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단독] “전 살고 싶습니다” 코로나로 무너진 83년생 혜진씨


지난 2월 1일 겨울 강 바람이 부는 한강대교 위에 한 여성이 홀로 서 있었다. 다리에서 내려다 본 한강은 유난히 검고 깊어 보였다. 한강은 김혜진(가명·38)씨를 순식간에 집어삼킬 것 같았다. 당시 혜진씨의 몸과 마음은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다섯 차례 이상 극단적 시도까지 한 뒤였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월세방에서 수면제를 한 움큼 삼켰다가 눈을 떠보니 병원인 적도 있었다.

서울 용산구 서울역노숙인자활센터에서 10일 국민일보 기자와 만난 혜진씨는 “모진 목숨은 죽어지지도 않았다”며 과거를 떠올렸다. 혜진씨가 한강을 찾기 전날 집주인은 “방을 빼라”고 했고, 수중엔 5만원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한강이라도 한 번 보고 세상을 떠나자’라는 생각에 그는 대구에서 무작정 서울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하지만 막상 다리 위에서 한강을 마주하자 겁부터 났다. 혜진씨는 결국 뛰어내리는 대신 날이 어두워지면 걸어 들어가자고 생각하고 다리 아래로 내려왔다. 그제서야 한강변을 걷는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표정들은 하나같이 밝고 행복했다. 해 질 무렵까지 혜진씨는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서울역 주변에 있는 노숙인재활센터 홈페이지를 우연히 보게 됐다. 혜진씨는 “그래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맘 속 깊은 구석에 남아있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혜진씨는 센터로 전화를 걸어 “지금 자살하려 하고 있다.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화를 받은 센터 관계자는 “도와줄 테니 내가 있는 곳으로 오라”고 권유했다. 남은 돈이 없어 갈 방법이 없었던 혜진씨를 대신해 센터에서 경찰에 “자살하려는 사람이 있다”며 구조 요청을 보냈다. 이후 용산경찰서 한강로지구대에서 혜진씨를 찾았고 그를 가까운 순천향대 서울병원으로 데려다줬다.

센터의 도움을 받은 혜진씨는 현재 보증금 없이 월세 25만원에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방을 얻어 혼자 살고 있다. 손목의 상흔은 치료를 받아 아물었지만 병원에서는 후유증이 평생 갈 것이라고 했다. 여전히 우울증이 심하고 충동적이라는 진단을 받아 정신과 치료도 받고 있다.

1년 전만 해도 혜진씨는 자신에게 이런 일이 닥칠 것이라는 예상은 하지 못했다. 지난해 2월 대구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확산되면서 혜진씨 인생도 180도 달라졌다. 잠시 지나갈 줄 알았던 바이러스는 혜진씨 직장을 빼앗았고 ‘코로나19 감염 진앙지 출신’이라는 사회적 낙인으로 다른 지역에서의 취업도 어려워졌다. 갑자기 일자리를 잃은 시민들이 몰리면서 편의점 아르바이트 자리 하나에도 7~8명과 경쟁해야 했다. 수개월 동안 구직 활동을 했지만 일자리는 없었다. “내 몸 하나 간수 못하겠나”라고 자부했던 혜진씨의 삶은 그렇게 무너졌다. 지난해 코로나19 집단 감염 이후 1년 넘게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혜진씨에게 재난은 현재진행형이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