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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인천에서의 마지막 일주일…떠나는 ‘코끼리 감독’ 유도훈의 인사

유도훈 대구 한국가스공사 감독이 17일 구단 전신인 인천 전자랜드 구단 홈구장 인천삼산월드체육관 훈련장에서 농구공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인천=김지훈 기자

유도훈(54) 감독의 카카오톡 메신저 프로필 사진은 코끼리 조각상이다. 그가 13년간 몸담은 KBL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의 마스코트 역시 코끼리다. 그는 선수단과 해외 전지훈련을 갈 때마다 같은 모습의 조각상을 샀다. “코가 축 처져 있는 건 싫어서 항상 코를 번쩍 들고 있는 걸 샀어요. 팀 상징이 코끼리고, 또 소속감이랄까…. 의미가 있으니까.” 대구로 내려갈 짐을 빼놓아 어수선한 감독 사무실에서 그는 쑥스럽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책상에는 작고 반짝이는 하얀색 코끼리 조각상이 하나 남아 있었다.

구단 인수협약식이 있던 지난 6월 9일부로 전자랜드가 아닌 ‘대구 한국가스공사’가 된 유 감독과 선수단은 여전히 전자랜드 홈구장 인천삼산월드체육관에서 훈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예년 같았으면 팬들이 찾아와 훈련을 지켜봤겠지만 코로나19 탓에 그런 기억도 벌써 까마득하다. 유 감독과 선수들은 이미 대구에 원룸 등 각자 살 곳을 마련했다. 국민일보는 지난 17일 구단 사무실에서 유 감독과 만났다. 인천에서의 훈련은 마지막 날인 23일까지 정확히 일주일 남아 있었다.

뜨거운 안녕

인천 전자랜드 선수단이 4월 27일 인천삼산체육관에서 열린 2020-2021 현대모비스 남자프로농구 4강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정규리그 우승팀 전주 KCC에 94대 73으로 승리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경기는 전자랜드 선수단의 마지막 홈경기였다. 한국농구연맹 제공

4개월 전 마지막 플레이오프 무대에서 전자랜드의 선전을 기대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구단 매각을 둘러싼 어수선한 상황이 계속되어서다. 그러나 전자랜드는 한 수 위 전력으로 평가받던 정규리그 챔피언 전주 KCC를 4강 5차전까지 끌고 가며 마지막까지 분전했다. 유 감독은 원정 5차전을 패하며 시즌을 마친 뒤 “우리 선수들은 농구인의 본분을 지키면서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구단 매각 관련한 불안함을) 참고 견뎌줘서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치켜세웠다.

5차전을 패하면서 그보다 앞서 열린 4차전은 전자랜드의 마지막 홈경기가 됐다. 홈팬들과의 마지막 기억을 승리로 장식했다는 점에서 보면 나쁘지 않은 결말이었다. 선수들은 경기 뒤 구단이 준비한 기념 영상을 보며 코트에서 눈물을 보였다. 다만 당시 선수들과 마스코트, 구단 관계자들이 코트에 모여 찍은 당시 기념사진에 유 감독의 모습은 없다. 유 감독은 “그때는 (기념사진 생각을 하기엔) 머리가 너무 복잡했다”면서 웃었다. 구단 매각이 결정나지 않은 상황에서 그에게는 고민해야 할 게 많았다.

“어떻게 해야 전자랜드로서 한 경기라도 더 치를까 하는 생각을 먼저 했어요. 챔피언결정전까지 가서 끝을 내고 싶었죠. 그럴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선수들에게도, 팬들에게도 감독으로서 져야 할 책임이 아닌가 싶었고요.” 고민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좋은 모습을 보여야 매각 기업이 나타나지 않겠나 하는 마음도 있었죠. 농구인으로서 KBL이 9개 구단으로 줄어들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고. 힘들다는 표현을 잘 안 하는 편이긴 한데, 그때는 혼자 고민을 안을 수밖에 없었어요.”

시즌을 마치던 순간까지도 유 감독과 선수단은 연고지 이전 여부를 알 수 없었다. 대구로 옮겨가는 걸 짐작한 건 시즌 종료 한참 뒤 구단 인수 협약식 일정과 장소가 나왔을 때쯤이었다. 때문에 차바위, 임준수 등 구단에 오래 머무른 고참들은 구장 주변에 마련했던 전셋집 계약 기간 문제로 고생을 좀 했다. 유 감독은 “선수들도 시즌 내내 어떤 상황인 줄 알았다. 분위기가 흐려질 수도 있었을 텐데 전혀 내색하지 않고 코트에서 최선을 다해줬다”며 “내가 한 게 아니라 선수들이 한 일”이라며 고마워했다.


성장하는 농구

유도훈 감독이 17일 인천삼산월드체육관 감독 사무실에서 선수단 훈련 전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유 감독의 뒤로 전자랜드 어린이 응원단과 조카 손주들이 남긴 응원 메시지가 유리 벽면에 적혀있다. 인천=김지훈 기자

유 감독의 지휘 아래 전자랜드의 농구는 항상 위를 바라봤다. 끝내 정상에 오르지 못할지라도 언제나 그들은 오르막을 열심히 달렸다. 유 감독은 “항상 ‘성장의 농구’를 해야 하는 처지였다. 당장 안되는 게 있더라도 어떻게든 되게 만들자는 것”이라며 “우리 멤버로는 어차피 안 된다고 선을 긋는 게 아니라 그보다 조금이라도 위를 보려고 했다. 6강 전력이라고 하면 목표를 4강으로 잡았고, 4강 전력이라고 하면 우승을 목표로 잡고 선수들을 성장시키려고 했다. 우리 농구는 그랬다”고 했다.

