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금요일, 비아 돌로로사를 따라 가보니



유튜브 ‘미션라이프’가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비아 돌로로사’(십자가의 길)를 따라가 봤다. 현지 성지 전문가인 이강근 목사(히브리대 정치학 박사)와 부인 이영란 사모가 지난달 말 직접 촬영하고 설명한 예수의 고난과 죽음, 빈 무덤의 생생한 현장이다. 코로나19로 성지 순례객의 발길이 끊겨 거주민들 외엔 찾는 방문객은 볼 수 없었다. 평소 같으면 순례객들로 붐벼 예수 고난의 의미를 묵상하기가 쉽지 않았다. 영상에서는 한산해진 비아 돌로로사 800m 구간을 차분하게 따라갈 수 있다.

성지 전문가 이강근 목사가 고난주간을 맞아 최근 이스라엘 예루살렘 성묘교회 입구에서 예수 그리스도 고난의 길인 '비아 돌로로사'를 설명하고 있다. 성묘교회 안에는 제10지점부터 14지점이 있다.


‘슬픔의 길’ ‘고난의 길’로 불리는 비아 돌로로사는 본디오 빌라도의 법정에서 골고다 언덕에 이르는 예수의 십자가 수난의 길을 말한다. 이 길에는 각각의 의미를 지닌 14개 지점이 있으며 제10지점에서 제14지점까지는 예수 무덤교회(성묘교회) 내부에 있다.

라틴어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는 비아 크루시스(Via Crucis)라고도 불린다. 이 길은 복음서에 근거한 역사적인 길이라기보다는 순례자들이 만든 신앙적인 길이다. 코스는 14세기 프란치스코 수도사들에 의해 확정된 것으로 알려진다. 오늘날 성지순례자들이 걷는 14개 지점은 18세기에 확정됐다고 전해진다. 이 중 일부는 19세기 이후 고고학 발굴을 통해 확인됐다. 오늘날 비아 돌로로사는 예루살렘 올드시티 안에 있으며 현지의 시장을 통과한다.

비아 돌로로사가 시작되는 제1지점은 예수 그리스도가 재판을 받은 본디오 빌라도 재판정이다. 예수는 이곳에서 심문을 받았고 십자가형이 확정됐다. 재판정은 당시 헤롯왕(헤로디스)이 그의 친구 마가 안토니를 위해 지은 안토니아 성채 내에 있다.

빌라도의 법정 전경. 안토니아의 성채 안에 있다. 이강근 목사 제공


당시 로마 총독부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이름을 딴 가이사랴(카에사리아)에 있었으며, 총독인 빌라도는 유대인 최대 명절인 유월절 기간 자주 발생했던 반(反)로마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와 있었다. 안토니아 성채는 예루살렘 성전이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혹시 모를 유대인들의 시위를 감시하기 위해 로마 군인들이 주둔해 있기도 했다.

제2지점은 로마 군인들이 예수를 채찍질하고 가시관을 씌운 뒤 홍포를 입혀 희롱한 곳이다. 예수는 이곳으로부터 도시 거리를 지나 골고다로 향했으며 수많은 군중이 예수를 조롱했다. 빌라도는 십자가를 매고 나오는 예수를 보고 “보라 이 사람이로다(요 19:5)”라고 했다.

예수 당시 채찍질은 주로 하층민이나 외국인에게 적용되던 형벌이었다. 채찍은 보통 39개의 가죽 가닥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안에는 쇠 구슬이 박혀 있었다. 이 때문에 채찍으로 몸을 때리면 구슬들 때문에 깊은 상처가 생겼다. 어떤 채찍에는 날카로운 뼛조각들이 박혀 있어서 때릴 때마다 살이 찢겨 나갔다.

예수가 지신 십자가는 십자 형태의 형틀이 아니라 십자가의 가로 기둥이었다. 팔을 쭉 편 채 양팔이 십자가의 가로 기둥에 묶인 채 짊어지고 걸어야 했다. 이미 채찍질을 당해 피를 흘리는 상태에서 무거운 십자가 가로 기둥을 지고 수백 미터를 올라가야 하는 길은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제3지점은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가다 처음 쓰러진 곳이다. 지친 상태에서 무거운 십자가 기둥까지 지고 오르니 쓰러질 수밖에 없다.

제4지점은 예수가 슬퍼하는 모친 마리아를 만난 곳으로 알려진다.

