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원 학식, 3000원 컵밥… 눈물겨운 청춘의 끼니 [이슈&탐사]

[빈자의 식탁: ‘선진국’ 한국의 저소득층은 무엇을 먹고 사나] ④ 가난한 청년의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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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한 아파트에 사는 이현영(가명·21·여)씨가 지난달 22일 식사를 하고 있다. 158㎝에 39㎏인 이씨는 하루 두 끼만 먹는다. 방학 중 단기로 일하는 곳에서는 점심 식비를 지원해주지 않는다. 최현규 기자

서울의 한 대학교 3학년생 윤영석(가명·21)씨의 끼니 고민은 단순하다. 3000원짜리 컵밥과 5000원짜리 식당 도시락 중 무엇을 먹을까. 그는 오늘도 컵밥을 파는 노점상으로 향하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아직 젊으니까 괜찮을 거야.”

지방에서 홀어머니 아래에서 자란 윤씨는 대학 진학을 하며 상경한 뒤 방학마다 아르바이트를 했다.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영어학원에서 일했다. 학기 중에도 주말에는 과외를, 평일 저녁에는 학원 알바를 했다.

기숙사비 20만원에 통신비, 보험료, 교통비를 더하면 40만원 남짓. 여기에 식비까지 합치면 매달 70만원을 벌어야 한다. “저 혼자 고생하면 어머니 편하게 지내실 수 있다는 생각에 밥은 최대한 싼 거로 먹고 살았습니다.” 지난해 저녁을 거르는 생활을 2~3개월 했다가 몸무게가 7㎏ 빠졌다는 이야기는 어머니에게 하지 않았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 컵밥 거리에서 한 청년이 컵밥을 먹고 있다. 최현규 기자

기숙사에 사는 윤씨는 아침은 먹지 않고 점심, 저녁 두 끼만 먹는 날이 많다. 기숙사 저녁은 시간 맞추기가 어려워 잘 먹지 않는다. 한 끼 식사에 마지노선으로 정한 금액은 7000원. 취재팀은 그에게 1주일간 식사 사진을 모두 찍어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그가 보내온 사진 15장 가운데 8장은 5000원짜리 식당 도시락의 모습이었고, 2장은 각각 2500원과 2800원짜리 편의점 샌드위치였다. 가장 비싼 식사는 햄버거 프랜차이즈 KFC의 6600원짜리 버거 세트였다.

새로운 사각지대
식품영양 전문가들은 영양 불균형의 새로운 사각지대로 저소득층 20대 1인 가구를 꼽는다. 20대는 혼자 사는 경우 식습관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여기에 경제력까지 낮으면 건강을 해칠 최악의 식단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초일 대한지역사회영양학회장은 “알바를 하면서 연명해야 하는 20대 1인 가구는 진정한 영양 취약계층이고, 어지간한 경제 수준의 부모와 떨어져 혼자 사는 1인 가구도 영양 취약계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한 아파트에 사는 이현영(가명·21·여)씨가 지난달 22일 식사를 하고 있다. 이씨는 이날 식사로 콩나물국, 멸치볶음, 고구마순김치, 깻잎장아찌, 김을 먹었다. 최현규 기자

경기도 한 도시에서 외할아버지와 둘이 사는 대학생 이현영(가명·21·여)씨도 요즘 하루 두 끼만 먹는다. 방학을 이용해 단기 알바를 하는데, 일하는 곳에서 식사 지원을 해주지 않는다. 돈을 아끼기 위해 아침과 저녁을 집에서 먹고 점심은 거르는 경우가 많다. 158㎝에 39㎏인 이씨는 배가 고파 짜증이 많이 난다고 했다. “일 끝날 때쯤 되면 너무 힘이 없어서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져요.”

이씨는 어렸을 때 부모의 이혼을 계기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지방으로 떠난 어머니도 딸을 챙겨줄 형편이 안됐다. 이씨 본인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됐다. 수급비 수십만원에 알바를 해 번 돈으로 생활비와 교통비, 용돈을 해결한다.

외할머니가 지난해 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 ‘균형 있는 식사’는 더 어려워졌다. 이모할머니(외할머니의 여동생)가 가끔 보내주는 반찬으로 집에서 식사한다. “지금은 그냥 ‘배고프면 끼니 때운다’는 식으로 먹게 돼요. 아무래도 식비가 만만치 않으니까 골고루 챙겨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잘 안 하는 것 같아요.”

