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딸아 잘있지? 어딨니?”…실종 그날, 시간이 멈췄다

기사와 무관한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그 모습 그대로 돌아올 것만 같은데….”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날, 평소처럼 집을 나선 뒤 돌아오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는 실종 아동은 지금도 꾸준히 생겨난다. 20년 넘는 세월이 흐르도록 찾지 못한 실종 아동은 660여명이 넘는다.

사라졌던 아이들의 나이가 중년에 접어들 만큼 긴 시간이 흘러도 그 가족들의 시간은 아이와 헤어진 그 날에 멈춰 있다. 이들은 멈춰버린 그 시간을 어떻게 살아내고 있을까.

국민일보는 지난 23일 장기 실종아동 두 가족을 만났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큰딸 지영이…조금이라도 몸 성할 때 만날 수 있길”
정지영씨(44·당시 만 3세)는 지난 1980년 3월 30일 서울 중구 신당동 자택 앞에서 실종됐다. 양쪽 새끼손가락이 굽고 왼쪽 눈썹과 눈 사이에 실밥 흉터가 있다. 실종아동찾기협회 제공

“그날은 이른 아침부터 가게 진열장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오전 10시쯤 아침밥을 먹이려고 아이를 불렀죠. 늘 집 앞에서 놀던 아이니까. 당연히 집 앞에서 놀고 있겠거니 생각했는데….”

평범한 일요일 아침이었다. 빨간색 원피스를 입고 슬리퍼를 신은 채 집 앞에 놀러 나간 정지영(44·실종 당시 3세)씨는 1980년 3월 30일 오전 8시쯤 집을 나선 뒤 실종됐다.

그날은 서울에 이사 온 지 15일째 되던 날이었다. 본래 경기 파주시에서 남편, 두 아이와 함께 거주하던 어머니 이순임(70)씨는 1980년 3월 16일 친정이 있던 서울 중구 신당동으로 거처를 옮겼다. 딸 아이 실종 당일, 구멍가게 하나를 운영한 이씨 부부는 아침 가게 진열장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침밥 먹을 시간이 지나도 아이가 돌아오지 않자 부부는 집 근처를 샅샅이 뒤졌다. 동네 어디에도 아이의 흔적은 없었다. 경찰에 실종신고를 하면서도 어머니 이씨는 지영씨가 저녁이 되면 돌아올 거로 생각했다. 이사 오기 전에도 외가에서 자주 시간을 보냈던 딸은 동네 지리를 잘 알고 있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아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실제 당시 딸 지영씨는 부모 이름과 집 주소, 전화번호까지 알고 있었다. 때문에 집으로 연락이 올 거라는 기다림이 계속됐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지영씨와 관련된 연락은 없었다. 가족은 전단지를 만들어 전국 곳곳을 찾아다녔다. 서울 시내 보육원을 뒤지고,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무속인을 찾아가기도 했다. 큰돈을 주고 바다로 나가 배 위에서 굿도 했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1988년쯤 지방의 한 식당에 지영씨와 비슷한 아이가 있다는 제보를 받기도 했다. 어머니 이씨는 곧바로 그곳을 찾아갔지만, 지영씨를 찾진 못했다. 이씨는 “지영이는 양쪽 새끼손가락이 안으로 휘어 있고, 눈썹 옆에 서너 바늘 꿰맨 자국이 있는데 그게 없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지영씨가 실종된 지 41년이 흘렀다. 지영씨를 잃어버렸을 당시 갓난아이인 둘째를 업고 전국을 돌던 이씨의 몸은 예전 같지 않다. 하지만 긴 세월 딸을 그리워하는 마음만큼은 변함이 없다. 이씨는 “몇 년 전 고관절 수술을 해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면서도 “조금이라도 몸이 성할 때 아이를 만날 수 있다면 너무 좋겠다”고 간절한 마음을 전했다.

“그날 성호를 안 보냈더라면…미안하다는 말밖에”
길성호씨(35·실종 당시 3세)는 1989년 4월16일 서울 중구에서 아버지와 함께 집을 나섰다가 실종됐다. 허벅지에 데인 자국이 있으며 실종 당시 초록색 줄무늬 스웨터에 흰 바지를 입고 있었다. (왼=길성호씨의 어린시절 사진, 오=성인이 된 길성호씨의 예상 모습) 실종아동찾기협회, 아동권리보장원 제공

“그냥 ‘미안하다’는 말밖에 해줄 게 없어요. 그날 성호를 전남편에게 보내지만 않았어도 잃어버리지 않았을 텐데 그게 정말 미안하죠.”

