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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석, ‘다원예술’에 가장 어울리는 아티스트

24일부터 국립극단에서 장소특정형 퍼포먼스 ‘코오피와 최면약’ 선보여

서현석 작가가 지난 16일 국립극단에서 신작 '코오피와 최면약'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지훈 기자

미술관, 영화제, 공연장에서 모두 초청받는 아티스트가 있다. 바로 비디오 아트, 다큐멘터리, 퍼포먼스 그리고 글쓰기를 통해 공간과 감각 탐구에 천착해온 서현석(56) 작가다.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이기도 한 서 작가는 장르와 형태의 경계에 얽매이지 않는 실험적 예술을 지칭하는 ‘다원예술’에 가장 어울리는 아티스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 작가의 최근 작업만 보더라도 1960년대 여의도 마스터플랜을 추적하는 다큐멘터리 ‘마스터플랜’은 2018년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에 이어 2019년 다큐멘터리 영화제에 초청됐다. 또 2019년 북서울미술관 기획전에서 예술의 이상이 상실된 상황을 VR(가상현실) 영상으로 조명한 ‘먼지극장’을 출품한 서 작가는 지난 3~4월엔 국립현대미술관 연중기획 ‘다원예술 2021: 멀티버스’의 일환으로 관람객이 VR 장비를 착용하고 가상공간 속 빈 전시실을 이동하며 체험하는 ‘X(무심한 연극)’를 선보였다.

24일부터 10월 3일까지 서울로7017 및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선보이는 ‘코오피와 최면약’은 국립극단이 서 작가에게 서울로7017(옛 서울역 고가도로)와 서계동 국립극단을 활용한 장소특정형 퍼포먼스를 의뢰하면서 만들어지게 됐다. 지난 16일 국립극단에서 서 작가를 만나 그의 예술세계 및 신작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미술관·영화제·공연장이 모두 초청하는 아티스트

서울 세운상가를 배경으로 한 서현석 작가의 장소특정형 퍼포먼스 '헤테로토피아'. 서현석-서울아트마켓 제공

한국과 미국에서 영상이론과 창작을 공부한 서 작가는 2000년대 전반부터 실험적인 영상 및 영상설치 작업을 선보이며 이름을 알렸다. 그리고 2004년부터 퍼포먼스를 연출하거나 퍼포먼스와 영상을 결합한 작품을 만들며 예술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오래지 않아 그는 무용 연극 미술 음악 영화 퍼포먼스 등 현대예술 장르 간 융·복합을 근간으로 하는 다원예술 축제 ‘페스티벌 봄’(2007~2016)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가 됐다. 2009년 ‘FAT SHOW’, 2010년 ‘ㅣㅣㅣㅣㅁ’, 2011년 ‘헤테로토피아’, 2013년 ‘무대공포’ 등이 페스티벌 봄에서 선보여졌다.

한국 예술계에 다원예술 돌풍을 일으킨 페스티벌 봄은 미술보다 보수적인 공연 장르에 큰 자극을 줬는데, 내러티브를 재구성하고 비재현적인 서현석의 작업은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세운상가(‘헤토로토피아’), 영등포시장(‘영혼매춘’), 서울역(‘헤테로크로니’) 등 다채로운 장소를 배경으로 한 서현석의 장소특정형 퍼포먼스는 관객이 장소와 유기적으로 어우러지는 상황을 경험하도록 만든다. 즉 관객이 느끼는 감각이 바로 공연이 되는 퍼포먼스라고 할 수 있다.

“미술 장르에서 ‘퍼포먼스’라고 부르는 작업은 1950~60년대 시작됐습니다. (퍼포먼스는) 미술관에 완성된 작품을 전시하는 게 아니라 신체적 행위라는 과격한 방식으로 관객에게 질문을 던졌는데요. 기존 장르의 틀을 깨는 이런 시도가 1970~80년대 공연예술에도 영향을 끼쳐서 극장을 벗어나 일상 공간에서 공연하는 움직임이 나오게 됐습니다. 1990년대 이후 유럽 공연계에서 훨씬 파격적인 시도들이 나오게 되는데, 제가 그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또는 영상 작업에서 출발했지만 서 작가가 퍼포먼스에 눈을 돌린 것은 ‘매체에 대한 성찰’이라는 점에서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는 “21세기가 되면서 영화는 매우 보수적으로 됐다. 극영화가 너무나 강력한 모델이 되면서 더 이상 실험을 하지 않는다”면서 “이에 비해 공연예술은 다양한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국내외에서 융·복합적인 다원예술이 시도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퍼포먼스는 내게 일종의 외도였지만 예술의 영역을 새롭게 고찰하게 만드는 중요한 도구가 됐다”면서 “퍼포먼스 작업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감각’, 다른 그 어떤 매체도 구현할 수 없는, 관객의 신체 감각”이라고 덧붙였다.

