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유전자 편집하는 ‘크리스퍼 가위’ 생명 경시 초래, 적절히 통제해야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성산생명윤리연구소·생명운동연합, 22일 세미나 개최

강민석 선임기자

가장 대표적인 유전자 편집 기술로 알려진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는 2012년 개발된 후 각종 동식물의 형질 개량과 질병 치료 등에 응용되고 있다. 2018년 10월 중국에서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를 초래하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감염되지 않도록 HIV 수용체에 변이를 유도한 쌍둥이가 출산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와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생명운동연합은 22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의 생명윤리적·법률적·의학적 문제점을 살피는 세미나를 개최했다.

류현모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분자유전학 교수는 ‘유전자 가위에 대한 생명윤리적 고찰’이라는 제목으로 발제했다. 류 교수는 “유전 질환과 난치성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유전자 편집 기술을 무조건 반대해선 안 되지만 여러 이유로 적절히 통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전자 편집 기술의 안전성과 정확성이 아직 충분히 확보되지 못했다”며 “치료가 아닌 유전자의 개선과 증진을 목적으로 유전자 편집 기술을 사용하는 것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또 유전자 편집 기술을 통해 우월한 유전자를 갖게 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사회적 불평등이 생길 수 있고, 전 세계적으로 유전자 편집 기술에 대한 규제가 없는 만큼 이로 인한 부작용도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여러 유전자를 섞은 새로운 생명체가 탄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강민석 선임기자

류 교수는 기독교 생명윤리의 방향에 대해 “피조물의 청지기로서 생명의 비밀을 알아가는데는 참여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이 생명을 종류대로 창조하시고 생명들이 뒤섞이는 것을 금하신만큼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해 다른 생명체의 유전체를 짜깁기하는 것은 안된다”고 말했다.

류 교수는 신학자와 전문가 간의 이슈 공유 및 선제적 방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과학자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의 이슈를 신학자에게 설명하고 신학자는 성경적 대응 방안을 크리스천 과학자와 목회자에게 제시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목회자는 교회, 과학자는 과학계에서 기독교적 대응 방안을 세상에 전파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소영 미국변호사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의 법률적 문제점에 대해 발표했다. 정 변호사는 “비혼출산을 한 일본인 연예인 사유리는 푸른 눈의 아이를 갖고 싶어 특정 유전자를 가진 정자를 선택했다고 전해진다”며 “크리스퍼 가위로 한 일은 아니지만 스스로 유전자를 선택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와 관련된 쟁점은 생명윤리, 법, 철학적 부분인데 이들 분야는 나뉘어 논의하기 어려울만큼 서로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며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의 사용 범위 허용에 대한 국제적 규범이 필요함에도 아직 제대로 세워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정 변호사에 따르면 한국은 2014년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생명윤리법)을 제정해 인간 배아나 유전자를 취급하는 데 있어 지켜야 할 생명윤리 방침을 제시했다. 생명윤리법 제47조에 의하면 인간의 유전자를 다루는 활동은 오직 난치병 치료 연구에만 제한했다. 다만 실제로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해 난치병을 치료하더라도 이를 배아 난자 정자 태아의 유전자에는 직접 적용할 수 없도록 명시했다.

그는 “한국 생명윤리법에서 정자 난자 등의 유전자 변형은 치료 목적이라 할지라도 허용하지 않은 것은 매우 잘한 일”이라며 “그러나 연구 목적으로 인간생식 세포의 사용을 허용한 점에선 여전히 윤리적 논란을 피할 수 없다. 이 부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강민석 선임기자

이외에 김우진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박사, 강성호 고려신학대학원 기독교윤리학 외래교수는 의학적·윤리적 관점에서 본 크리스퍼 가위의 문제점에 대해 토론했다.

3개 단체를 대표해 이상원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상임대표는 ‘유전자 편집 기술의 바른 사용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라는 제목으로 성명에서 “유전자 편집 기술은 우생학적인 유전자 증강의 목적으로는 어떤 경우에도 사용돼선 안 되며 특히 유전자 치료는 성공률이 극히 낮은 만큼 인간을 대상으로 사용되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유전자 변형을 통한 식량 문제 해결보다 전통적 농경 방법을 개선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며 ”생태계에 근본적 교란을 일으킬 우려가 있는 자의적 유전자 조작을 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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