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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 후두 속으로 쓱…광주비엔날레에 울리는 에코페미니즘

제13회 광주비엔날레 르포

지난 1일 광주광역시 북구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제5전시실. 갑자기 컴컴해진 전시실에 심연에서 떠오른 듯 기괴한 형태의 흰색 뼈가 놓여 있다. 제주 해녀들의 숨비소리를 듣곤 그게 후두를 형상화한 거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아차리게 된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면 물 밖으로 나와 내뿜는 휘파람 소리는 그 후두 속으로 끌고 가는 듯한데….
제주 해녀의 숨비소리를 들려주는 네덜란드 작가 펨케 헤레그라만의 사운드 아트 설치 작품.

제13회 광주비엔날레에 ‘에코 페미니즘’이 메아리친다. 1일 개막해 39일간의 대장정에 들어간 현장을 다녀왔다. 데프네 아야스(터키)와 나타샤 진발레(인도) 공동감독은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을 주제로 40개국 69명(팀)을 초청해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인류의 길을 묻는다.

전시는 이성과 합리성, 현재의 권력구조에 의문을 던진다. 보다 정확히는 서구 세계의 인간중심성이 아닌 서구 세계의 남성 중심성에 문제를 던지며 여성 억압과 자연 억압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에코 페미니즘의 입장을 취하는 것 같다. 소주제를 ‘산, 들, 강과의 동류의식’ ‘행동하는 모계 문화’등으로 분류한 것에서 그런 인식을 엿볼 수 있다.
필리핀 작가 파시타 아바드의 설치작품. 예멘 여행 중 집집마다 내걸린 퀼트 가리개에 영감을 얻어 제작한 작품이다. 이번 비엔날레에는 이처럼 여성적 공예인 자수, 뜨개, 바느질 등을 활용한 작품이 많이 나왔다.

전시는 서구 제국주의, 자본주의에 의해 파괴된 제3세계 및 원주민의 전통을 살려 내는데 집중한다. 주제에서 생사의 순환, 치유의 문화, 공동체 등이 강조되고, 형식에서 모더니즘적인 회화보다 자수, 카펫, 걸개, 매듭 등 공예 형식의 선호가 뚜렷하다. 회화나 첨단 영상이라도 제의 형식을 띠는 게 많다. 문경원 작가가 일제 수탈의 장소였던 방직공장을 시각화하듯 직조한 카펫을 멍석처럼 깐 것이 그런 예다. 일종의 상상의 정원인 이곳에선 각종 행사가 열려 수탈의 의미를 전복한다. 노르웨이 사미족 출신의 오우티 피에스키는 매듭으로 짠 샹들리에 같은 작품을 내놓았다. 이 ‘삼차원 회화’는 여성들의 자기 결정권과 연대감을 시사한다. 인도 작가 아르피타 싱이 출품한 회화도 고향 벵골 농촌 여성들이 놓던 전통 칸타 자수에서 영감을 얻었다. 필리핀 작가 파시타 아바드 천과 바느질 기법을 차용한 설치작품을 선보였다. 한국의 전통적인 민화 병풍들도 들어왔다. 국립광주박물관을 비엔날레 장소로 처음으로 끌어들인 것도 그런 맥락으로 이해가 된다.

제주 해녀의 숨비소리를 들려주는 네덜란드 작가 펨케 헤레그라만의 사운드 아트 설치 작품은 올해 광주비엔날레가 던진 거대한 물음표에 스스로 내놓은 해답 같다. 지구적인 재앙의 담론에 대한 대안으로 바다를 공동의 일터로 사용하는 제주 여성의 공존의 지혜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비엔날레를 보고나면 “에코페미니스트들은 돌봄, 양육, 직관성과 같이 전통적으로 여성과 연관되는 속성들이 문화적 산물이라기보다 여성의 실제적인 경험들의 산물이라고 믿는다”는 페미니즘의 권위자 로즈마리 통의 주장을 떠올리게 된다.

디스플레이는 아쉽다. ‘행동하는 모계 문화’를 내세운 제5전시실을 제외하면 출품작들이 소주제와 상관없이 동어반복 되는 느낌이 강하다. ‘합리주의적 분류’에 저항하듯 ‘마구 늘어놓는’ 방식은 메시지를 명료하게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다. 뉴질랜드 작가 비비안 린이 설치한 직물 기둥은 남성성을 상징하는 수직의 기둥에 여성의 머리카락과 뜨개실을 입혀 강한 인상을 주지만 설치 공간에 협소해 여운을 주지 못한다.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호랑가시나무아트폴리곤에 설치된 칠레 작가 파트리샤 도밍게스의 작품 '어머니 드론'.

그래서 메인 전시장인 비엔날레전시관보다는 국립광주박물관, 호랑가시나무아트폴리곤 등 별도 장소에 마련한 전시가 더 울림이 있다. 호랑가시나무아트폴리곤은 1904년에 정착한 서양 선교사들의 사택을 개조한 복합문화공간인데 작품들이 작은 방마다 단독 전시돼 몰입도를 높인다. 노르웨이 출신 시셀 톨라스가 냄새를 입힌 현무암 돌을 활용해 4·3사건을 겪은 제주 사람의 일기를 읽고 애도하게 하는 방식은 독특하다. 칠레 작가 파트리샤 도밍게스는 산불 피해 동물보호소에서 자원 봉사한 경험과 아마존 파괴 반대 시위를 드론으로 감시하는 칠레 경찰 문화를 ‘어머니 드론’이라는 제목으로 중첩시킨 설치작품은 즉각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광주광역시=글·사진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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