서 작가는 장소특정성에 기반하여 관객의 감각을 극대화하는 작업을 2010·2011년 ‘헤테로토피아’ 이후 지속하고 있다. 이런 작업은 관객에게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어디에 둘 것인지 고민하도록 만들면서 자신의 감각에 집중할 수 있도록 고립시키는 것이 특징이다. 공연장이나 영화관에서 관객들이 함께 공연을 보며 이미 훈련받은 대로 익숙해진 감각을 느끼는 것과 정반대다.

서현석 작가가 2017년 남산예술센터에서 선보인 '천사-유보된 제목’부터 VR을 처음으로 활용했다. 남산예술센터 제공

새로운 장소성과 관객의 감각 극대화

“장소특정형 퍼포먼스에서 중요한 것은 관객이 장소의 특성 또는 비밀과 마주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오가는 골목이나 건물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는 겁니다. 이를 위해서는 관객의 감각을 깨우는 게 중요합니다. 관객이 평소 익숙한 감각을 새롭게 재편성 할 수 있도록 유도하죠. 이런 작업은 흔히 아는 연극은 아니지만 매우 연극적이죠.”

서현석은 특히 2017년 남산예술센터에서 선보인 ‘천사-유보된 제목’부터 VR을 활용해 그동안 알아왔던 공간을 다른 관점으로 다시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작업을 즐겨하고 있다. ‘천사-유보된 제목’은 물리적 공간에 디지털 미디어를 통한 가상 이미지가 덧입혀짐으로 남산예술센터는 새로운 장소성을 가지게 됐다. 그리고 실제에 속하는 동시에 가상에서도 존재하는 관객은 혼자 극장을 누비며 배우이자 관객이 되는 경험을 했다. 이런 관람 방식을 통해 관객들이 독립적으로 사유하고, 남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신의 경험에 직면하는 것이 그의 의도다. 그는 “영상을 했기 때문에 VR을 자연스럽게 활용하게 된 것 같다. 기존 영상과 가상 세계 영상의 차이가 흥미롭다”면서 “VR을 통해 창조된 가상세계에서 관객은 감각과 인식을 새롭게 느끼게 된다”고 설명했다.

국립극단에서 선보이는 신작 '코오피와 최면약'은 소설가 이상이 살았던 1930년대 현재를 중첩시킨다. 국립극단 제공

국립극단의 ‘코오피와 최면약’ 역시 VR을 활용한 작품으로 소설가 이상이 살았던 1930년대를 재구성하고 2021년의 현재와 중첩시킨다. 이로써 국립극단이 있는 서울역 부근은 교통 중심지만이 아니라 새로운 이미지가 부여된다. 관객은 서울로7017 안내소에서 안내를 받은 후, 본인의 휴대전화와 이어폰을 이용해 준비된 사운드를 들으며 국립극단 방향으로 걷는다. 그리고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 도착해 고글을 쓴 뒤 극장 안에서 펼쳐지는 가상 연극을 보게 된다. 안내원 외에 작품 전체가 비대면으로 진행되고, 배우의 등장이나 다른 관객의 동반 없이 혼자 관람한다. 30분 단위로 이뤄지는 체험 및 관람은 평일에는 16명, 주말에는 22명의 관객만 가능하다.

“국립극단의 의뢰를 받은 후 서울로7017을 걸으며 ‘다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이 장소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라는 질문에 이르렀어요. 그러다가 이상의 소설 ‘날개’에서 주인공이 경성역 안 찻집에서 커피를 마시는 게 떠올랐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예상치 못한 감염병으로 답답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일제 식민지 시대에 사는 이상이 통하는 점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서양의 예술과 과학을 받아들이며 사유를 확장했던 이상처럼 관객들이 이번 작품으로 갑갑한 일상의 틀을 뛰어넘었으면 좋겠습니다.”

서울역7017을 걸으며 듣는 오디오에는 서 작가가 직접 쓴 텍스트와 함께 이상의 작품 ‘삼차각설계도’(1931), ‘1933, 6, 1’(1933), ‘오감도’(1934), ‘날개’(1936), ‘권태’(1937)가 일부 인용된다. 이와 함께 1930년대 시대 상황을 느낄 수 있도록 그 당시 세계적으로 발생했던 주요 사건과 소설가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34)에 언급된 음악도 흘러나온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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