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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 개똥은 아니죠! 인턴기자 ‘줍깅’ 체험기

[모두가 지구의 사람들] 1. 쓰레기 줍, 건강도 줍~ MZ세대 환경운동

서울 송파구 성내천을 뛰는 기자(왼쪽)와 ‘두루누비’ 어플을 활용해 산책 시간을 기록한 모습(오른쪽)

15일 밤, 산책하는 사람들로 붐비는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공원과 성내천을 찾았다. 한 손엔 쓰레기봉투를 다른 한 손엔 집게를 들었다. ‘줍깅’ 봉사활동의 시작은 완벽했다.

가벼운 티셔츠와 레깅스를 입고 쓰레기를 향해 뛰다보니 ‘힘들게 쓰레기를 줍는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운동하면서 우리 환경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니. 게다가 봉사활동 시간을 준다니. 문득 학창 시절이 생각나 즐거운 마음이 들었다. 공원에 없어야 할 담배꽁초 냄새를 맡았을 때 빼고는 모든 것이 좋았다.

이번 체험은 송파구 방이1동 주민센터와 함께했다. 봉사활동을 신청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한국관광공사에서 개발한 걷기 어플인 ‘두루누비’를 다운로드해 활동 시간과 거리를 제출한 후 봉사시간을 인정받으면 된다. 줍깅 봉사활동은 10월 3일까지 가능하다.

플로깅에 함께한 사람들. 한은진 기자

줍깅에 함께한 김학순씨(25)는 “환경공학을 전공하면서 환경 문제에 심각성을 느꼈고 내가 쉽게 환경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다가 줍깅을 알게 됐다”면서 “주기적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혼자 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봉사할 수 있다는 점을 줍깅의 매력으로 꼽았다. 줍깅은 MZ세대의 전유물이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할 수 있는 활동이었다.

쓰레기 줍는 모습에... ‘개똥’까지 버리고 가는 사람들
기자가 직접 비닐봉투에 담긴 생활쓰레기와 스티로폼을 치우고 있다. 한은진 기자

‘현실 줍깅’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봉투에 쓰레기가 점점 쌓여 무거워지자 더 이상 뛸 수 없었다.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부터 줍느라 ‘뛴다’는 목적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무거운 봉투를 들고 걷는데 생활쓰레기로 가득찬 작은 비닐봉투를 발견했다. 마치 ‘나 아닌 누군가가 버려주겠지’라는 생각인 듯 잘 묶여져 있었다. 함께 한 활동가는 “그래도 깨끗하게 버려져 있으니 좀 낫네”라며 위안을 건넸다. 무난하게 처리할 수 있는 쓰레기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졸지에 개의 분변을 처리하게 된 기자의 모습(왼쪽), 분변이 담긴 봉투(오른쪽). 한은진 기자

쓰레기를 주운 후 걸음을 옮기는 순간이었다. 반려견과 산책하던 시민이 다가와 “이거 버리고 가도 되죠?”라며 물었다. 당황해 대답을 주저하던 순간, 그는 기자가 든 쓰레기 봉투에 투명한 비닐봉투를 넣은 채 그대로 질주했다. 뭔 봉투지? 봉투를 열었는데 곧바로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봉투엔 반려견의 분변이 담겨있었다. ‘이런 것까지 내가 처리해야 하나’. 후회가 밀려왔다. 쓰레기를 줍는 사람을 보면 ‘내 쓰레기를 저 사람에게 버려야겠다’고 생각하지 말고 ‘난 쓰레기를 버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해야 할텐데.

쓰레기들을 다 줍고 어떻게 분리해야 할지 고민이 앞섰다. 일단 주변 공중화장실로 가 개의 분변을 처리한 뒤 송파구 방이1동 주민센터로 돌아가 분리수거를 하기로 결정했다.

분리수거함 있으니 다행이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쓰레기가 분리수거 되지 않은 채 버려져 있는 모습(왼쪽)과 기자가 직접 분리수거를 하는 모습(오른쪽). 한은진 기자

송파구 방이1동 주민센터의 분리수거함에는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들이 뒤섞인 채 버려져 있었다. 주민센터 직원은 “아무리 분리수거를 해도 워낙 함부로 버리고 가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분리수거 하는 데에 애를 많이 먹는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주운 쓰레기를 적당히 분리수거 하고 가겠다는 생각이 금세 바뀌었다. 뒤섞인 쓰레기들을 분리수거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 날의 줍깅을 마칠 수 있었다.

