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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학선 따라 金…신재환은 선배의 모든 걸 닮고 싶었다

신재환이 2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남자 도마 결승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뒤 시상식에서 메달을 들어보이고 있다. 도쿄=김지훈 기자

9년 전 중학생이었던 신재환(23·제천시청)은 세계 최정상 무대를 바라보는 기계체조 꿈나무였다. ‘도마의 신’ 양학선(29·수원시청)이 2012 런던올림픽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양1’ 기술로 금메달을 목에 거는 모습을 보고 그를 ‘롤모델’로 삼았다.

신재환에게 양학선은 한국 기계체조의 수준을 세계 정상급으로 끌어올린 최고의 선배이자 존경의 대상이었다. 양학선의 기술이나 실력은 물론 일거수일투족을 다 따라하고 닮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9년 전 양학선이 그랬던 것처럼 2020 도쿄올림픽 무대에서 완벽한 도마 연기를 선보이며 꿈에 그리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20 도쿄올림픽 남자 도마에서 우승한 신재환(위)과 2012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양학선.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남자 기계체조의 ‘비밀병기’로 불리던 신재환은 2일 도쿄올림픽 도마 결선에서 금메달을 딴 뒤 양학선을 언급했다. 그는 양학선이 ‘선배’이자 ‘스승’이었고, 양학선 덕분에 금메달을 딸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양학선 바라기’ ‘양학선 키즈’를 자처했던 그가 우승의 공을 선배에게 돌린 것이었다.

신재환은 초등학교 4학년 때 기계체조를 시작했다. 런던대회에서 우승한 양학선을 본 뒤로는 함께 대표팀에 승선해 훈련하고 올림픽에 같이 나가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그의 선수 생활은 순탄치만 않았다. 어릴 때부터 고질적인 허리 부상이 따라다녔다. 부상이 너무 심해져 고등학교 2학년 때 허리 수술을 받게 돼 체조를 포기하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지금도 별로 꺼내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었다.

2020 도쿄올림픽에 나선 신재환(왼쪽)과 2012 런던올림픽 당시 양학선. 도쿄=김지훈 기자,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신재환은 포기하지 않았다. ‘선배’ 양학선처럼 최정상에 서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이를 악물고 재활에 나섰다. 그렇게 재기에 성공한 신재환은 대학교 1학년 때 태극마크를 달았다. 꿈에 그리던 양학선과의 대표팀 생활도 시작됐다.

신재환은 도쿄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양학선과 대표팀에서 동고동락하며 선의의 경쟁을 펼쳤다. 같이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과 은메달을 하나씩 사이좋게 나눠 갖는 모습을 머릿 속에 그려보기도 했다.

양학선도 자신을 믿고 따르는 후배가 눈에 들어왔던 모양이다. 양학선은 신재환과 함께 운동하는 동안 노하우 전수와 세세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신재환은 양학선이 하는 말을 놓치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가 운동하는 자세나 경기에 집중하는 방법 등을 직접 눈으로 관찰하고 하나하나 몸으로 익히려고 노력했다.

신재환이 2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남자 도마 결승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다. 도쿄=김지훈 기자

신재환은 이날 결선에서 난도 6.0점짜리 ‘요네쿠라’ 기술과 5.6점짜리 ‘여2’ 기술을 차례로 선보인 끝에 평균 14.783점을 얻어 금메달을 손에 쥐었다. 양학선 이후 9년 만에 한국 체조의 올림픽 사상 두 번째 우승을 이뤄낸 것이었다. 이번 대회 예선에서 9위로 경기를 마친 양학선의 몫까지 모든 걸 쏟아낸 결과였다.

신재환은 “학선이 형이 우리나라의 도마 수준을 끌어올렸고, 그걸 따라가려다 보니 한국 선수들의 도마 실력이 평균 이상으로 올라갔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이어 “학선이 형은 선배지만 스승이다. 만나면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형 덕분에 딴 것이라고 얘기하고 싶다”고도 했다.

신재환이 2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남자 도마 결승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뒤 시상식에서 메달을 들어보이고 있다. 도쿄=김지훈 기자

도마를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해 이름을 남기고 싶다던 그는 스스로 자신의 시대를 열었다. 이제는 2024 파리올림픽을 향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간다. 양학선처럼 자신의 이름을 딴 기술을 만드는 것에도 의지를 보였다. 신재환은 “당장은 힘들 것 같지만 향후 2~3년 안에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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