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은 왜 시민단체 손보기에 나섰을까…‘서울시 바로세우기’의 이면

박원순 흔적 지우기, 내년 지방선거 사전포석, 정치적 국면전환 카드, 민관협치 몰이해 등 분분

오세훈 서울시장

오세훈 서울시장이 시민사회단체와 전면전을 예고했다. 오 시장은 서울시의 민간위탁, 보조사업과 관련해 ‘서울시 곳간이 시민단체의 ATM기로 전락했다’ ‘시민단체형 다단계’ ‘전임 시장이 박아놓은 대못’ 등 자극적인 표현을 써가며 시민사회단체를 강도높게 비판했다. 반면 시민사회단체들은 근거도 없이 싸잡아 비난하고 있다며, 오 시장이 정상적인 행정가의 모습이 아닌 정치적인 액션을 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오 시장은 왜 서울시의 감사가 끝나지도 않은 시점에 시민사회단체에 선전포고를 했을까.

#박원순 전 시장 흔적 지우기?
오 시장의 최근 행보는 시민운동가 출신의 박원순 전 시장이 남긴 흔적을 청산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오 시장은 지난 16일 브리핑에서 “전임 시장 시절 만든 ‘서울시 민간위탁 관리지침’에는 행정의 비효율을 초래하는 각종 비정상 규정이 ‘대못’처럼 박혀 있다”며 “잘못된 것을 바꾸려고 해도 바꿀 수 없도록 조례, 지침, 협약서 등 다양한 형태로 시민단체에 대한 보호막을 겹겹이 쳐놓은 것”이라며 박 전 시장을 겨냥했다. 서울시의회는 오세훈TV ‘사회주택’ 논란을 비롯해 오 시장의 서울시 바로세우기가 박 전 시장의 흔적 지우기라고 주장한다. 이승훈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사무처장도 “오 시장이 지적한 조례나 지침 등은 전임 시장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적 절차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라며 “문제가 있다면 시의회 의원들을 설득해 바꿔나가면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내년 지방선거를 위한 사전 포석?
지난 3일 서울시의회 본회의 시정질문 도중 오 시장이 발언기회를 주지 않는다며 갑자기 퇴장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오 시장은 서울광장 조례 개정과 무상급식으로 서울시의회와 갈등을 빚었던 2010년 7월~2011년 8월 총 43회의 본회의 중 24회를 불참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의회 더불어민주당은 논평을 통해 “10년 전, 서울시를 갈등과 혼란으로 몰아넣었던 오세훈의 反의회주의, 反민주주의의 망령이 다시 살아났다”며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의회민주주의를 유린한 이번 사태에 대해 서울시민과 서울시의회에 고개숙여 사과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오 시장은 지난 4월 취임 초기만 해도 상생과 협치를 강조하며 시의회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조직개편안 처리,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 인사청문회 등에서 시의회와 갈등을 겪다가 급기야 일방적인 본회의 퇴장으로 선을 넘었다는 지적이다. 오 시장은 더불어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시의회의 정치지형이 변하지 않는 한 원만한 시정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시민들에게 직접 호소하는 방식을 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서울시 바로세우기도 시의회를 겨냥한 측면이 있다. 오 시장은 “해묵은 문제들을 즉시, 일거에 뿌리 뽑고 싶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시의회의 협력을 구하면서 함께 바꿔나가는 과정에도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간위탁, 보조사업 관련 조례를 바꾸기 위해서는 시의회의 협력이 절실하다. 하지만 시의회는 11월 행정감사와 12월 예산심의를 통해 철저히 검증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오 시장과 대충돌이 예상된다. 시의회 관계자는 “민간위탁, 보조사업과 관련해 서울시에 방대한 자료제출을 요구해 기획조정실이 멘붕상태에 빠졌다고 한다”며 “행정감사는 물론 행정조사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실적 부진에 따른 국면전환 카드?
