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더기 없는 사리면으로 버틴다… “60년대 식단인 줄” [이슈&탐사]

[빈자의 식탁: ‘선진국’ 한국의 저소득층은 무엇을 먹고 사나] ② 빈곤한 식탁은 질병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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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헌(가명·38)씨는 지난 8월 5일부터 11일까지 7일간 14끼를 먹었다. 이틀은 하루 한 끼만 먹었고, 사흘은 두 끼를 먹었다. 14번 식사 중 9번은 하얀 면발이 도드라지는 라면이었다. 나머지는 무료 도시락(2번)과 바나나(2번), 2200원짜리 편의점 도시락이었다.

그는 라면을 더 많이, 더 저렴하게 먹기 위해 사리면을 활용한다. 라면을 한 개 반씩 두 차례 끓이면 분말 수프가 하나 남는다. 남은 분말 수프를 사리면과 함께 끓이면 라면 하나를 더 먹을 수 있다. “라면사리 40봉 들어 있는 게 1만1080원이에요. 이렇게 먹으면 조금 저렴해지죠.” 그가 찍은 라면 사진에 건더기 수프가 잘 보이지 않는 이유다. 그가 먹는 라면에는 계란과 파가 없고 김치도 없다.


최씨는 10년간 다닌 유통회사에서 4년 전 권고사직을 당한 뒤 공사장과 물류창고에서 일했다. 지난해 허리를 다쳐 일할 수 없게 되면서 식비에 돈을 지출할 여유가 없어졌다. 서울 대학동 옛 고시촌에서 라면과 무료 급식을 먹고 산다. 월·수·금 3번이던 무료 급식은 코로나19 이후 화·목 2번으로 줄었다.

최씨의 7일치 식사 사진 14장을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윤지현 교수가 들여다봤다. 분석 결과 최씨가 하루 평균 섭취한 에너지는 979㎉였다. 30~49세 남성의 에너지 필요 추정량인 2500㎉의 39.1%였다. 칼슘, 마그네슘 등 몸에 필요한 여러 무기질 중 목표 이상으로 섭취한 것은 나트륨뿐이었다. 윤 교수는 “영양분석 프로그램에서조차 ‘라면’을 불러오면 계란 한 개가 기본으로 포함돼 있는데, 이분은 계란이 안 보여 빼고 분석했다”며 “단백질 공급원이 사실상 없고 식품 다양성이 매우 부족하다”고 했다.


질 낮은 식사는 ‘한 끼를 그냥 때웠다’는 서글픔에 그치지 않는다. 질적, 양적 영양 섭취가 부족하게 되고 이는 결국 질병으로 이어진다. 국민일보 취재팀은 ‘빈자의 식탁’ 시리즈 취재 과정에서 만난 저소득층 25명에게 식사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찍어 달라고 요청했다. 사진을 보내온 13명 가운데 6명의 일주일치 식사 사진 85장을 윤 교수에게 보냈다. 영양학적 적절성을 평가하기 위해서였다.

윤 교수는 사진 속 음식을 한국영양학회의 식단영양 분석 프로그램 캔프로(CAN-Pro)에 입력해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 결과 6명의 하루 평균 에너지(㎉) 섭취량은 1077㎉로 2019년 성인 하루 평균인 1993㎉의 54.0%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음식에서 충분한 에너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또 모든 사람이 고기·생선·달걀·콩류군과 과일군의 섭취가 부족하다고 판정됐다. 6명의 일주일 식사 중 생선류가 전혀 등장하지 않은 사실도 발견됐다. 윤 교수는 “식생활의 질이 너무 낮아 깜짝 놀랐다. 식품의 다양성, 영양뿐만 아니라 절대 양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사진상으로 양호해 보이던 식사도 영양적으로는 많은 구멍이 있었다. 사람에 따라 최소 8개, 최대 16개의 영양소 부족이 관찰됐다. 4명은 식품 다양성이 매우 낮은 것으로, 2명은 식품 다양성이 낮은 편으로 분석됐다.

에너지·단백질 다 부족…"아픈 데가 많아요"

서울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대학생 아들과 둘이 사는 이오경(가명·59·여)씨의 일주일 식사도 영양학적으로 낙제점을 받았다.


이씨가 보내온 사진을 보면 그는 지난 7월 28일 저녁으로 된장국에 만 밥과 김치, 멸치볶음을 먹었다. 8월 4일 점심에도 된장국에 밥을 말아 장아찌와 함께 한 그릇을 비웠다. 반찬은 김치를 포함해 두 가지일 때가 많았고, 반찬 하나만 놓고 밥을 먹은 날도 있었다. 고추·방풍나물 장아찌는 6번 반복해 식탁에 올라왔다.

사진 19장 가운데 떡이나 빵이 있는 경우가 7장이었다. 8월 5일 점심은 모닝빵 3개와 토마토 1개였다. 저녁은 술떡 5개와 김치였다. 6일 점심에는 쑥떡 3개와 김치를, 8일 점심에는 빵 1개와 보리차를 먹었다. 9일 점심에는 단팥크림빵 1개와 계란 1개를 먹었고 저녁에도 떡과 보리차를 먹었다.

