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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디지털 냉전에 끼인 한국, 플랫폼 규제 외 큰 그림 있나”

[인터뷰]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이재열 서울대 교수는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토종 기축 플랫폼의 존재는 한국이 플랫폼 경제 시대에 미국과 중국의 길이 아닌 제3의 길을 갈 수 있는 인프라가 있다는 것”이라며 “빅테크를 둘러싼 지금의 논란이 플랫폼 생태계가 정비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권현구 기자

“세계는 플랫폼 사회라는 완전히 새로운 판으로 재편되고 있다. 가보지 않은 자본주의로 들어가는 것이다. 지난 100년간 인류가 경험한 변화는 지난 1만년간 경험했던 변화의 폭을 능가했다. 그것과 비슷한 변화가 이미 시작됐다고 본다. 빅테크(대형 IT기업)를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수준의 정책을 펴기에는 너무 거대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국내 대형 플랫폼 기업들의 골목상권 침해와 문어발식 사업 확장이 정부와 정치권, 시민사회의 집중포화를 맞으면서 빅테크 규제가 논의의 중심이 되고 있다. 규제 논란뿐 아니라 디지털 경제와 플랫폼 사회 전반을 조망하기 위해 서울대 사회학과 이재열 교수를 만났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이 교수는 최근 1년 동안 사회학자, 정치학자 등과 함께 플랫폼 사회를 주제로 공동연구를 진행했다. 그는 “사회조직론과 네트워크분석을 전공한 학자로서 사람 간의 네트워크를 획기적으로 바꾸는 플랫폼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플랫폼 사회로의 전환은 경제뿐만이 아닌 문명사적인 변환의 과정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한국은 인터넷 보급률 96%, 스마트폰 보급률 94%로 세계 1위의 초연결사회다. 플랫폼 사회로의 이행 수준도 이와 비슷한가.

“대부분 혼동해서 쓰는데 플랫폼에는 기축 플랫폼과 부문별 플랫폼 두 종류가 있다. 기축 플랫폼은 ‘GAFA’와 ‘BAT’다. 미국의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 중국의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로 디지털 인프라에 해당한다. 부문별 플랫폼은 기축 플랫폼을 바탕으로 작동하고 지역성을 기반으로 하는 카카오 택시, 쿠팡 같은 것이다. 한국 사정이 나은 건 지금 논란이 되고 있지만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토종 기축 플랫폼이 있다는 점이다.”

-미국과 중국 외에 기축 플랫폼을 가지고 있는 국가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지 않은가.

“디지털 G2인 미‧중 냉전에서 중국이 의도하는 건 미국에 대항해 자국 시장을 완벽하게 보호하고 미국보다 더 많은 디지털 영토를 차지하는 것이다. 중국은 작심하고 미국의 빅테크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놓고 자체 기축 플랫폼을 키웠다. 미국과 중국 외의 국가들은 G2 사이에 끼어 있다. 가장 불안해하는 건 기축 플랫폼이 없는 유럽이다. 플랫폼의 원료이자 자산은 데이터다. 유럽의 데이터는 모두 구글과 아마존에 가 있다. 상업적으로도 안보적으로도 심각한 이슈다. 프랑스와 독일이 뒤늦게 공공 플랫폼을 만들려고 했지만 잘 안 됐다.”

이 교수는 토종 플랫폼의 가치를 설명하면서 쓰고 있는 논문 자료를 펼쳐 보였다.
“국가별로 사용자들이 많이 사용하는 사이트를 20위까지 정리해봤다. 글로벌 톱20을 미국과 중국 플랫폼이 각각 10개씩 정확하게 양분했다. G2가 완전히 장악한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1위부터 20위까지 전부 자국 플랫폼이 휩쓸었다. 일본은 20위 안에 라쿠텐과 재팬포스트, 메루카리 3개가 올라있고, 독일은 자국 사이트가 5개 있지만 기축이 아닌 부문별 플랫폼이었다. 한국은 네이버가 2위, 다음이 4위, 티스토리가 5위, 카카오가 6위, 쿠팡이 8위로 10위 안에 5개의 토종 플랫폼이 들어가 있었다. 글로벌 플랫폼에 안방을 모두 내주지 않은 것이다.”


-한국의 상황이 나쁘지 않다.

“데이터 주권이라는 관점에서 봐도 그렇다. 데이터 주권은 시민의 데이터 주권과 국가의 데이터 주권으로 나뉘는데, 중국은 국가의 데이터 주권이 강하고 시민의 데이터 주권이 제로인 극단적인 형태다. 미국은 국가의 데이터 주권에 걱정이 없다. 중국을 제외한 세계의 데이터가 모두 미국 거니까. 또 시민들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고 자유를 지켜야 한다는 이념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시민의 데이터 주권에도 문제가 없다. 유럽연합은 데이터 주권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미국 플랫폼을 규제하기 위해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 일본과 인도의 사정도 비슷하다.”

