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사법농단·조민 의혹 다 묻힌다…언론법 독소조항 탐구

징벌적 손배제 등 독소조항 여전
취재원 노출로 공익제보 실종 우려
권력감시 언론 기능 위축 불가피


여야가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지만, 언론중재법 개정안 독소조항을 두고 여전히 입장 차가 크다. 야당 뿐 아니라 전문가들은 더불어민주당이 고수하려는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은 반드시 수정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당은 이 조항은 피해 구제를 위해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만일 이 조항이 포함된 최종안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어떻게 될까. 국정농단 등 권력형 비리 사건들을 바탕으로 예상되는 부작용들을 분석해봤다.

국정농단 시발점, 탄핵으로 이어졌을까

징벌적 손배제는 언론법 개정안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힌다. 권력 감시·견제 기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이유다. 권력형 비리 사건은 다수의 언론사가 집중적으로 심층 취재와 후속 보도를 이어가면서 사건의 윤곽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건 관계자들이 소송을 걸어 대다수 언론사와 기자가 재판에 묶여 있게 되면, 이는 자유로운 취재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국정농단 사건은 ‘비선 실세’ 최서원(최순실)씨 취재에서부터 시작됐다. 한 언론이 청와대가 대기업들로부터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규모 기금을 출연토록 했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이어 다른 언론이 두 재단의 연결고리가 최씨라는 것을 밝혀냈고, 또다른 언론이 물적 증거인 태블릿PC를 입수하면서 탄핵 국면은 급물살을 탔다. 이 과정에서 딸 정유라씨에게 삼성이 마필 등을 제공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사법농단 사건도 마찬가지다. 한 언론이 법원행정처의 인권법연구회 탄압 의혹을 보도하면서 시작됐다. 의혹의 중심에 서 있던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사표를 냈고, 이후 양승태 전 대법원장도 임기를 마치면서 사법농단의 핵심인물 모두 공직에서 물러났다. 언론은 퇴임한 양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처장에 대한 보도를 이어갔고, 둘은 모두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사건도 언론 보도가 불을 지폈다. 법무부 장관으로 내정되면서 언론은 조 전 장관을 둘러싼 각종 의혹을 보도했다. 민주당은 당시 언론 보도를 ‘가짜뉴스’라며 엄호했다. 하지만 최근 법원은 딸 조민씨의 입시비리 의혹, 아내 정경심씨의 사모펀드 의혹에 대해 유죄로 인정했다.

그런데 언론법에 따르면 이들 모두는 사인(私人)으로, 징벌적 손배제 청구 자격을 가진다. 그들을 보도한 언론사를 상대로 징벌적 손배 소송이 잇따랐다면 다수 언론사의 심층 취재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이야기한다.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지낸 황정근 변호사는 31일 “언론이 권력자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고 비리를 파헤치지 못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민 변호사(전 광주지검 순천지청장)도 “오히려 소송비용을 댈 수 있는 권력자들이 소송을 악용하게 될 것”이라며 “최씨나 전직 대통령과 같은 사람들은 대대적 소송을 현실화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고의·중과실 입증, 취재원 보호 무력화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도 징벌적 손배제 못지않은 독소조항으로 꼽힌다. 민주당은 고의·중과실 추정 예시를 규정한 언론법 제30조2의 2항은 삭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고의·중과실 추정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선 언론사에 “고의나 중대한 과실로 허위·조작 보도를 하지 않았다”는 입증 책임을 지우는 게 법리적으로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민사소송이든 형사사건이든 각각 원고와 검사가 입증 책임을 지는 게 원칙이라는 것이다.


법리적인 문제를 떠나 언론사나 기자가 고의·중과실이 없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과정에서 취재의 대원칙인 ‘취재원 보호’가 무력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신뢰할만한 취재원이 누구였는지를 밝혀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고, 재판과정에서 언제든 취재원이 드러날 환경이 만들어지면 내부고발 등 공익제보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정영환 한국법학교수회 회장은 “언론 자유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취재원 보호”라며 “언론사가 입증 책임을 지라는 것은 취재원을 밝혀야 한다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공익에 관한 보도는 징벌적 손배제에서 제외하기 때문에 기우라고 주장한다. 공익 보도는 면책 대상이 된다는 논리다. 하지만 일단 소송대상이 된 보도가 공익에 관한 것인지 아닌지를 가리기 위해서는 법원의 판단이 선행돼야 한다. 황 변호사는 “재판에는 긴 시간이 소요되는데, 우선 피고가 된다는 것 자체가 언론을 위축시키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가압류 조치에 대한 우려도 나타냈다. 문재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소송이 길어지면 기자 개인 월급에 대한 가압류를 할 수도 있다”며 “기자로서는 월급까지 빼앗겨가면서 일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정 교수회장도 “허위·조작 보도 여부는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며 “기자들이 급여 가압류에 시달리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징벌적 손배제를 폭넓게 인정하는 미국도 ‘악의’가 있을 때만 징벌적 손배를 인정하는데, 민주당 언론법은 ‘중과실’까지도 인정하도록 한 부분도 문제로 꼽힌다. 황 변호사는 “미국조차 헌법에는 언론 자유를 제한하지 못하도록 아예 못박아두고 있다”며 “고의·중과실을 입증하라는 것 자체에 어폐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가현 강보현 기자 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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