줍깅은 쓰레기를 줍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적절한 곳에 쓰레기를 처리해야 비로소 완성된다. 나는 송파구 방이1동 주민센터의 도움으로 분리수거까지 수월하게 마쳤지만, 줍깅에 참여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리수거의 장벽에 부딪히곤 한다.

‘지구를 닦는 사람들’의 뜻을 담은 비영리단체 ‘와이퍼스’의 대표 황승용 씨는 “공공 분리수거함이 있는 곳을 파악하거나 집에 가져와 분리수거를 하는 것이 가장 최선”이라고 조언했다. 출처를 알 수 없어 위험한 쓰레기들이 있다는 염려에 황 대표는 “일단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활동”이라고 덧붙였다. 봉사활동을 기획한 송파구 방이1동 주민센터의 김주명 주무관 또한 “재활용 자판기를 곳곳에 설치해 빈병 보조금을 주는 식으로 분리수거 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잠깐, 그래서 ‘줍깅’이 뭔데?
우리나라에서 ‘줍깅’이 된 플로깅(Plogging)은 스웨덴에서 유래했다. ‘이삭을 줍는다’는 뜻의 스웨덴어 Plocka upp과 조깅(Jogging)의 합성어이다. 한 마디로 ‘쓰레기 주우면서 조깅하기’다. 우리말로는 귀엽고 포근한 느낌으로 줍깅, 쓰담달리기로도 쓰인다.

머나먼 북유럽에서 건너온 줍깅은 건강과 환경이 화두가 된 요즘 우리 사람들까지 공략했다. SNS를 통해 ‘인증샷’ 남기기 좋아하는 MZ세대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다. 쓰레기를 처리할 봉투와 집게, 장갑 등으로도 충분하니 품 들일 걱정도 없다.

와이퍼스 회원들이 각자 플로깅에 참여한 모습(윗줄), 와이퍼스 회원들이 모여 플로깅을 한 모습(밑줄). 와이퍼스 제공

‘와이퍼스’의 황 대표는 “5명으로 시작한 단체 채팅방이 일년 반만에 500명으로 늘었고, SNS 팔로어 수가 2600명 정도로 늘었다”며 “코로나19 상황인데도 개별적으로 매일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SNS에 활동 사진을 올려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공유하기도 하니 MZ세대에게는 안성맞춤 봉사활동이다.

‘MZ세대’에만 주목하는 사람들… 환경 남의 일이라는 인식 버려야
구글 캡처.

그럼에도 줍깅은 아직 갈 길이 멀다. 구글에 플로깅(줍깅)과 MZ세대를 함께 검색한 결과 아직도 기사 대부분은 ‘줍깅 하는 MZ세대’에 초점을 맞췄다. 선언적이고 소모적인 기사들로 인해 ‘줍깅 하는 착한 사람들’만 반짝 조명되고 마는 건 아닌지 걱정됐다.

또 기업들에게 줍깅은 MZ세대를 겨냥한 홍보 수단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다. 쓰레기 주우러 밖에 나올 수밖에 없던 사람들의 절박함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것’
서울시의 공공 쓰레기통. 가정에서 버려진 쓰레기로 추정되는 것들이 담겨져 있다. 한은진 기자

쓰레기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은 ‘공공 쓰레기통의 확충’이다. 과연 길가에 쓰레기통을 늘리면 쓰레기 문제가 해결될까. 그 전에 우리가 놓친 것이 있었다. 줍깅의 목적은 바로 ‘쓰레기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 있다.

황 대표는 공공 쓰레기통 확충에 대해 “버릴 곳을 만들어 환경 미화를 하겠다는 취지는 이해한다. 그러나 애초에 쓰레기가 나오지 않았으면 해결될 문제”라고 단언했다. 공공 쓰레기통에 가정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쉽게 확충을 논의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공공 쓰레기통 확충 문제에는 여러 방면의 장단점이 있지만 분명한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 기업이 쓰레기 배출을 줄이는 식으로 유통 방향을 점검하고, 정부는 이를 규제할 수 있는 수단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줍깅이라는 이름 아래 타인, 특히 MZ세대에게 쓰레기 처리 책임을 지울 일이 아니다. 줍깅이 선언적이고 소모적인 운동으로 남지 않도록 ‘모두가 쓰레기에 책임을 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지구의 사람들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한은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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