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 ‘이다영·재영 학폭’ 딜레마… 선수등록 철회할 듯

배구단장 인터뷰 “선수등록 안하면 오히려 자유계약 선수로 풀려 징계 못해”토로

29일 입장문 발표하려다 오해만 커질까 돌연 취소
학교폭력 비판만 반짝 비등···진상조사 회피하는 협회와 학폭근절 노력 없는 사회분위기도 문제

이재영 이다영 자매.연합뉴스

“쌍둥이 자매 코트에 복귀하면 당장 보험 해지한다.”

“차라리 1년, 2년 정지시키지. 4개월만에 복귀시켜려고 무기한 출전정지 조치 내린 거냐. 배구팬과 국민을 호구로 보는 흥국은 불매가 답이다.”

학교폭력 논란으로 무기한 배구경기 출전이 정지되는 중징계를 받은 이재영·다영(25) 쌍둥이 자매의 배구 선수 등록을 둘러싸고 흥국생명을 성토하는 네티즌들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도하 언론들도 두 자매의 복귀를 사실상 기정사실화하려는 수순으로 잘못을 뉘우치기도 전에 쌍둥이 자매를 감싸려든다며 쌍지팡이를 들고 나서는 모양새다. 그만큼 지난 2월 폭로된 자매의 중학생 시절 학교폭력 행위에 대한 사회적 반감이 얼마나 큰 지를 보여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체육계는 물론 연예계 등 다른 분야로 피해자들의 폭로가 이어졌다. 모 방송은 고교시절 학폭전력이 폭로된 드라마 주인공을 바로 교체하기도 했다.

그런데 28일 하루종일 이런저런 궁금증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올해로 창단 50년을 맞은 유구한 배구 역사의 흥국생명이 저렇게 비등한 비판들을 무릅쓰고 선수등록을 강행하려는 이유는 뭘까. 시간이 지나면 여론이 잠잠해지겠거니, 치밀하게 계산한 끝에 내린 결론일까.’ 자칫 보험소비자들의 불매운동이 들불처럼 번져 제2의 분유업체 사태로 이어지는 건 아닐지 ‘노파심’도 작동했다.

고심 끝에 지난 22일 한국배구연맹(KOVO) 이사회에서 30일 마감일까지 선수 등록 계획을 밝힌 김여일 흥국생명 배구단장 휴대전화 번호를 찾았다. 기자의 취재파트가 체육분야가 아닌 금융쪽이지만 오지랖을 한 번 떨어 보기로 했다.(넓게 보면 흥국생명은 내 취재분야다. 게다가 불매운동이 금융업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잠재성을 가지고 있음을 생각하면 꼭 취재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최근 핫해진 여자배구 관객으로서의 궁금증도 작용했다).

김여일 흥국생명 배구단장.뉴시스

김 단장도 오랜만에 걸려온 전화에 단순히 안부를 묻는 차원은 아님을 눈치 챈 듯 했다. 그래서 거두절미하고 용건부터 건넸다.

“쌍둥이 자매 배구선수 등록 강행했다가 대대적인 불매운동 벌어질까, 분위기가 심상찮네요. 네티즌들은 트럭까지 동원해 반대 시위까지 시작했더군요.”

김 단장은 “배구 선수 등록을 두 자매의 복귀로 해석하는 걸 이해할 수 없다”며 “두 선수를 배구연맹에 등록할 수밖에 없는 것은 고민 끝에 나온 결정”이라고 딜레마에 빠진 심정을 토로했다.

“선수 등록을 하지 않게되면 자유계약선수(FA) 신분이 돼 오히려 다른 팀으로 마음대로 복귀할 수 있게 됩니다.” 등록하지 않으면 구단이 두 선수를 징계할 권한마저 사라지게 된다며 따라서 구단의 선수보유권한을 이용한 불가피한 절차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흥국생명이라는 우리 안에 두고 자숙하고 반성을 시키려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김 단장은 선수 등록추진이 당초 구단이 제시한 무기한 출전정치 원칙을 스스로 어기는 것처럼 비춰지는 데 대해 “학폭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과와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복귀시점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두 자매가 피해 주장자를 상대로 고소한 것은 적반하장 아니냐는 비판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에 김 단장은 “자필 사과문 작성을 요구해서 그렇게 했는데 성의가 없다는 지적이 많아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용서를 구하려 했는데 만나주지 않았다”고 이유를 덧붙였다. 경찰에 고소한데 대해서는 피해자 주장이 사실이 아닌 부분도 있는데다 만나주지 않아 해명할 방법이 고소밖에 없었던 것 같다고 했다.

김 단장은 여론을 더 악화시킨 이다영의 해외 이적 추진에 대해서도 피해자에 대한 사과문제 해결과 대한배구협회의 이적 동의가 떨어져야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저간의 사정을 입장문을 통해 밝히려 했지만 여론의 불신이 너무 강해 오해만 더 키울까봐 그만뒀다고 토로했다.

김 단장은 29일 오전 통화에서 마감시한인 30일 신규시즌 선수 등록을 예정대로 할지 고민이 많다고 말해 결국 철회쪽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트럭시위 등 팬들의 여론이 악화된 상황에서 선수등록을 철회해 FA로 풀리더라도 다른 구단으로 갈 수 있겠느냐며 자포자기 심정까지 내비쳤다. 전날 저녁 피해자들이 MBC에 출연해 구단의 선수등록 추진에 대해 “이젠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며 분노를 표출한 것도 밤 사이 구단측 기류변화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평생 피해자의 영혼을 갉아먹는다는 어릴적 학교폭력은 두 자매의 학폭 논란을 계기로 우리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아쉬운 것은 우리사회가 폭로가 드러날 때마다 비난과 고성은 오가지만 학폭 근절을 위해 어떤 가시적인 조치가 취해져 왔는지 딱히 성과는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불신이 이렇게까지 커진 것도 팬들 눈치를 보며 배구협회 등 체육계에서 진상을 조사해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은 어른들의 책임도 크다는 생각이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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