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스포츠

연예·스포츠 > 스포츠

직접 쓴 ‘2m35’ 머리맡에 두고 자던 연습벌레 우상혁… 신기록 달성은 “집념의 결과”

우상혁 은사 윤종형 감독

1일 도쿄올림픽 남자 높이뛰기에서 2m 35 한국신기록을 세우며 4위를 차지한 우상혁이 도쿄 올림픽스타디움에서 경기 종료 후 태극기를 펼치며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신이 직접 쓴 ‘2m35’라는 글귀를 머리맡에 놓고 잘 정도였어요. 집념의 결과가 아닐까 싶어요.”

윤종형(62) 대전 신일여고 육상부 감독은 2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우상혁(25·국군체육부대)이 한국기록을 경신하고 세계 4위에 오른 것을 기뻐하며 이같이 말했다. 윤 감독은 “우상혁은 진천선수촌에 있을 때부터 목표를 ‘2m35’로 설정하고 훈련했다”며 “기록 향상에 대한 간절함이 좋은 성적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했다.

윤 감독은 전날 일본 도쿄 올림픽스타디움에 열린 육상 남자 높이뛰기 결승을 숨죽여 지켜봤다. 도쿄로 출국하기 전 자신을 찾아와 “후회없이 끝까지 잘하고 오겠다”고 말한 우상혁의 모습이 떠올랐다고 한다. 우상혁이 한국신기록인 2m35에 도전할 때는 우상혁의 부모와 통화하며 기록 경신을 기원했다.

윤 감독은 당시 상황에 대해 “긴장은 됐지만 기록 경신도 가능하다고 봤다”고 했다. 대회 내내 좋은 컨디션을 유지해온 데다 도움 닫기부터 점프까지 여러 동작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등 긍정적 요소가 많았다. 우상혁은 결국 2m35를 뛰어넘었고, 경기장 바닥을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윤 감독은 “서구 선수들에 비해 불리한 신체 조건인데도 좋은 기록을 만들어 낸 제자가 대견하다”고 했다.

우상혁(오른쪽)과 윤종형 감독이 2017년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뒤 기쁨을 나누고 있다. 윤종형 감독 제공

윤 감독은 우상혁을 높이뛰기의 세계로 이끈 주인공이다. 우상혁이 윤 감독을 처음 만난 건 초등학교 4학년 때다. 그의 부모님이 “달리기가 좋다”는 그를 육상부가 있는 대전 중리초등학교로 전학시킨 게 시작이었다. 윤 감독은 “구기 종목도 많은데 어린 나이에 육상을 하고 싶다며 전학 온 아이였다”고 회상했다.

윤 감독이 처음 본 우상혁은 또래에 비해 달리기가 빠르진 않았다고 한다. 8살 때 당한 교통사고로 오른발이 왼발보다 짧았던 탓이었다. 하지만 발차기가 뛰어났다. 윤 감독은 “높이뛰기를 해보자”고 권유했다. 이렇게 시작한 높이뛰기는 우상혁에게 ‘즐거움’ 그 자체였다. 선수생활을 시작한 동기를 “코치님이 높이뛰기를 권유해서 해봤는데 너무 재밌어서 지금까지 하고 있다”고 설명할 정도다.

윤 감독은 초반에 균형 감각을 잡는 훈련을 주로 시켰다. 이른바 ‘짝발’로 인해 몸의 밸런스가 흐트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우상혁은 윤 감독의 지시를 잘 따랐다. 윤 감독은 “이런 연습벌레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자신의 단점을 이겨낸 그는 2013년 우크라이나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육상선수권 대회에서 2m20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우상혁의 성장은 계속됐다. 2017년 아시아육상경기선수권대회과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각각 금메달과 은메달을 땄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한국 남자 높이뛰기에서 16년 만에 나온 메달이었다. 그러나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구름 발인 왼발을 다친 그는 한동안 제대로 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는 도움닫기 걸음 수를 줄이는 방식으로 슬럼프를 이겨내고 한국 육상 역사에 이정표를 세웠다. 윤 감독은 “긍정적인 마인드를 잃지 않고 꾸준히 노력한 결과”라고 했다. 우상혁의 다음 목표는 올림픽 메달이다. 우상혁은 전날 윤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다음 올림픽에서는 메달을 꼭 따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