제5지점은 구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의 십자가를 골고다 언덕까지 대신 진 곳이다. 성경에 따르면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웠다.”(막 15:21)

제5지점은 구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골고다 언덕까지 대신 진 곳이다. 이강근 목사 제공


제6지점은 베로니카라는 여인이 물수건으로 예수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는 곳이다. 베로니카가 예수의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주자 수건에 예수의 초상이 새겨졌다는 전승이 있다.

제7지점은 예수가 두 번째로 쓰러진 곳이다.

제8지점은 자신을 따라오는 군중과 슬피 우는 여인들에게 예수가 말씀하신 곳이다. 예수는 여인들을 향해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눅 23:28)고 하셨다.

제9지점은 예수가 세 번째로 쓰러진 곳이다.

제10지점은 예수의 옷을 벗긴 곳이다.(요 19:23~24)

제11지점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곳이다.(눅 23:33) 당시 그리스 로마 세계에 살았던 사람들은 십자가형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로마의 정치가인 키케로는 십자가형을 ‘잔인하고 무서운 형벌’로 묘사했다. 십자가형은 노예나 반역자, 강도 같은 최하위층에게만 집행되는 극도로 잔혹한 처형 방식이었다.

십자가에 사용됐던 못은 12~17㎝ 길이의 끝이 가늘고 뾰족한 대못이었다. 이런 대못을 손바닥에 박으면 몸무게 때문에 손바닥이 찢겨 십자가에서 떨어진다. 그래서 손바닥이 아니라 손목에 못을 박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비아 돌로로사 제10지점부터 14지점이 있는 예수님 무덤교회 전경. 성묘교회로도 불린다. 이강근 목사 제공


제12지점은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죽은 곳이다.(마 27:45~51) 예수는 먼저 손목에 못질을 당했고 이어 다리의 뒤꿈치나 복사뼈를 관통해 못이 박혀졌다. 십자가형은 십자가에 달리자마자 사람이 즉사하는 형태가 아니었다. 못질이 주요 정맥을 관통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 사람을 바로 죽이지 못했다.

대신 희생자는 과다출혈이나 탈진, 심장마비로 죽었다. 예수의 직접적 사인도 채찍질이 초래한 출혈과 못 박힘, 그리고 탈수 증세를 동반한 탈진에 의한 죽음으로 추정한다. 요한복음 19장 28절에서 예수는 “내가 목마르다”고 말씀하셨다. 신포도주를 입에 대신 것은 그만큼 탈수 증세가 심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또 십자가에 달린 뒤 6시간 만에 돌아가신 것은 탈진 상태가 상당히 빨리 진행됐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피와 물’(19:34)에 대한 설명도 다양한 생리학적 가능성이 제기된다. 피와 물은 로마 군인이 창으로 예수의 옆구리를 찔러 나온 것이다. 예수가 피와 물을 흘렸다는 것은 그때까지 심장이 뛰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탈수 증세로 십자가에서 의식을 잃고, 이후 창에 의한 과다출혈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인간의 몸은 5ℓ 정도의 혈액을 담고 있다. 여기서 2ℓ를 출혈하게 되면 쇼크가 오고, 3ℓ 이상 될 때는 심장에 보낼 혈액이 부족해 저혈압과 뇌사 상태에 빠진다. 이후 호흡 곤란이 지속하다가 심장이 멈추면서 사망한다.

제13지점은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 예수의 시신을 내려놓은 지점이다. 마태복음 27장 58~59절은 요셉이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주라 명령하거늘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라고 돼 있다. 복음서에 따르면 요셉은 부자로 산헤드린 공회의 일원이었다. 따라서 종과 노예가 있었을 것이며 예수의 시신은 그의 일꾼들이 운반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요한복음은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다”(19:40)고 기록한다.

제14지점은 아리마대 요셉이 자기의 무덤에 예수를 장사 지낸 곳이다. 마태복음 27장 60~61절에는 요셉이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거기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았다고 기록한다.



이강근 목사는 “예수께서 2000년 전 우리를 위해 비아 돌로로사를 가셨다면 이제 우리 자신의 비아 돌로로사를 걸어야 한다”며 “빈 무덤은 부활하신 예수를 증거한다. 오늘 우리와 함께하고 계신 주님을 신뢰하며 신자의 삶을 살아가자”고 말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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