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우리가 결정한다’…검찰 사건공개 왜 이러나 [이슈&탐사]

“공개심의 대상은 검찰 결정…심의위원은 의견만”
전국 66개 검찰청 보도자료 전수 분석
심의위 거친 검찰 보도자료, 26.5%에 불과

“어떤 형사사건을 어떻게 공개할지는 검찰이 결정한다. 위원은 안건이 오면 의견을 말씀드릴 뿐이다.”

검찰 형사사건공개심의위원회(심의위)에서 활동 중인 한 위원은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검찰이 제시한 방안을 따라간다”는 언급도 나왔다. 심의위는 2019년 12월 검찰개혁 일환으로 도입됐다. 법무부는 당시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제정하며 중요 형사사건의 구체적 내용을 공개할 때 심의위 의결을 거치도록 했다. 심의위 구성은 ‘민간위원을 과반수 이상으로 한다’고 규정돼 있는데, 이는 사건 공개 과정에 국민을 참여시켜 검찰을 견제하고 투명하게 사건 공개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취재에 응한 위원들은 심의위가 사실상 검찰 뜻대로 운영된다고 말했다. 제도의 도입 취지가 흐려진 것이다.

국민일보가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 시행 이후 지난달까지 공개된 전국 66개 검찰청 보도자료 452건을 전수 조사한 결과, 형사사건 공개 기준은 제각각이었다. 심의위를 거치지 않고 사건 정보를 공개하거나 보도자료에 심의위 의결 여부를 명시하지 않는 등 규정 위반 사례도 많았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의 선택적 공보에 따라 심의위 제도가 자의적으로 운영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 법무부·검찰 고위직 판단에 따라 사건 공개가 자의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심의위에 올릴 사건 자체를 모두 검찰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검찰이 심의위를 아예 열지 않는 방식으로 심의위 판단 절차를 생략하더라도 이를 감독·견제할 수 있는 장치는 없다.

형사사건 공개, 사실상 검찰 맘대로

국민일보는 각급 검찰청 소속 심의위에서 활동 중인 민간위원들을 인터뷰했다. 위원들은 형사사건 공개 여부를 결정할 때 검찰이 설정한 범위 내에서만 논의가 이뤄진다고 말했다. 수도권의 한 지방검찰청에서 활동 중인 A위원은 “검찰이 먼저 ‘이 범위에서 이 범위까지 저희들이 공개하려 한다’고 얘기하는 식”이라며 “검찰도 (구체적인 방안 없이) 회의를 진행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이어 “한 번도 (검찰 제안에) 반대해 본 적은 없다”며 “특별히 문제가 없으면 검찰 안을 따라간다”고 말했다.

다른 검찰청 심의위에 참여한 B위원은 “검찰이 처음부터 사건 관계인의 실명을 공개하지 않는 방향으로 정해 온 경우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검찰은 피의자 혐의를 목록화해 그중에 뭘 공개할 것인지 말 것인지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물어보는 정도”라고 전했다.

위원들에 따르면 어떤 사건을 심의위 논의 대상으로 삼을지는 검찰이 결정한다. 심의위에 오르는 사건은 주로 언론에 이미 보도된 사건이라고 한다. 문제는 만약 검찰이 특정 사건을 공개하지 않으려고 작정한다면, 심의위 또는 다른 제3의 기구가 이를 견제하거나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다. C위원은 “언론에서 다루지 않은 사건들은 아예 심의위 논의대상이 아니다”며 “논의 대상 사건들은 대부분 경찰 단계에서부터 보도가 많이 됐던 사건”이라고 말했다.


D위원은 “개별 사건에 대해 심의할지 말지 여부를 결정하는 건 위원들의 권한이 아니라 검찰 권한”이라고 말했다. B위원은 “검찰이 언론에서 공개를 요구할 줄 알고 미리 심의위에서 정보 공개 의결을 받아 놓는 경우도 있다”며 “그런데 막상 언론이 정보를 요구하지 않으면 공개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무부 규정에 따르면 심의위에 심의 안건을 올리는 권한은 각급 검찰청 소속 공보관이 갖고 있다. 주임 검사나 사건관계인, 출입기자단 등의 의견을 듣도록 돼 있지만 이들이 심의 대상 사건을 고를 수는 없다. 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주요 기준은 ‘국민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는 중요 사건’ 등이다. ‘알릴 필요’ 여부를 판단하는 주체는 검찰, 구체적으로는 각급 검찰청 고위직이다.

공보 경험이 있는 한 검찰 관계자는 “보도가 많거나 언론 문의가 많은 사안이 (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른 검찰 관계자는 “사건 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주체는 현재 심의위 구조상 결국 위원보다는 각급 검찰청 기관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치적 사건 등 민감한 건의 경우 자의적이고 편향적으로 사건 공개를 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코로나19 확산 탓에 심의위는 최근 서면·전화·이메일 등 비대면 방식으로 진행됐다고 한다. 심도 깊은 대면 토론을 통해 사건 정보 공개를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E위원은 “코로나19 확산 문제 때문에 검찰 입장을 비대면으로 듣고 의견을 밝히고 있다”며 “전화로 (검찰 측) 설명을 듣는 데만 30분이 걸린 적도 있다”고 말했다.