유 감독은 전자랜드에서 감독으로 시즌 중 동부 DB와의 4강전에서 좌절했던 2014-15시즌, 챔피언결정전에 이른 18~19시즌을 가장 아쉽다고 꼽았다. 그는 “(18~19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는 2차전부터 흐름이 우리에게 왔다고 생각했다. 상대(울산 현대모비스)의 양동근 이대성 가드 조합을 깨는 방법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하필이면 그 역할을 해야 할 (외국인 선수) 기디 팟츠가 2차전에서 어깨 부상을 당했다”고 복기했다. 기디 팟츠가 빠진 뒤 전자랜드는 3연패하며 우승컵을 넘기고 말았다.

우승 외 목표는 선수를 잘 키워 국가대표로 보내는 일이었다. 김낙현과 정효근 강상재 등이 유 감독의 지도로 성장해 대표팀 옷을 입었다. 그는 “(전자랜드) 홍봉철 회장님이 ‘프로농구가 다시 인기를 얻으려면 국내 선수에게 기회를 더 줘서 스타로 키워내야 한다’고 했다. 나도 비싼 선수 데려오기보다 키우겠다고 했다”며 “선수단 식사, 치료 등 지원 관련해서는 저에게 전권을 줬다. 물론 당장 우승을 원하는 팬들도 있고, 좋은 성적을 내는 게 프로가 할 일이지만 선수를 성장시키는 과정도 팬들이 좋아해 주셨다”고 했다.

기약 없는 이별

유도훈(오른쪽) 감독이 17일 인천삼산월드체육관에서 대구 한국가스공사 선수단의 내부 연습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인천=조효석 기자

유 감독은 인천에서 감독으로 대부분의 세월을 보냈다. 전임 박종천 감독을 이어 감독대행을 맡은 게 2009년, 정식 감독으로 승격한 게 이듬해니 같은 팀을 13년째 이끌었다. 2004년부터 현대모비스를 이끈 유재학 감독 정도를 제외하면 KBL에서 그보다 한 팀을 길게 지도한 감독은 없다. 2010년대 전자랜드 구단의 역사가 곧 그의 지도자 경력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쉽지 않은 환경에서 꾸준하게 강호들을 위협하며 좋은 성적을 내왔기에 그를 향한 팬들의 지지도 두터웠다. 유 감독은 “감독 생활을 아무리 길게 해도 30년 하는 건 드물다. 대략 총 20년 정도를 한다고 치면 앞으로 아무리 다른 곳에서 오래 있는다 해도 최소 절반 가까이는 지도자 인생을 여기서 보낸 것”이라고 했다. 그는 “선수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사실 선수보다 감독이 팬분들한테서 사랑을 많이 받은 느낌도 있다”고 덧붙였다.

구단이 매각된 뒤에도 코칭 스태프는 그대로 따라왔다. 그러나 이외 헤어지는 구단 다른 가족들과는 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기존 사무국 직원들은 용산 전자랜드 본사로 옮기거나 직장을 그만뒀다. ‘상황이 좋아지면 보자’는 기약 없는 약속만 남았다. 유 감독은 “오래 함께해온 경호업체와 이벤트팀 업체 사장님 부부가 있다. 치어리더들도, 어린이 응원단도 그렇고 길게 함께해온 사람들이 많은데 식사 한 번 못하고, 적절한 이별도 제대로 못 나누고 헤어져 너무 마음이 좋지 않다”고 했다.


인천 팬들에게 보내는 편지

유도훈 감독이 인천 전자랜드에서 2019년 치른 300번째 경기를 기념해 팬들이 만들어준 기념 액자. 유 감독이 선수, 팬들과 보낸 순간이 담긴 사진을 이어붙여 만들었다. 유도훈 감독 제공

인천 팬들은 농구 팬 중에서도 열정적이기로 유명하다. 10개 프로구단 중에서도 통계상 평균관중 수가 3위 아래로 내려간 적이 드물다. 그런 헌신적인 팬들을 두고, 인사조차 제대로 못한 채 떠나야 하는 유 감독의 마음은 복잡하다. 그는 “당장 인천을 떠나는 감정을 도저히 몇 마디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팬들과 만나 인사하는 자리가 있다면 눈물이 날 것 같은데 그마저 하지 못하고 가야 한다. 통상적인 이별이라고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유 감독은 “인천에는 골수팬들이 많다. 그런 팬들은 그냥 가족이나 마찬가지”라면서 “단순히 팬들이 돈을 내고 표를 샀다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건 우리 팀에 시간을 할애해서 신경 쓰고 함께 걱정하고 기뻐했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그는 “좋을 때 같이 기뻐하고 힘들 때는 같이 힘들어하고 해주는 팬들이 인천에는 참 많았다. 우승을 못한 감독을 구단이 함께 끌고 가준 건 팬들이 이해해 주시고 좋아해 주셨기 때문”이라며 고마워했다.

인천 팬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묻자 유 감독은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그만큼 마음속 감정이 복잡해 보였다. 그는 “고맙다, 아쉽다는 말로는 요약이 안 된다”면서 “그간 응원 감사했다고 말하기도 우습고, 그렇다고 계속해서 응원해달라 하기도 죄송하다”고 했다. “그래도 여태 우리는 전자랜드 한 가족이었고, 인천 한 가족이었으니까…. 우리 자식들이 어디 가서 잘하고 있나 못하고 있나 걱정하고 관심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부탁드리기도 죄송하지만, 그래도 부탁드린다고 전해주세요.”

인천=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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