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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 승부사’ 태권도 이다빈, 영광을 향해 질주할 3년

도쿄올림픽 태권도 여자 +67㎏급 은메달리스트
“파리올림픽 금메달 목표” 30일부터 훈련 재개

도쿄올림픽 태권도 여자 67㎏ 초과급 은메달리스트 이다빈이 3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본사 스튜디오에서 발차기 동작을 선보이고 있다. 최현규 기자

“서로의 발이 처음 부딪칠 때 알았어요. 이 선수가 대단한 노력으로 여기까지 왔구나. 포옹만으로는 축하가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태권도 국가대표 이다빈(26·서울시청)은 도쿄올림픽에서 두 차례나 명장면을 만들었다. 지난 7월 27일 일본 지바 마쿠하리메세에서 열린 여자 67㎏ 초과급 준결승에서 종료를 1초 남기고 세계 랭킹 1위 비앙카 워크던(30·영국)을 발차기로 쓰러뜨려 역전승한 ‘버저비터 헤드샷’은 그중 하나다. 도쿄올림픽 태권도를 통틀어 최고의 명승부로 꼽힌다.

또 하나의 명장면은 같은 날 이어진 결승 직후에 나왔다. 이다빈은 자신을 이긴 밀리차 만디치(30·세르비아)와 포옹하고 돌아서면서 엄지를 세웠다. 만디치는 이런 이다빈을 향해 허리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코로나19 대유행의 속에서도 존중과 화합의 정신을 잃지 않은 올림피언의 품격이 빛난 순간으로 기억된다.

만디치는 2012 런던올림픽 금메달리스트다. 그 이후 만디치의 기량은 하락했다. 월드 그랑프리 시리즈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난적 정도의 평가를 받았다. 여전한 강자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우승권에서 벗어났다. 도쿄올림픽에서도 금메달 주자로 기대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다빈은 경기 시작 3초 만에 나란히 공격을 시작하고 맞닿은 만디치의 발끝에서 단단함을 느꼈다. 남다른 노력으로 쌓아온 발이 분명했다. 이다빈이 경기를 마치고 만디치를 향해 세운 엄지는 축하 이상의 찬사였다. 한때의 영광에 만족하지 않고 초심으로 돌아가 9년간 땀과 눈물을 쏟고, 결국 재기에 성공한 베테랑을 향한 존경을 담았다.

이다빈은 3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본사에서 “결승의 승패가 결정된 순간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슬픈 표정보다는 미소를 지으며 경기를 끝내고 싶었다. 승자가 선언되고, 서로에게 경례하고, 포옹한 뒤 매트를 떠날 때 만디치에게 더 많은 축하를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많이 노력했지만, 만디치가 더 간절한 마음으로 임해 금메달을 차지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재기에 성공한 만디치가 멋있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이다빈(왼쪽)이 지난 7월 27일 일본 지바 마쿠하리메세 A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67㎏ 초과급 결승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세르비아의 밀리차 만디치에게 엄지를 세워 축하하고 있다. 만디치는 허리를 숙여 인사하며 예의를 갖췄다. 지바=김지훈 기자

만디치보다 한 계단 낮은 시상대에 올랐지만, 이다빈의 노력은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매일 아침 6시에 시작한 훈련은 밤 9시에야 끝났다. 오전에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땀을 빼고, 오후에는 기술을 연마했다. 오후 7시부터 2시간 동안 진행된 개인 훈련도 빼놓지 않았다. 그렇게 2016년부터 5년의 강행군을 펼쳤다.

먼저 맺은 결실은 메이저 타이틀이다. 2016년 마닐라 아시아선수권대회,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2019년 맨체스터 세계선수권대회를 석권했다. 아시안게임의 경우 2014년 인천 대회까지 2연패를 달성했다.

이다빈의 키는 178㎝. 하지만 여자부 최중량급인 67㎏ 초과급에선 더 큰 신장을 가진 유럽 선수들이 많다. 이다빈은 “178㎝도 내 체급에서 작은 편에 속한다. 이마저도 내 키가 예전보다 1~2㎝가량 줄어든 것 같다”고 했다. 이다빈은 신장의 열세를 극복할 방법으로 상대에게 저돌적으로 파고드는 방법을 택했다. 한국의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공격적으로 경기해왔다.

