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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정에 “아악” 흐느낀 역도 김수현, 어젯밤 벌어진 일

[도쿄올림픽] 여자 역도 76㎏급 석연치 않은 판정
취재진 앞에선 이의 제기 없이 “내가 부족한 탓”

김수현이 1일 일본 도쿄 국제포럼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역도 76㎏급 결선에서 용상 2차 시기 때 들어 올린 140㎏가 심판진에 의해 실패로 판정되자 흐느끼고 있다. 연합뉴스

김수현(26)은 경기장에 일렬로 늘어선 8명 중 유일한 동아시아 선수였다.

다른 국가 선수들은 자신이 소개될 때마다 한 걸음 앞으로 나올 뿐이었지만, 일곱 번째로 호명된 김수현은 똑같이 한 걸음을 앞으로 나온 뒤 관중석을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바로 앞에는 심판 3명이 앉았고, 그 뒤의 텅 빈 관중석을 출전국 대표팀 관계자와 기자들만 채우고 있었다. 김수현은 명랑한 성격 뒤에 반듯한 자세로 인사하는 태도를 가진 선수다.

역도는 바벨의 무게로 힘을 겨루는 경기다. 바벨을 바닥에서 머리 위까지 곧바로 들어올려야 하는 인상, 심봉을 어깨에 걸친 뒤 자세를 바꿀 수 있는 용상에서 모두 3차례씩 도전할 기회가 주어진다. 인상과 용상의 합계로 승자가 가려진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경쟁하는 선수의 기록을 살피면서 신청할 무게를 바꿔 가는 수싸움이 장외에서 치열하게 펼쳐진다. 그래서 역도는 포커게임에 비유되기도 한다. 무게를 많이 적어내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경기장에서 바벨을 들어올리지 못하면 실패로 기록된다. 금메달을 노리려다 동메달도 날아갈 수 있다. 1㎏ 차이를 놓고서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

김수현은 여자 역도 76㎏급 선수다. 이 체급 최강자이자 인·용상 합계 세계기록(278㎏) 보유자인 림정심은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한 북한올림픽위원회의 결정으로 도쿄올림픽에 출전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김수현에게도 메달에 도전할 기회가 충분했다. 출전자 중 최강자는 주니어 세계기록(259㎏) 보유자인 에콰도르의 다호메스 바레라. 이 체급에서 그의 금메달이 유력하게 예상됐지만, 김수현은 과감하게 무게를 올려가며 메달권에 진입할 기회를 엿봤다.

먼저 시작된 인상에서 김수현은 1차 시기 때 106㎏를 들어올렸다. 하지만 2차에서 109㎏, 3차에서 110㎏의 바벨을 모두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유일하게 성공한 106㎏이 그의 인상 기록으로 남았다. 완전한 작전 실패였다.

도전자들의 경기를 여유만만하게 지켜보던 바레라는 1차에서 111㎏, 2차에서 115㎏, 3차에서 118㎏을 번쩍번쩍 들어냈다. 인상을 끝낼 때 바레라는 금메달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다음 순위로 우크라이나의 이리나 데카가 113㎏, 미국의 캐서린 나이가 111㎏으로 뒤를 이었다.

김수현의 인상 순위는 5위. 메달권에 진입하려면 적어도 나이와 5㎏ 차이를 앞질러야 했다. 더 과감한 선택이 필요했다. 김수현은 당초 용상 1차 시기에서 137㎏로 신청했던 무게를 138㎏으로 1㎏을 더 늘려 정정했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 2차 시기 땐 무게를 140㎏으로 늘렸다. 이 무게를 들어올리면 단숨에 은메달로 순위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

김수현이 신청한 140㎏의 무게는 경기 도중에 전광판으로 표시됐다. 김수현이 경기장으로 들어서자 객석이 술렁거렸다. 각국 대표팀 관계자와 언론인들은 김수현이 던진 승부수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리고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김수현은 큰 기합 소리를 낸 뒤 호흡을 가다듬고 심봉을 잡았다. 힘을 더 끌어내기 위한 김수현의 기합 소리가 적막을 깰 때 140㎏짜리 바벨은 무릎 높이를 지나 어깨까지 올라왔다. 김수현은 모든 힘을 끌어모아 이 바벨을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팔이 조금 흔들렸지만 성공에 가까워 보였다. 경기장 뒤에 선 코칭스태프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김수현은 버저 소리와 함께 바벨을 내려놓고 환희에 찬 표정을 지었다. 이때 전광판에서 뜻밖의 판정이 나왔다.

김수현이 1일 일본 도쿄 국제포럼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역도 76㎏급 결선에서 용상 2차 시기 때 들어 올린 140㎏가 심판진에 의해 실패로 판정되자 흐느끼고 있다. 연합뉴스

‘실패.’ 심판 3명 중 2명의 판단이었다. 환희에 차 포효하던 김수현은 놀란 나머지 그 자리에서 “아악” 소리를 내며 흐느껴 울었다. 그 소리가 적막을 깨고 장내로 울려 퍼졌다. 김수현은 용상 마지막 3차 시기에 같은 무게를 시도했지만 이번에는 넘어져 실패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이마를 심봉에 부딪혔다. 겨우 일어나 장외로 나가는 김수현에게 객석에서 가장 힘찬 박수가 터져 나왔다.

김수현의 용상 2차 시기가 성공으로 인정됐다면 합계 246㎏을 기록할 수 있었다. 동메달을 차지한 멕시코의 아레미 푸엔테스는 245㎏을 들고 시상대에 올랐다. 도쿄올림픽 여자 역도 76㎏급 결선이 열린 1일 일본 도쿄 국제포럼에서 김수현의 생애 첫 올림픽은 이렇게 석연치 않은 판정의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막을 내렸다.

김수현은 경기를 마치고 찾아온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자신을 탓했다. 그는 “내가 부족한 탓이다. 한국에서 나를 모르는 분들도 응원해 주지 않았겠는가. 국가대표로 온 것인데 이런 모습을 보여 너무 창피하다. 메달을 따 한국 역도에 관심이 커지길 원했지만 내 꿈이 컸다.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이라며 “다른 메이저 대회에서 인정되는 판정이 올림픽에서 더 예민하게 적용되는 것 같다. 앞으로 국제대회에서 실력을 더 보여 주고, 예쁘게 봐 달라고 인사도 열심히 해야겠다”고 말했다.

김수현은 경기도 수원 천천중 2학년생이던 2008년 8월 베이징올림픽 역도에 출전한 장미란의 경기를 보면서 어머니와 식사하던 중 우연한 대화로 역도를 시작했다. “나도 저 운동해 볼까”라고 겁도 없이 물은 딸에게 선뜻 “너라면 잘할 것”이라고 응원한 어머니의 말이 김수현을 13년 뒤 올림픽 무대에 세웠다.

어머니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김수현은 답을 못하고 눈물만 닦아냈다. 인터뷰 중 가끔 이마의 붉은 멍에 손을 가져다 대기도 했다. 용상 3차 시기에서 심봉에 부딪힌 부위다. 통증이 남은 듯 보였다.

하지만 부상을 포함한 몸 상태를 물었을 땐 금세 씩씩한 김수현으로 돌아와 “괜찮아요. 아무렇지도 않아요”라고 답했다. 김수현은 “어차피 10년은 더 운동할 것이다. 다음 올림픽에선 메달을 따겠다”며 3년 뒤 재도전 의사를 밝혔다.

도쿄=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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