알바노조가 지난 4월 청년 56명(20~40세 54명, 40세 이상 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지. ‘한 달 수입이 부족한 경우 대처 방법’을 묻자 ‘식비를 줄인다’는 응답이 38건(복수응답 가능)으로 가장 많았다. 김지훈 기자

이씨처럼 집안 형편 탓에 알바를 하는 청년들은 경제적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식비부터 줄인다. 알바노조가 지난 4월 청년 56명(20~40세 54명, 40세 이상 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한 달 수입이 부족한 경우 대처 방법’을 묻자 ‘식비를 줄인다’는 응답이 38건(복수응답 가능)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음식의 질을 낮춘다’(27건) ‘끼니를 줄인다’(19건) ‘대체 음식을 먹는다’(16건) 등이었다.

최근 코로나로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서 밥을 제대로 못 먹는 청년은 급격히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구호단체 ‘희망친구 기아대책’의 ‘청년도시락 사업’에 올 상반기 지원자 1645명이 몰렸다. 중위소득 150% 이하 가구의 청년에게 식비를 지원하는 이 사업은 상반기 150명을 선정할 예정이었다.

이진호 기아대책 간사는 “신청자가 너무 많아 접수 기간을 반으로 줄일 수밖에 없었다”며 “하루 최소 한 끼라도 균형 잡힌 식사를 할 수 있게 함으로써 청년들의 건강과 자기존중감을 회복시켜주려 한다”고 말했다.

미래 위해 밥을 포기했다
올해 초 대학을 졸업한 신기윤(가명·28)씨는 로스쿨 법학적성시험(LEET) 준비를 위해 식비를 아낀다고 했다. 그는 LEET 인터넷 강의 수강과 교재 구매에 100만원 이상을 지출했다. 그렇다고 듣고 싶은 인터넷 강의를 다 들을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친구가 함께 수강하자는 강의를 비용 부담 탓에 거절한 적도 수차례였다.

한 청년이 서울 관악구 대학동의 한 식당 앞을 지나가고 있다. 권현구 기자

LEET 준비에 돈을 쓰는 대신 그는 1000원대 학생식당 밥을 자주 먹었다. 고기·생선 등의 주메뉴와 나물, 김치, 밥, 국 등이 나오는 백반 형태의 식사는 그에게 한 줄기 빛이었다. 학생식당에는 3000원대, 4000원대 밥도 있었지만 신씨는 주로 1000원대 메뉴를 택했다. 1000원대 밥에는 청국장찌개, 돼지숙주볶음, 꽁치무조림이 나왔다. 4000원대 밥은 오리주물럭, 돈까스김치우동나베 등으로 기억한다. “결국은 1000원대 밥을 먹게 되더라고요. 이 돈을 쓰면 다른 걸 못하니까 아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로스쿨 학비가 비싸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는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입학하면 전액 면제가 된다”고 말했다. “입학만 하면 생활비 대출이 가능하고 마이너스 통장 대출도 수천만원 되는 거로 알아요. 변호사 시험 합격해서 빚을 갚아나가는 삶을 살 생각입니다.”

서울 대학동 고시촌에서 노무사 시험을 준비하는 박민석(가명·23)씨도 미래를 위해 양질의 식사는 제쳐놨다. 매달 40만원씩 나가는 생활비 중 식비는 5만원 남짓. 그간 알바를 하며 모은 1000만원으로 합격 때까지 버텨야 하는 그에게 그 이상의 식비를 감당할 여력은 없다.

박씨는 저소득층에 무료 식사를 제공하는 길벗사랑공동체 해피인이 1주일에 두 차례 나눠주는 도시락을 2끼나 3끼에 걸쳐 나눠 먹는다. 그는 “제가 밥을 많이 안 먹어서 이거(무료 도시락) 받으면 두 끼 정도 먹는데. 2일 정도 버틴다”고 표현했다. 그에게 식사는 버티는 것이다.

