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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 알바해요”… 잘 나가던 항공사 승무원은 ‘N잡러’가 됐다

[코로나로 N잡 내몰린 사람들]


“언니, 분양사무소 알바 해볼래?”

한서연(가명)씨가 지난 4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당장 할게.” 서연씨의 제안에 동료들은 다들 하겠다고 나섰다. 서연씨와 동료들은 국내 대형 항공사 소속 30대 승무원들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여행 수요 급감으로 항공사들이 극심한 타격을 입으면서 승무원 순환근무가 일반화됐다. 서연씨는 지난 1년간 봄에 한 달, 가을에 한 달 단 두 달을 일했다.

근무 시간이 줄어든 만큼 손에 쥐는 돈도 줄었다. 기본급이 낮고 수당과 상여금 비중이 높은 승무원 급여 구조상 서연씨가 받는 돈은 평상시의 60%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당장 한두 달 버틸 수는 있었지만, 자금 사정이 어려운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다.

동료 중 한 명은 지난해 3월 대출을 받아 부모님께 집을 사드렸다. 매달 받는 월급에서 지출을 줄이면 힘들지만 이자는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두 달 뒤 코로나19로 항공사들이 휴업을 시작했다. 생활비조차 감당하기 버거운 상태가 이어지면서 ‘N잡’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N잡이란 2개 이상의 수를 뜻하는 ‘N’과 직업을 뜻한 ‘잡(job)’이 합쳐진 신조어다. 경제적 자유를 위해 수입을 늘리는 젊은 세대의 직업관을 보여주는 단어였지만, 코로나시대 N잡은 일종의 ‘생계형’이다. 대부분 코로나19 직격탄을 입은 사업장의 근로자들은 기존 직장의 ‘겸직 금지’ 근로 계약에 묶여 코로나19로 일감이 줄어든 상황에도 구직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고 있다.

결혼은 했지만 아직 자녀가 없는 서연씨는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먼저 분양사무소 안내데스크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서연씨는 자리가 나자마자 동료 2명을 소개했다. 서연씨는 “사실상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으로 지내는 동료들도 있었는데 대출 이자부터 생활비, 아기 육아비까지 코로나로 갑자기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며 “분양사무소 알바 얘기를 꺼내자 ‘당장 하겠다’고 한 동료들이 여럿 있었다”고 말했다.

서연씨와 동료들은 소위 ‘4대 보험(국민연금·건강보험·고용보험·산재보험)’이 가입되지 않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분양사무소 안내데스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고 했다. 그마저도 지난 3월 고용노동부가 소득이 줄어든 승무원 유급 휴직자가 일용근로(1개월 미만)나 단시간근로(주 15시간 미만)로 추가 소득이 발생해도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열어주면서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구할 수 있게 됐다. 서연씨는 카페나 식당 아르바이트로 최저 시급을 받는 다른 동료들보다는 자신의 상황이 나은 편이라고 했다. 국민일보는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적 타격 탓에 N잡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었던 이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N잡의 굴레… 더 아팠던 불안정 노동자
지난해 코로나19 타격으로 경영 위기를 맞는 기업들이 양산되면서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 예산은 2019년 대비 34배 늘어난 2조2779억원으로 집계됐다. 총 7만2350개 사업장에서 77만3086명이 지원을 받았다. 지원 사업장과 인원 수도 각각 2019년 대비 48배, 25배 증가했다.


고용유지지원금은 매출 감소 등으로 고용조정이 불가피하게 된 사업주가 인원 감축 대신 휴업이나 휴직 등으로 고용유지 조치를 할 경우 필요 비용의 3분의 2 수준까지 정부가 지원하는 제도다. 항공사처럼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업종들의 경우 특별고용지원 대상으로 선정돼 필요 비용의 90% 수준까지 정부 보조금이 주어졌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고용주는 휴업 중인 근로자에게 통상적으로 평균임금의 70% 수준의 휴업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고용유지지원금은 경영자가 지급해야 할 이 수당을 일부 보전해주는 방식이다. 개별 근로자의 입장에선 임금 감소 등 경제적 타격을 온전히 피할 수는 없다. 실업을 막고 근로자의 경제적 타격을 완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 제도다.

그마저도 정부 보조금 지급 제외 대상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얘기다. 초등학교 방과 후 컴퓨터 강사인 박진화(가명·47)씨에게 이 같은 혜택은 ‘그림의 떡’이었다. 계약직, 임시직 같은 불안정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코로나19의 충격을 고스란히 떠안았다. 진화씨는 코로나19 이후 3번째 직업을 준비 중이다.

