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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의 시대, 케테 콜비츠가 제주서 전하는 화합의 메시지

포도뮤지엄 개관 기념전 ‘아가, 봄이 왔다’

케테 콜비츠, <아이와 잠든 여인 > 1929, 목판 , 29.8 x 35.9 cm

젊은 여성이 전등 아래 책상에 앉아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연약하지만 자의식이 강해 보인다. 그로부터 40년이 흐른 뒤 70세에 그린 자화상은 얼굴이 전혀 다르다. 신산한 세월을 헤쳐오며 세상에 맞서온 ‘투사 예술가’의 강인함이 묻어난다. 그 사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 SK 자회사 휘찬이 제주 서귀포시에 리모델링한 포도뮤지엄이 4월 24일 문을 열어 전시장을 찾았다. 개관 기념으로 선보인 케테 콜비츠 전 ‘아가, 봄이 왔다’는 이처럼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두 자화상을 통해 독일의 민중 미술 판화가이자 조각가 케테 콜비츠(1863∼1945)의 삶과 그것이 예술세계에 미친 영향을 가늠해보며 관람을 시작해도 좋을 거 같다.

“당신 아들이 전사했습니다.”

둘째 아들 피터는 겨우 18세에 세계 1차 대전에 참전했다. 하지만 한 달 만에 그의 죽음을 알리는 통지가 도착했다. “네 유품들을 천으로 덮었다. (중략) 흰 자작나무들이 놓여 있구나. 네 침대 옆에. 아가, 봄이 왔다.”

전시 제목은 아들의 전사 통지서를 받은 뒤 콜비츠가 내뱉은 독백에서 따왔다. 이후 그는 ‘전쟁' 연작 판화를 제작하며 전쟁을 반대하는 어머니의 대명사가 됐다.
케테 콜비츠, 폭발 <농민전쟁>연작의 다섯 번째 작품, 1902-1903, 에칭, 51.5 x 59.2 cm

콜비츠는 베를린여자예술학교에서 수학하며 막스 클링거의 영향을 받아 판화가의 길을 걸었다. 1893년 초연된 게르하르트 하웁트만의 연극 ‘직조공들’을 보고 영감을 받은 뒤 1897년까지 6점의 ‘직조공 봉기’ 연작을 시작했다. 이어 ‘농민 전쟁’ 연작으로 주제를 발전시켰다. 이처럼 노동자·농민·빈민 등 사회주의적 주제의 연작을 표현주의적 기법에 담아오던 작품 세계는 아들의 죽음을 계기로 반전으로까지 확장된 것이다.

이번 전시는 포도뮤지엄 개관전 ‘너와 내가 만든 세상’의 한 축으로 마련됐다. 전시는 2017년에 설립된 티앤씨재단(대표 김희영)이 기획했다. ‘다른 생각’에 대한 이해와 포용을 뜻하는 아포브(APoV)를 주제로 전시, 출판, 공연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한다. 이번 전시 역시 그 일환이다. 가짜뉴스와 왜곡된 정보가 편견과 혐오를 부추기며 인류에 해악과 고통을 남기는 현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용서와 화합의 메시지를 던지고자 기획된 전시에 콜비츠가 초대된 것이다. 콜비츠는 전투 현장 그곳의 참상을 고발하지 않는다. 대신 어린아이들을 안고 행복해하는 어머니, 아이들을 사로잡는 죽음, 남편을 잃고 쓰러진 과부 등 남은 자들의 고통과 슬픔을 표현함으로써 전쟁의 해악을 고발해 더욱 심금을 울린다. 중국 아트미아재단 소장 판화 32점과 청동 조각 1점이 나왔다. 한국에서 콜비츠 작품을 이렇게 대거 볼 수 있기는 흔치 않는 기회다. 전쟁과 모성 외에도 지붕 아래서의 노동자들의 회합, 거리에서의 봉기 등 다양한 주제들이 다양한 칼맛으로 표현됐다. 육안으로 봐야 그 섬세한 차이를 실감할 수 있다.
권용주 작가,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

전시의 두 번째 축은 한·중·일 동시대 작가 8명을 초청한 같은 주제의 기획전이다. 한국에선 강애란, 권용주, 성립, 이용백, 최수진, 진기종 등 6명이, 일본에선 쿠와쿠보 료타에, 중국에선 장샤오강 등이 참여했다. 강애란은 미국의 흑인 인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 ‘안네의 일기’의 주인공 안네 프랑크 등 현대사에서 차별과 혐오에 맞서싸운 사람들을 전자책 형태로 만들어 전시했다. 성립은 인터넷에서 떠도는 인물들을 합성한 드로잉을 선보이며 익명이 갖는 위력을 꼬집었다. 시각적으로 가장 스펙터클한 작품은 권용주 작가의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이다. 걸어가는 사람의 목 위로 얼굴 대신 길게 굴뚝이 솟아 있고 거기서 연기가 나는 인체 조각이다. 중국 현대의 창백한 지식인을 표상하는 회화로 잘 알려진 쟝샤오강은 이번에는 설치작품을 내놓았다. 쿠와쿠보 료타에는 야구공, 빨래집게 등 일상의 물건을 늘어놓은 뒤 그 사이를 미니어처 기차가 지나가며 만들어내는 그림자 극(劇)을 선보이고 있다.
쟝샤오강, <기억의 서랍>

예술성이 있으면서도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이 됐다. 블록버스터 전시처럼 친절한 설명을 곁들인 것도 특징이다. 1년간 상설 전시되며 개관 기념으로 5월 말까지는 무료다. 제주=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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