오 시장은 지난 4월 보궐선거에서 재개발·재건축 규제완화를 핵심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다. 주요 재건축 아파트 단지에서는 기대감이 클 수밖에 없다. 서울시는 오 시장 취임 이후 재건축 조합과 간담회 등을 통해 주민들의 요구사항을 수렴하고 향후 절차에 대해 안내하고 있다. 서울시의 달라진 행정에 좋은 평가가 나오고 있으며 일부 단지에서는 오랫동안 보류된 건축심의가 통과돼 사업에 속도를 내는 곳도 있다. 하지만 서울시가 독자적으로 재건축을 활성화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국토교통부가 권한을 갖고 있는 안전진단 기준 완화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국토부는 부동산 시장이 불안정한 상황에서는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을 완화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현재와 같이 집값이 오르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내년 6월 지방선거 이전에 안전진단 기준이 완화되기는 쉽지 않다. 오 시장으로서는 내년 지방선거때 공약이행에 대한 실적을 내놓아야 하는데 녹록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사회단체가 부당하게 개입해 이득을 본 민간위탁, 보조사업의 문제점을 부각시켜 국면전환을 시도하고 시민들의 지지를 얻겠다는 포석이 아니겠느냐는 분석이 나온다.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오 시장이 부동산 규제완화 실적이 나오지 않자 시민단체 손보기로 국면전환을 하려는 것 같다”며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심으면서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10년의 갭, 민·관 협치에 대한 몰이해?
박 전 시장 시절 시민사회단체 출신 인사들이 개방형 공모로 대거 서울시에 입성했다. 명분은 민간의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를 행정에 접목하고 민·관협치(Governance)를 강화한다는 것이었다. 일부 성과도 있었지만 부작용도 있었다. 오 시장이 지적한 대로 시민단체들끼리 사업을 몰아주고 잘못을 덮어주고 했던 사례도 있다. 이에 따라 오 시장은 서울시 조직개편을 통해 시민사회단체 출신들이 많이 포진했던 개방직을 관료들이 맡는 일반직으로 대거 전환했다.
하지만 오 시장이 10년 전과 달라진 민·관협치의 행정 트렌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순철 경실련 사무총장은 “다양한 행정 수요를 서울시가 다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시민사회단체와 협력하고 공동 사업도 하는 것이다”며 “특히 사회복지 등 행정이 못하는 부분을 시민사회단체가 보완해주는 흐름을 오 시장이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바로세우기는 민관협력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도, 모든 시민사회의 참여를 막자는 것도 아니다”면서 “다만 지금 시행되고 있는 보조금과 민간위탁 사업들이 꼭 민간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업인지 점검해보고 시민의 혈세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단체인지 옥석을 구분해 예산 누수를 줄이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정면돌파형 스타일
이번 서울시 바로세우기가 오 시장의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업무 스타일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해석도 나온다. 서울시 관계자는 18일 “오 시장은 조금이라도 불합리하거나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대충 넘어가지 않는다”며 “정치적인 유불리를 넘어 정면돌파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그의 이러한 스타일이 잘 드러난 것이 2011년 무상급식 주민투표다. 당시 서울시의회에서 제정한 무상급식 조례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거부권을 행사했으나 시의회가 재의결하자 주민투표를 제안했고 결국 투표율이 기준에 미달돼 사퇴하게 됐다. 오 시장은 지난 16일 “시 전체 민간위탁, 보조사업 중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마을, 협치, 도시재생, 사회적 경제 등 민간위탁 9개 분야, 민간보조 12개 분야를 살펴보니 올해 1월부터 현재까지 약 9개월간 민간보조금과 민간위탁금으로 집행된 금액만 1160억원에 이르고 지원받은 단체도 887곳이나 된다”고 밝혔다. 이어 “민간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활용해 효율성을 높이려고 시도한 민간위탁이 오히려 효율성과 서비스 질을 저하시키는 현상이 나타났다”며 “재정낭비를 막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서비스 공급 방식에 대한 성찰은 진보와 보수를 넘어 선진국의 지방정부에서도 활발히 시도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재중 선임기자 j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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