진화씨는 1년에 한 번씩 학교 측과 계약을 맺는 비정규직 노동자다. 학교에서 걷은 수강료로 급여를 받고 있었다. 지난해 2월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지자 학교는 방과 후 수업들을 잠정 중단했다. 갑작스레 진화씨의 수입도 끊기게 됐다. 오랫동안 맞벌이 부부로 살아온 진화씨는 중학생 두 아들의 학원비 등 생활비를 벌고 있었다. 비슷한 시기 자영업자인 남편도 코로나19로 수입이 줄어들었다. 손을 놓고 있을 수 없었다. 진화씨는 곧바로 대형 물류센터 택배 분류 일을 했다. 1년 동안 전혀 다른 일을 하며 버티고 있었다.

그러다 지난 5월 코로나 상황이 나아지는 듯 하자 학교에서 다시 진화씨에게 연락이 왔다. 원래 하던 방과 후 컴퓨터 강사 일을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물류센터 일을 그만두고 다시 학교에 왔지만 끝날 것 같았던 코로나는 다시 확산됐다. 이달 초 코로나19 거리두기가 4단계로 격상되면서 방과 후 수업도 기약 없이 중단됐다. 처음에는 긴급돌봄을 신청한 맞벌이 가정 아이들이 오전에 등교하면 아이들의 원격 화상수업을 보조하는 일을 맡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 중 확진자가 나오면서 그마저도 중단됐다. 진화씨는 현재 학습지 교사 일을 알아보고 있다.

증식하는 N… 쓰리잡 넘어 포잡도
코로나로 N잡은 부업 수준을 넘어 쓰리잡, 포잡으로 늘어나기도 했다. 하도급업체, 공기업 자회사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그런 경우다. 줄어든 수입을 어떻게든 메꾸기 위해서는 자투리 시간에도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한 자동차 대기업의 2차 협력업체에 다니는 40대 가장 최원재(가명)씨의 하루는 4시간짜리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시작한다. 코로나19 여파에 반도체 칩과 자동차 부품 등의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리면서 원재씨의 회사도 큰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휴업 상태가 늘어나면서 급여도 월 200만원 밑으로 떨어졌다. 원재씨는 휴업 날 4시간씩 세 타임으로 시간을 쪼개 아르바이트를 한다.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오후에는 쿠팡 배달 아르바이트를 한다. 저녁 시간에는 배달의민족 배달 아르바이트를 한다. 본업까지 합치면 총 포잡, 즉 4개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 대기업 1차 협력업체도 2차 업체들보다는 낫지만 마찬가지로 사정이 어렵다. 김진우(가명·50)씨는 일주일을 정상근무하면 다음 일주일은 일을 쉰다. 휴업기간은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이 지급되지만 정상근무 때보다는 급여가 낮다. 코로나19 이후 진우씨의 총 급여는 월 300만원이 넘었지만 210만~220만원 정도로 줄어들었다. 매달 100만원가량 임금이 줄어든 것이다. 진우씨는 휴업 주에는 줄어든 수입을 메꾸기 위해 인력사무소로 향한다. 건설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을 하기 위해서다.

기존에 받던 월급이 넉넉하지 않았던 이들조차 코로나 타격을 입었다. 한 공기업 자회사에서 시설관리자로 일하는 60대 이정호(가명)씨도 휴업 일수가 늘어나면서 월 200만원대 중반 정도 되던 급여가 100만원대 후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회사는 사무직 재택근무 확대로 코로나19 이전처럼 시설 관리를 자주 할 필요가 없다며 휴업 일수를 늘렸다. 같은 이유로 청소노동자들의 휴업 일수도 늘어났다.

정호씨는 휴업 날 지인을 통해 집수리 현장에 가서 일을 하거나 인력사무소를 통해 건설현장 일용 근로를 하는 방식으로 줄어든 수입을 메꾸고 있다고 했다. 정호씨의 동료들도 대리기사, 택배 아르바이트, 음식점 서빙 아르바이트 등 다양한 N잡을 하고 있다. 여성 청소노동자들의 경우 대부분 음식점 서빙 아르바이트를 본업과 병행하고 있다.

은퇴를 앞둔 나이에 현장 일을 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주변에서는 ‘수입이 줄어든 만큼 아껴서 쓰면 되지 않나’라는 말도 한다고 한다. 정호씨는 “고정 지출이 있는 상황에서 줄어든 급여로는 도저히 생활을 할 수 없어 다른 임시 일터를 찾는 것”이라며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이 나온다지만 기존에 받던 월급보다 턱 없이 부족하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올해도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지난 6월까지 올해에만 7506억원의 고용유지지원금이 지급됐다. 2019년 총 고용유지지원금의 25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총 3만7158개의 사업장이 지원을 받아 이미 지난해 지원 사업장 수의 절반을 넘어섰다. 지원 인원 수도 27만2708명에 달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코로나 이전부터 심화되고 있던 ‘N잡’ 증가 추세가 코로나발 경제적 타격으로 더욱 가속화되는 상황”이라며 “일반적 고용관계로 묶이지 않아 사용자가 특정되지 않는 특수고용노동자,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들의 경우는 고용유지지원금 대상에서 제외돼 피해가 더 극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을 고용유지 지원 대상에 포함시키기 위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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