박민석(가명·23)씨가 방문하는 식당의 메뉴판. 29개의 메뉴 중 5000원이 넘는 것은 7개 뿐이다. 박씨는 주로 3500원짜리 순두부찌개를 먹는다. 박민석씨 제공

그 밖의 식사는 외식으로 해결하는데 국수(2500원), 순두부찌개(3500원), 불고기버거(1900원), 데리마요버거(2900원) 등 천원짜리 지폐 몇 장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대부분이다.

영어학원에서 알바를 하는 윤영석씨가 식비를 최소화하는 진짜 이유도 공인회계사(CPA) 시험 준비 때문이다. 그는 “6개월 수강하는 인터넷 강의가 200만원, 14권 구매해야 하는 교재가 1권에 5만원”이라고 했다. “공부에 전념하기로 했으니까 거기에 돈 쓰는 게 먼저죠. 식비를 더 쓸 생각은 없어요. 아직 어리니까 대충 컵밥 사 먹고 한 끼 해결하면 되죠.”

모든 방법 동원해 아낀다
식비가 부족한 청년들은 공부 모임이나 친구들과의 약속이 부담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신기윤씨는 LEET 공부 모임의 저녁 식사 제안을 여러 차례 거절한 게 아픈 기억으로 남았다. 함께 스터디를 하는 사람들이 저녁을 먹자고 하면 그는 ‘체중을 관리한다’ ‘바빠서 먼저 가야 한다’며 자리를 떴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 컵밥 거리에서 한 청년이 손에 가방을 든 채 컵밥을 먹고 있다. 최현규 기자

배달 음식을 먹자는 제안도 부담이었다. “공부하려면 든든해야 하니까 설렁탕 같은 거 시켜 먹자고 하는데 한 그릇에 9000원 하거든요. 배달비까지 하면 만원을 내야 해요. 거기다 대고 돈 없다고 다른 거 먹겠다고 말하기 쉽지 않잖아요.” 어쩔 수 없이 모임에서 식사를 하면 신씨는 1주일 내내 1000원대 학생식당 밥을 먹으며 지출을 만회했다.

이현영씨도 최근 친구 3명과 ‘힙한’ 카페에 방문했다가 비싼 커피 가격에 놀라 되돌아 나왔다. 가장 저렴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1잔에 6000원이었다. “진짜 예쁜 카페가 생겨서 한 번 갔는데 제일 싼 게 6000원인 거예요. 그래서 안 사먹고 다른 곳으로 갔어요.”

청년들은 식비에 들어가는 돈을 아끼기 위해 정보력을 최대한 동원한다. 공사장과 물류창고에서 허리를 다친 뒤 일을 못 하고 있는 최상헌(가명·38)씨는 매달 1일 근처 모든 편의점을 방문한다. 바뀐 세일 행사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편의점 별로 주요 세일 품목을 기록해뒀다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이용하거든요.”

청년들이 서울 동작구 노량진 컵밥 거리에서 컵밥을 먹기 위해 대기 중이다. 최현규 기자

그는 주식처럼 먹는 라면과 햇반의 가격을 모두 암기하고 있었다. “햇반 200g짜리가 한 박스에 2만2000원 정도예요. 24개가 들었거든요. 한 끼에 하나 먹으면 8일 먹는 양이에요. 그렇게 햇반 2박스 사고 라면이랑 라면사리 사면 한 달에 7만5000원 정도가 듭니다.”

신기윤씨는 오래 저장할 수 있는 쌀, 라면, 김 등을 살 때 ‘대리구매’를 활용한다. 신용카드 결제를 대신 해주는 사람에게 현금을 보내 구매를 부탁하는 방식이다. 대리 결제자는 멤버십 활용, 포인트 적립, 카드 실적 채우기 등을 위해 대리구매를 한다. 구매를 부탁하는 사람은 온라인 최저가보다 더 싸게 물건을 구입할 수 있다.

신씨는 “구매를 원하는 물건, 금액, 쇼핑몰 등을 게시글로 남겨두면 대리결제 의사가 있는 사람한테 연락이 오고 거래가 시작됩니다. 10~15% 할인 효과가 있어 살 거 있으면 웬만하면 그렇게 주문해서 받죠.” 간혹 물건값만 가로채고 잠적하는 사기꾼도 있다. 신씨도 사기를 당해 상대방을 경찰에 신고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적지 않은 돈을 아낄 수 있어 그는 대리구매를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이슈&탐사2팀 권기석 양민철 방극렬 권민지 10000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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