문재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9일 “기본적으로 심의위에 급하게 안건이 올라올 텐데 그렇게 되면 위원 대부분 공개하라는 입장이 될 것”이라며 “결국 검찰 편의를 위해 홍보 하고 싶은 것만 하는 방식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건 공개 기준이 임의적이고 심의위도 그렇게 운영된다면 심의위가 실질적인 역할을 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심의위 패스’ 보도자료 73.5%…규정 위반도 다수


검찰은 법무부 규정상 마음만 먹으면 아예 심의위를 열지 않을 수 있다. 구체적인 형사사건 정보를 공개하려면 심의위를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을 일부러 거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형사사건이 어떤 것이고, 이 가운데 어떤 사건을 공개 또는 비공개할지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나 기준, 관리·견제 장치는 없다.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이 시행된 2019년 12월 1일부터 지난달까지 공개된 검찰 보도자료 452건 중 심의위 의결을 거친 것은 120건(26.5%)에 불과했다. 국민일보가 검찰청 홈페이지에 올라온 전국 66개 검찰청 보도자료를 전수 분석한 결과다. 서울중앙지검은 전체 55건의 보도자료 중 21건에만 심의위 의결을 거쳤다고 명시했다. 수원지검은 전체 24건 중 4건, 대구지검은 23건 중 4건, 창원지검은 14건 중 2건, 의정부지검은 11건 중 2건만 심의위 의결을 거친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 출신 법조계 관계자는 “각급 검찰청 기관장의 의사에 따라 특정 사건 보도자료를 낼지 말지, 이를 심의위에 올릴지 말지가 대부분 결정된다”며 “이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 인사권자 눈치를 보느냐 안 보느냐에 따라 그 결정은 오락가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는 심의위를 임시방편적으로 운영하는 느낌”이라며 “그때그때 이 사건은 공개해도 되겠다는 식으로 심의위를 소집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세부적인 원칙과 기준을 정해놓고 해당 기준에 해당되면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원칙적으로 공개하면서 심의위 검토를 거치는 틀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각급 검찰청이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위반한 경우는 37건(8.2%)이었다. 규정을 준수하지 않은 경우는 대부분 보도자료에 공개 요건과 범위를 명시해야 한다는 규정 15조를 위반한 것이었다.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은 원칙적으로 피의자의 실명 공개를 금지하고 있다. 예외적으로 실명을 밝힌 경우엔 심의위를 거쳤다는 점을 보도자료에 적시해야 한다. 그런데 이를 어긴 사례가 21건이나 됐다.


서울중앙지검은 보도자료 55건 중 13건(23.6%)이 15조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1월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 등 사건관계인의 실명을 밝히고 심의위 의결을 통해 이를 공개했다는 근거를 명시했다. 지난 6월 여성으로 가장해 성착취물을 제작·판매한 혐의로 회사원 김영준씨를 기소할 때도 실명을 공개하고 보도자료에 근거를 남겼다.

그러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송철호 울산시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 이웅열 코오롱그룹 명예회장 등을 기소할 때는 실명을 공개하면서도 심의위 의결 여부를 보도자료에 적시하지 않았다. 조주빈 등 ‘n번방’ 사건과 관련된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보도자료만 놓고 보면 심의위를 열지 않고 실명을 공개한 것으로 판단될 수 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제도 시행 초기에 공개 요건과 범위의 표기가 다소 통일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서도 “실명보도를 위한 심의위 의결 절차는 모두 준수했다”고 해명했다.

수원지검 성남지청은 지난해 3월 김만복 전 국가정보원장을 불구속 기소하면서 실명을 공개했지만 심의위 의결 여부를 보도자료에서 누락했다. 이에 대해 성남지청 관계자는 “해당 기재가 필수는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노원 세 모녀 살인사건’의 피고인 김태현의 실명을 공개하면서 근거를 따로 적지 않은 서울북부지검도 마찬가지 해명을 내놨다.


심의위 의결을 거쳐 공개해야 한다고 규정된 정보를 심의위 의결 없이 공개한 경우도 있었다. 창원지검 마산지청은 지난해 4월 유튜브 생방송 중 질병관리본부 콜센터 상담원에게 욕설한 대학생을 불구속 기소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검찰은 이 보도자료에 “모욕죄 범죄전력이 있다”고 썼다. 이 정보는 심의위 의결을 거쳐야만 공개할 수 있는 정보인데 마산지청은 심의위를 열지 않았다. 마산지청 관계자는 “상담원 상대로 욕설을 하는 등 죄질이 무겁다는 점을 부각하면서 나온 설명”이라고 말했다.

규정을 위반한 일부 검찰청 관계자는 국민일보 질의에 “보도자료 작성하는 분들의 스타일마다 달라질 수 있다”거나 “공개 근거나 범위를 적는 건 의례적 행위”라고 답변했다. 검찰개혁 일환으로 추진된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이 일선에선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모습이었다. 법무부 대변인실은 규정 위반과 관련해 “예외적으로 심의위 의결을 거쳐 실명을 공개할 때는 이를 보도자료에 적시하는 게 규정 취지에 맞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구자창 문동성 박세원 기자 critic@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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