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서울시의회 대충돌, 10년전 갈등 재현되나

오시장, 시정질문 중 퇴장하자 시의장 “10년전 전철 밟지 말라” 경고


국민의힘 소속 오세훈 서울시장과 더불어민주당이 장악한 서울시의회가 대충돌했다. 지난 4월 오 시장이 취임할 때만해도 과거의 악연은 잊고 서로 상생과 협치를 하자는 분위기가 조성됐으나 시정질문 중 오 시장의 퇴장과 시의회 파행으로 10년 전 갈등이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최근 오 시장과 시의회 간 갈등은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 후보로 지명됐던 김현아 전 국회의원과 유력한 후보였던 김헌동 경실련 본부장이 잇따라 낙마하면서 불거졌다. 이어 오 시장이 박원순 전 시장 시절 시작된 베란다형 태양광 사업 업체를 고발하고, 사회주택 사업에 대해서도 법적조치 검토를 지시하면서 갈등이 증폭됐다. 양측 간에 가파른 긴장 상태는 결국 시정질문에서 폭발했다. 오 시장이 2일 시의회 시정질문 도중 발언기회를 주지 않는다며 일방적으로 퇴장했고, 김인호 시의회 의장이 “10년 전 전철을 밟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사태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시정질문은 오전에만 해도 순조롭게 진행됐다. 3명의 시의원이 나서 ‘서울런’ ‘자가진단키트’ ‘광화문광장 세월호 기억공간 철거’ 문제를 거론하며 공세를 폈으나 오 시장은 차분하게 답변했다. 하지만 이경선(더불어민주당·성북4) 시의원이 오 시장의 개인 유튜브 오세훈TV에 실린 사회주택 법적 대처 내용을 문제삼으면서 분위기는 급변했다. 이 의원은 “어떻게 개인 유튜브에 서울시의 비공개 문서가 공개될 수 있느냐. 유튜브 제작 과정에 서울시의 비용 지원이 있었느냐”고 따졌다. 그러면서 “공공의 비공개 문서와 시장이 지시하지도 않은 발언을 시장 얼굴과 함께 동영상을 만든 것은 서울시의 비공개 문서를 악의적으로 편집해 서울시의 정책을 폄훼한 ‘시정농단’”이라고 표현하며 비공개 문서가 유출된 경위에 대한 조사를 촉구했다.

그러자 오 시장은 자진해서 발언대에 선 뒤 “발언 기회를 달라. 이런 식으로 시정질문을 하면 되느냐. 언페어(불공정)하다”며 반발했다. 오 시장은 의사진행을 맡은 김기덕 부의장에게 발언할 기회를 달라고 계속 요구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런 식으로 하면 시정질문에 응하지 않겠다”며 본회의장을 빠져나갔다. 김 부의장은 정회를 선포했고 시정질문은 중단됐다.

논란이 된 사회주택 사업은 사회적기업·사회적협동조합이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청년·고령자 등 주택약자들에게 시세의 80% 수준에서 주택을 임대하는 사업이다. 오세훈TV에는 박원순 전 시장때 시작된 사회주택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한 전임 SH(서울주택도시공사) 사장과 관련 담당자들 법적 대처를 검토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는 지난 1일 보도자료를 통해 “사회주택 사업 실태를 심층적으로 살펴보기 위한 감사를 실시하는 한편 지속가능한 사업구조를 만들기 위해 정책 재구조화 작업에 나선다”고 밝혀 이를 뒷받침했다.

오세훈TV는 사회주택 사업이 “입주자 보호에 취약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2019년 드로우주택협동조합이 재정부담 가중으로 사업을 중단해 일부 세입자가 임대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했다. 하지만 사회주택협회 등은 사업에 일부 문제가 있어 보완해가고 있는데 오 시장 측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공격한다고 주장한다. 시의회도 오 시장이 무리하게 ‘박원순 지우기’에 나서고 있다는 입장이다.

오 시장이 1시간 49분만에 본회의장으로 복귀하고 “(오세훈TV 내용은) 정상적인 과정을 거쳐 제작된 영상”이라고 해명하면서 시정질문은 속개됐지만 여진은 계속됐다. 김정태(더불어민주당·영등포2) 서울시의회 운영위원장은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10년만에 의회민주주의 현장이 유린당하는 현장을 목격했다”며 울분을 토로했다. 김 위원장은 격앙된 목소리로 “의원들의 질문에 성실하게 답변해야 할 시장이 답변 기회를 주지 않는다고 의회 본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당연히 사과해야 한다”며 “(질문한) 이 의원한테 사과를 요구한 것은 적반하장”이라고 질타했다.

김인호 시의장은 산회를 선포한 뒤 무거운 표정으로 마지막 발언을 했다. 김 의장은 “시의회는 천만시민 대의기관으로서 집행기관을 견제하고 감시한다. 시정질문 시간은 시의원들의 고유 권한이다. 답변 시간을 안줬다고 해서 파행시키고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는 일이 반복돼서는 안된다”고 자성을 촉구했다. 이어 “오 시장은 10년전 전철을 밟지 말라”고 경고했다.

서울시의회 더불어민주당 문장길 대변인은 4일 논평을 통해 “오 시장의 돌연 퇴장으로 인한 시정질문 파행 운영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며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의회민주주의를 유린한 사태에 대해 서울시민과 서울시의회에 고개숙여 사과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10년 전 서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 개정과 무상급식을 둘러싸고 생떼를 부리며 의회불출석을 거듭하던 당시 오세훈 시장과 조금도 달라진 바 없는 2021년 오세훈 시장의 모습에 실망과 탄식을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문 대변인은 또 “취임 초기 ‘상생과 협치’를 내세웠던 오 시장의 언행은 정치적 수사와 가식에 불과했음이, 천만 서울시민과 그 민의를 대변하는 서울시의회를 철저하게 기만해왔음이 이번 일로 여실히 드러났다”고 직격했다.

시의회는 오는 11월 서울시에 대한 행정감사에서 오 시장 취임 이후 진행되고 있는 ‘박원순 지우기’에 대한 본격적인 검증을 벼르고 있다. 이를 위해 시의회는 10월 20일까지 시민제보를 받는다고 밝혔다. 앞으로 행정감사와 SH사장 후보 인사청문회, 내년도 예산안 심의 등 서울시와 시의회가 맞부딪힐 지뢰밭이 많아 양측 간 가파른 대치 상태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재중 선임기자 j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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