영양 분석 결과에 따르면 이씨는 15종류의 영양소 섭취가 부족했다. 그의 1일 평균 에너지 섭취량은 710㎉. 50~64세 여성의 1일 필요 추정량인 1700㎉의 41.7%에 불과하다. 단백질은 하루 평균 24g 섭취한 것으로 분석돼 필요량인 40g에 못 미쳤다. 윤 교수는 “한국식 식사에서 밥이 탄수화물이라면 나머지 영양소는 반찬에서 보강해줘야 한다. 단백질 등을 반찬으로 섭취해야 하는데 지금 식단에는 없다”고 말했다.


특히 이씨는 거의 모든 식품에 골고루 함유된 인(P)을 평균 필요량 미만으로 섭취한 것으로 조사됐다. 전반적인 식사량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인 섭취가 원활하지 않으면 뼈가 아프고 골연화증, 근육 약화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이씨는 취재팀과 만났을 때 “아픈 데가 너무 많다”고 말했다. “갑상샘암 수술을 해서 목소리가 잘 안 나오고, 손목 발목 무릎 허리 다 아파요.”

이씨는 남편 없이 식당 일을 하며 아들을 키웠고, 지금은 기초생활수급 혜택을 받는다. 수급비로 월 90만원을 받는데, 장을 보러갈 때는 딱 3만원만 손에 쥐고 간다고 했다. 지난 1월부터 서울의 한 푸드뱅크마켓센터를 이용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기업·개인 후원으로 들어온 식품이나 생필품을 저소득층에게 나눠주는 곳이다.

“평소 사 먹기 힘든 오리고기가 보이면 가장 먼저 집었어요. 형편이 어려운데 큰 도움이 됐죠.” 하지만 이씨는 지난 7월 21일 실망한 표정으로 푸드뱅크마켓에서 나왔다. ‘신청자가 많아 하반기 이용자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미리 말을 해줘야지. 더운데 헛걸음만 했네요.”


서울 관악구에서 혼자 살고 있는 장용기(가명·59)씨의 식사도 ‘곡류군 위주로 식품 다양성이 매우 낮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일주일간 빵과 라면을 각각 5번 먹었다. 8월 4일 아점(아침 겸 점심)으로는 빵을 먹고 저녁에는 라면을 먹었다. 5일 저녁도 라면으로 해결했다. 6일 아점은 빵, 저녁은 라면이었다. 7일 아점은 또 빵이었다. 8일에는 하루 종일 라면만 먹었다. 아침으로 컵라면을, 저녁으로 봉지 라면을 먹었다.

장씨는 당뇨, 고혈압, 고지혈, 하지정맥류 등을 앓고 있다. 달고 짠 음식은 독이나 마찬가지지만 그에겐 음식을 조리할 공간이 없다. 당장 갈 곳이 없어 친형이 하는 학원의 빈 강의실에서 지내고 있다. 부엌이 없는 학원에서 그가 해먹을 수 있는 음식은 라면이 전부다. “내 건강에 맞는 식사를 해 먹을 수가 없어요. 의사는 이런 거 저런 거 하라고 자꾸 그러는데 현실상 그럴 수 없으니까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독거 중장년 장용기(가명·59)씨가 지난달 26일 서울 관악구의 한 천주교 사회복지시설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당뇨를 앓고 있는 장씨는 민간지원단체에서 받은 무료 도시락과 빵, 라면 등으로 끼니를 때운다. 윤성호 기자

식단을 분석한 결과는 부정적이었다. 하루 평균 섭취한 열량은 970㎉로 50~64세 남성의 에너지 필요 추정량 2200㎉의 44.0%였다. 단백질 섭취량도 29g으로 평균 필요량 50g에 한참 못 미쳤다. 식이섬유도 충분 섭취량보다 부족했고 비타민 A, D, E도 필요량 미만을 섭취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윤 교수는 “당뇨와 고혈압이 있다면 탄수화물, 나트륨을 많이 먹으면 안 된다. 그런데 장씨의 식사는 탄수화물, 나트륨 모두 과잉”이라고 평가했다.

생선류 전무…다양성·균형도 낙제점

심장질환으로 일자리를 잃고 기초생활수급자가 된 오민정(가명·41·여)씨의 식단은 양질의 동물성 단백질이 부족한 것으로 분석됐다.

오씨 식사는 나라미와 복지관에서 제공하는 밑반찬과 푸드뱅크의 지원이 전부다. 주된 단백질원은 검정콩조림과 두유. 오씨는 8월 2일 저녁, 3일 아점(아침 겸 점심)의 반찬으로 검정콩조림을 먹었다. 4일 아침, 5일 아점, 6일 저녁의 반찬도 검정콩조림이었다. 두유는 8월 3일 저녁, 4일 저녁, 5일 저녁 그리고 6일 점심에 섭취했다. 검정콩조림과 두유를 제외한 단백질원인 닭감자조림은 2일 저녁 한 차례 먹었다.