강한 승부욕도 이다빈의 강점으로 꼽힌다. 이다빈은 경기장에 들어설 때마다 “무조건 이기겠다”고 되뇌며 전의를 불태운다. 그 승부욕이 상대를 자극할 때도 있다. 워크던은 올림픽 준결승에서 역전패를 허용한 순간 이다빈에게 손으로 잡힌 반칙 피해를 주장하면서 “금·은메달을 획득할 기회를 도둑맞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결승에서 승자에게 엄지를 세운 이다빈과 다르게 험한 표현으로 뒷말을 남긴 워크던은 국내외에서 작지 않은 논란을 빚었다.

이다빈은 워크던을 비난하지 않았다. 이다빈은 “워크던이 경기를 앞두고 큰 소리로 기합을 냈다. 그때 워크던도 긴장했음을 직감했다. 무조건 이기겠다고 생각했다”며 “타격을 주고받는 태권도에서 잡고 잡히는 상황은 숱하게 발생한다. 감점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경기 중 서로 잡고 잡힌 사실을 워크던도 알고 있을 것이다. 워크던이 강한 승부욕 때문에 그렇게 말했을 것”이라고 웃어넘겼다.

이다빈이 3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본사 스튜디오에 평상복 차림으로 앉아 밝게 웃고 있다. 이다빈은 도쿄올림픽을 마친 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부상 부위를 치료하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최현규 기자

이다빈은 도쿄올림픽을 마친 뒤 한 달의 휴식에서 단맛을 즐겼다. 일본에서 귀국한 뒤 가족이 거주하는 울산에 머물며 반려견 이든과 함께 산책하거나 여행을 다녔다. 소속팀 숙소가 있는 서울로 돌아와 부상 부위를 검사하고 치료하는 충전의 시간도 보냈다.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라 사적 모임이 쉽지 않지만 배구의 김희진(30)·염혜선(30), 경영의 안세현(26)·한다경(20), 다이빙의 김수지(23), 양궁의 강채영(25)과 개설한 모바일 메신저 단체대화방에서 즐거움을 얻는다. 모두 도쿄올림픽 전후 선수촌 생활을 계기로 친분을 쌓았다.

이다빈은 “이들과 단체대화방 화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나고 기분이 좋다.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가 내려가면 모임도 계획하고 있다”며 “여유로운 일상을 오랜만에 만끽하니 ‘이래도 괜찮은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도쿄올림픽 전만큼은 아니지만 다시 시간표를 짜고 훈련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다빈이 3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본사 스튜디오에 소속팀 서울시청을 새긴 검은띠를 목에 걸치고 미소를 짓고 있다. 최현규 기자

이다빈은 지난 30일부터 훈련을 재개했다. 당장 눈앞의 목표는 10월 경북 구미 전국체전 우승이다. 내년 항저우 아시안게임, 3년 뒤 파리올림픽 출전을 위한 준비의 첫 단계이기도 하다.

이다빈은 “올림픽을 마치고 훈련일지에 ‘모든 영광을 잠시 넣어두고 또 다른 목표를 위해 달려가자’고 적었다. 파리올림픽의 영광을 향해 질주하겠다”며 “그랜드슬램보다는 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삼고 있다. 눈앞의 성과를 이루면 타이틀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다빈에게 뜨거운 여름날의 기억을 남긴 마쿠하리메세는 또 한 번의 명승부를 예고하고 있다. 도쿄패럴림픽 태권도가 2일부터 사흘간 펼쳐진다. 패럴림픽에서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만큼 의미가 크다. 아프가니스탄의 패럴림픽 출전 사상 최초의 여성 선수인 자키아 쿠다다디(23)는 태권도 국가대표다.

이다빈은 “패럴림픽에 출전한 태권도 국가대표들이 어려운 환경에서 훈련해왔다. 부상 없이, 준비한 기량을 후회 없이 발휘하고 돌아오길 바란다”고 응원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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