32년 전 이별한 아들을 생각하면 죄인이 된다는 어머니 정남호(60)씨의 목소리가 떨렸다.

길성호(35·실종 당시 3세)씨는 1989년 4월 16일 서울 중구에서 아버지와 함께 집을 나섰다가 사라졌다.

어머니 정씨는 1988년 이혼 후 홀로 아이 둘을 키우다 생활이 너무 버거워져 이듬해인 1989년 아이들을 전남편에게 보냈다. 살림만 하던 20대 여성이 아이 둘을 키우며 홀로 살아갈 방법이 없었던 탓이었다.

그러나 이미 재혼한 상태였던 아버지 길씨는 아이들에게 정이 없었다. 정씨로부터 아이를 받은 지 하루 이틀 만에 첫째를 지인에게 맡기고 둘째 성호씨는 데리고 나갔다가 홀로 돌아왔다고 한다. 정씨는 “아이들 안부를 물으러 연락했는데, (전남편이) “첫째는 천안 지인 집에 있고, 둘째는 죽었다”고 답했다”고 회고했다.

정씨는 그 길로 첫째를 맡겼다는 곳을 찾아가 아이를 데려와 키웠다. 둘째 성호씨도 찾으려 전남편에게 끊임없이 연락했지만 ‘죽었다’는 답만 되돌아 왔다. 그러나 주민등록등본을 발급받아 보니 성호씨는 사망신고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후로도 정씨는 둘째 아들을 찾기 위해 전남편의 지인들을 찾아다녔다. 길씨가 재혼한 여성과 그의 가족도 만났다. 1991년 미아찾기 캠페인에 등록해 신문과 방송에 성호씨 사진을 실었다. 혹시 외국에 입양이 됐나 싶어 입양단체를 찾아도 봤지만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아무런 정보를 받지 못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성호씨의 행방을 유일하게 알던 전남편 길씨는 10여년 전 죽었다. 당시 성호씨를 알 만한 사람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하지만 정씨는 포기할 수 없었다고 했다. 무작정 인터넷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사람을 찾아 준다는 사설 업체를 알아보기도 했다. 그렇게 올해 유전자 등록을 했고, 얼굴나이변환기술로 성호씨의 현재 모습을 재현한 사진까지 만들어 냈다.

정씨는 “단 하루도 (성호가) 생각나지 않은 적이 없었다. 혼자 자다가 깨서 우는 날도 있고 그렇다”며 “(모두가) 장기실종아동찾기에만 매달리는 게 무리라는 거 안다. 하지만 가족들 도움을 청하러 갔을 때 접근 가능한 방법을 알려준다면 희망을 지속할 수 있다”고 절실히 당부했다.

아동 실종 신고는 해마다 2만건 안팎에 이른다. 실종 초기의 골든타임인 48시간 이내에 아이를 찾지 못하면 장기 실종으로 분류된다. 올해 4월말 기준으로 장기 실종아동으로 분류된 사례는 총 840명이다. 이 가운데 실종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아동을 찾지 못한 사례는 663명으로 전체의 78.9%에 달한다.

장기 실종아동 가족은 아이를 찾기 위해 직접 전단지를 만들어 전국 곳곳을 누비고, 방송에도 출연한다. 또 보육원을 찾아다니기도 하고, 제보가 들어오면 그곳이 어디든 달려간다.

법과 제도는 꾸준히 개선돼 왔다. 2005년 제정된 ‘실종아동 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실종아동법)’ 이후 장기 실종 아동 지원 근거가 마련됐다. 2011년 법 개정으로 사전등록제와 위치추적제 등이 도입됐고, 2016년 전국 지방경찰청에 3~5명 규모의 ‘장기실종전담팀’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또 실종아동 발견을 위해 ‘유전자 분석’과 ‘지문 등 사전등록제도’도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20년 이상 장기 실종아동 10명 중 8명은 여전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장기 실종이 되는 이상 가족과 재회할 가능성이 현격히 낮아지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기에 사회적 관심과 정부 지원이 더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기원 실종아동찾기협회 대표는 “경찰은 전담 인력을 더 확보하고, 정부는 아동 실종 예방과 수색 등을 위한 충분한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종아동을 알고 계신 분이나 당사자라고 생각되시는 분은 경찰청 실종아동찾기센터 (국번없이 112), 실종신고센터(국번없이 182)로 연락해주시기 바랍니다.


김승연·김아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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