오씨의 일평균 단백질 섭취량은 35g. 30~49세 여성 평균 필요량인 40g에 못 미쳤다. 윤 교수는 “단백질 섭취가 매우 부족하고 식품 다양성이 매우 떨어진다”며 “신선한 채소 및 과일 섭취도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오씨는 앞으로도 이런 식사를 계속할 가능성이 크다. 그는 심장질환 등으로 면역력이 약해진데 이어 관절염, 허리디스크, 저혈당, 저혈압도 있어 외출을 거의 하지 않는다. 마트에서 장을 보는 일도 집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지난 4년을 돌이켜 봤을 때 병원, 집, 병원, 집 아니면 거의 외출은 없었어요.”

서울 강북구의 한 고시원에서 혼자 사는 김종환(가명·62)씨는 “여기서(고시원에서)는 내가 반찬을 제일 잘 해먹는 축에 속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보내온 식사 사진도 영양학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김종환(가명·62)씨가 지난 7월 28일 아침으로 먹은 비빔밥. 부추김치, 호박볶음, 가지나물, 계란후라이를 고명으로 얹었다. 김씨는 비빔밥을 두고 '만찬'이라고 표현했다. 김종환씨 제공

조건부 기초생활수급자인 김씨의 주식은 비빔밥이다. 계란, 호박볶음, 가지나물, 부추김치, 오이무침 등을 한 그릇에 담아 먹는다. 김씨는 7월 27일 아침과 저녁, 28일 아침, 29일 저녁, 30일 저녁, 31일 아침 식사를 비슷한 형태의 비빔밥으로 먹었다.

그의 식단은 8개의 영양소 섭취가 원활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됐다. 과일군, 유제품군 섭취가 부족해 보인다는 분석이었다. 특히 그는 일주일 내내 거의 같은 반찬으로 식사해 식품 다양성이 낮다는 평가를 받았다. 윤 교수는 “비교적 균형 있게 식사하는 편이지만 필요한 열량을 다 섭취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동에서 노무사 시험을 준비하는 박민석(가명·23)씨의 식단도 식품 다양성이 매우 낮은 것으로 분석됐다. 박씨는 저소득층 무료 급식과 외부 식당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한다. 살고 있는 원룸에는 조리 도구가 없다. 박씨가 보내온 사진을 보면 그는 8월 3일 점심에 무료급식으로 받은 콩나물비빔밥을 절반 정도만 먹고 다음 날 아침 남은 밥을 먹었다. 8월 5일 받은 무료급식 가지김치볶음덮밥도 두 차례 나눠 먹었다. 무료 급식이 없는 날에는 햄버거를 먹었다.

그의 1일 평균 에너지 섭취량은 1497㎉로 평균 필요량(2600㎉)의 57.5%였다. 과일과 채소 섭취도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햄버거 섭취의 영향으로 일평균 단백질 섭취량은 56g으로 필요량(50g)보다 많았다. 윤 교수는 “다른 조사 대상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단백질을 많이 섭취하고 있으나 패스트푸드 과잉 섭취가 우려된다”고 평가했다.

'저탄고지'는 딴 세상 얘기

저소득층 6명 식사의 공통된 특징은 탄수화물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탄수화물 섭취 비율이 높으면 당뇨, 고혈압, 대사증후군 등 만성질환 위험이 증가한다. 윤 교수는 “6명 모두 이 같은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평가했다. 만성질환 위험 감소를 위한 탄수화물 섭취 비율은 55~65%다.

서울 관악구 고시촌에 거주하는 장용기씨가 지난달 26일 대학동 길벗사랑공동체 ‘해피인’에서 나눠준 무료 급식 김치가지볶음덮밥을 점심으로 먹고 있다. 윤성호 기자

윤 교수는 이들의 식사 사진이 수십년 전 한국인의 식단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최근 추세인 저탄수화물·고지방(저탄고지) 식단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윤 교수는 “점차 곡류를 줄이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데 이분들은 여전히 곡류 위주의 식사를 한다. 1960, 70년대처럼 식단의 80~90%를 탄수화물이 차지하는 식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단백질 섭취가 부족하면 질병에 대한 민감도가 증가해 감염성 질환에 취약해진다. 가난하다고 이를 모를 리 없다. 최씨는 “분명 식비를 늘리면 영양 불균형이 해소가 되겠죠. 면역력이 강화되면 제 몸에 잔존해 있던 그런(나쁜) 부분들도 약물치료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해소될 확률이 높을 거고요”라고 말했다.

올해 한국조리학회에 실린 ‘한국 성인의 결식행태에 따른 건강 및 식생활상태 분석’ 논문에 따르면 식사를 제때 챙겨 먹는 비결식군이 결식군에 비해 당화혈색소, ALT(알라닌아미노전달효소), 총콜레스테롤, 적혈구, 엽산 등의 수치가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화혈색소는 혈액 내에서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 내의 혈색소가 얼마나 당화(糖化)되었는지 표현하는 것으로 당뇨병 지표로 쓰인다. ALT는 간세포에 함유된 효소로 간이 손상되면 수치가 높아져 간 손상 확인에 활용된다.

이슈&탐사2팀 권기석 양민철 방극렬 권민지 10000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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