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동 탈락 후폭풍…시의회 기습? 오시장의 반격?

SH사장 유력후보 김헌동 경실련 본부장, 시의회 추천위원들 낙제점으로 탈락한 듯

김헌동 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장

김헌동 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장이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 최종 후보에서 탈락한 후폭풍이 거세다. 김현아 전 국회의원에 이은 김 본부장의 잇따른 낙마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자 했던 부동산 정책 구상에 큰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인사청문회와 SH임원추천위원회를 주도한 서울시의회와 서울시의 관계도 악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29일 SH와 서울시에 따르면 SH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는 최근 SH사장 후보로 한창섭 전 국토교통부 공공주택추진단장과 정유승 전 SH 도시재생본부장을 서울시에 추천했다. 지원자 중 최종 후보 물망에 올랐던 김 본부장은 탈락했다. 아예 인사청문회 대상에도 오르지 못한 것이다. 서울시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간 결과다.

SH 임추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SH 임추위는 서울시의회 추천 3명, SH 추천 2명, 서울시 추천 2명 등 7명으로 구성된다. 오 시장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추천위원은 서울시 추천 2명과 SH 추천 위원 2명 등 4명으로 파악된다. 시의회 추천 위원들은 소수에 해당한다. 하지만 김 본부장의 탈락에 시의회 추천 위원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시의회 추천 위원들이 면접에서 김 본부장에게 매긴 점수는 낙제점 수준인 40~50점대로 알려졌다. 다른 위원들이 김 본부장에게 매긴 점수와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김 본부장은 서울시·SH 추천위원 4명으로부터 1·2위 후보자가 받은 B+(85점) 수준의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시의회 추천 위원들이 이같은 무리수를 둔 배경에는 시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김 본부장은 문재인 정부의 거듭되는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해 강도높은 비판을 쏟아낸 인물이다. 반면 오 시장에 대해서는 자신이 제안한 분양원가 공개 등을 실행했다며 칭찬해왔다. 김 본부장은 지난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 언론 인터뷰에서 “시민들이 현명한 판단을 했다. 지난 10여년간 나는 오세훈을 칭찬해왔다. 2006년 5월 오세훈 시장이 처음 시장이 됐을 때, 후분양제·분양원가공개 등을 제안했다. 못할 줄 알았는데 약속을 지켰다. 오세훈은 그렇게 해서 집값을 잡았던 사람이다. 문재인 정부보다는 훨씬 나을 거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또 지난달 야권 대선 후보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만난 뒤 윤 후보가 부동산 부패 구조를 간파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같은 김 본부장의 언행으로 볼때 여권 입장에서는 그가 ‘눈엣가시’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공천을 받아야 하는 민주당 소속 시의원들로서는 공천권을 쥐고 있는 중앙당에 충성도를 보이기 위해 김 본부장을 의도적으로 탈락시켰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시의회는 오 시장과 김 본부장에게 화살을 돌리고 있다. 오 시장이 자신과 주파수가 맞는 인물을 SH사장에 앉히려고 무리수를 뒀고, 김 본부장은 면접에서 자신이 SH사장 적격자임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A 시의원은 “나도 SH 관련 면접에 참여해봤지만 소수의 면접관이 특정인에게 낙제점을 줘서 떨어뜨릴 수 없고 낮은 점수를 줬다고 해도 다른 면접관이 좋은 점수를 줬다면 최종 후보에 들 수도 있었을텐데 탈락했다는 것은 김 본부장이 적임자가 아니라고 판단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본부장이 탈락하고 나서 서울시 고위관계자가 격노했다고 들었다”며 “이미 특정인을 염두에 두고 서울시가 사전작업을 한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고 덧붙였다. 시의회는 SH 임추위원들이 심사과정에 대한 비밀유지 의무가 있는데 김 본부장에 대한 시의회 추천위원들의 낙제점 주장이 나온 배경에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김 본부장의 탈락에 불만을 가진 서울시에서 심사과정의 일부 내용을 언론에 흘렸다는 주장이다.

SH 측은 김 본부장의 탈락에 안도하는 분위기다. 김 본부장이 경실련의 SH 비판을 주도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김 본부장은 SH가 지난 14년간 공공분양 사업으로 3조1000억원의 이익을 챙겼다고 주장하며 SH 사업의 거품을 강하게 비판했다.

서울시는 강하게 반발했다. 서울시 고위관계자는 28일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심사다. 김 본부장이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을 비판했다고 이렇게 탈락시키면 오 시장은 현 정부와 다른 정책을 할 수 없다는 것이냐”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 관계자는 “오 시장이 추천된 후보 2명을 모두 부적격 처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오 시장이 심사과정의 불공정을 이유로 임추위가 추천한 후보 2명 모두 거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경우 SH는 또다시 사장 재공모에 나서야 해 4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SH 사장 공백이 장기화될 수 있다.

시의회 추천 위원이 특정 후보자에게 터무니없이 낮은 점수를 줘 탈락시킨 전례는 2012년 박원순 전 시장 시절에도 있었다. 당시 SH 사장 후보로 나섰던 최항도 전 기조실장이 당시 시의회 추천 위원 3명에게 20점·40점대 점수를 받아 낙마했다. 함께 후보에 올랐던 배경동 전 주택국장도 시의회 추천 위원에게 낙제점을 받아 탈락했다. 당시 논란이 된 면접 결과를 놓고 추천위원 명단과 평가 점수를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지적이 이어졌지만 이후에도 깜깜이 심사는 계속됐다.

김재중 선임기자 j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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