 ‘보통 사람’처럼 무서움을 느꼈다는 것이겠죠.

그러나 행동은 달랐습니다. 그는 “그럼에도 뛰어가야만 할 것 같은 본능적인 느낌이 들었고 나도 모르게 달려가 상황을 살폈던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맨손으로 방범창을 뜯어낸 것에 대해서도 “이성적인 것보다 본능적인 게 더 컸다”고 덧붙였습니다. 저 불길 안에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무의식적인 행동으로 이어졌다는 ‘겸손한’ 설명이었습니다.

잠시 휴가를 나왔던 김 상병은 이날 부대로 복귀했습니다. 그는 오히려 이번 일을 통해 자신이 배운 게 있다고 했습니다. “전쟁과 같은 큰 재난만 생각해 군인의 역할이 막연했는데, 이번 계기로 국가를 지키고 수호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됐다”는 겁니다.

김 상병의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잊고 있던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지금 우리가 안전히 보내는 일상은 그 안전한 국가·사회를 지키기 위해 당연한 ‘본능’처럼 내 몸을 던지는 김 상병 같은 이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 말입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노유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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