-한국의 데이터 주권은 어떤가.

“국가의 데이터 주권에 대한 고민은 어느 정도 덜었다. 다만 지난해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 집단감염 때 통신3사의 기지국 접속자 정보를 활용해 1만명 넘는 명단을 뽑아냈다. 시민들이 양보를 한 경우지만 시민의 데이터 주권이 언제든지 위협받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예다. 한국도 기술적으로 시민들이 프라이버시를 뺏기고 감시당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사회가 됐다.”

-플랫폼 기업에 대한 규제는 어떻게 생각하나.

“카카오가 선을 넘은 부분이 분명히 있다. 골목상권과 충돌하는 것은 심각하다. 플랫폼의 역할은 공급자와 구매자가 한데 모일 수 있는 생태계의 판을 깔아주는 것인데, 카카오는 자기 상품을 만들어 자기 브랜드로 파는 아마존을 따라 하려고 한다. 자꾸 자기 걸 끼워 넣는다. 골목에서 경쟁할 수 있는 사업 모델을 끌어들이는 인수 합병도 재고해야 한다. 하지만 규제에는 현재 못지않게 미래의 관점이 필요하다. 플랫폼 기업이 사회적 약자를 착취하거나 시장 질서를 훼손할 때는 과감하게 개입하고 규제하되 새로운 혁신의 가능성은 열어줘야 한다.”

카카오는 자회사인 카카오모빌리티가 택시호출 앱 시장에서 사실상 독점사업자로 올라선 뒤 택시호출료 인상과 택시기사 대상 유료 멤버십 도입에 나서 갑질 논란이 불거졌다. 사진은 서울에서 운행중인 카카오 택시 모습. 뉴시스

-카카오의 경우 카카오 택시 문제가 시발점이었다. ‘타다금지법’이 지난해 국회를 통과했지만 타다가 문제가 됐을 때 충분히 논의하고 정리했더라면 지금 같은 논란이 생기지 않았으리라는 아쉬움이 있다.

“타다를 금지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면 좋았겠지만 지금 택시 산업이 정말 괜찮은가. 전 세계 대도시 교통은 우버 리프트 고젝 그랩 같은 공유교통서비스가 장악했다. 여러 단계를 거쳐 몇 년 동안 부작용을 줄이면서 택시 종사자들이 미래를 대비할 방안을 토론했어야 하는데 ‘막으면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무조건 안 된다고 하면 새로운 시도 자체가 불가능하다.”

-빅테크 규제는 세계적인 흐름이다. 미국도 자국 플랫폼 기업의 독과점 규제에 나섰는데.

“미국은 시장 경쟁에 장애가 된다고 판단하면 즉시 개입한다. 미국 역사가 그렇다. 20세기 초 반독점법을 통해 완전히 틀을 바꾼 경험이 있다. 당시 독점 자본가들이 내놓은 게 록펠러재단과 카네기재단 같은 비영리 재단들이다. 새로운 자본주의가 시작된 지금이 그때와 같은 상황이고, 빌 게이츠는 일찌감치 재단을 만들어 활동 방향을 바꿨다.”

‘아마존 저격수’로 불리는 리나 칸 미국 컬럼비아대 로스쿨 교수. 지난 6월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와 비슷한 연방거래위원회(FTC) 의장에 임명됐다. 컬럼비아대 홈페이지

-빌 게이츠가 반독점 소송에 휘말려 기업분할 명령을 받았던 게 생각난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그랬고, 페이스북도 인스타그램을 인수 합병할 때 호되게 당했다. 페이스북 데이터가 악용되면 민주주의에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학자들과 데이터를 공유하겠다고 했다. 우리도 그런 단계에 왔다. 플랫폼이 제기하는 새로운 이슈들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데, 문제는 따라갈 모델이 없다는 것이다. 이전 같은 추격성장 모델에선 남들 따라 반도체를 만들고 자동차를 만들어서 성공했지만 플랫폼은 시장 우선주의의 미국도 국가주의의 중국도 모델이 될 수 없다. 공공영역의 중요성을 고려한 우리만의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지난해 한국사회학회 심포지엄에서 ‘(플랫폼) 규제의 공백을 채우고 과잉규제를 줄이라’고 발표하셨는데.

“‘조직화된 무책임성’이라는 개념이 있다. 기술이 발전하고 현실은 바뀌었는데 제도가 따라가지 못해 공백이 생기는 상태를 가리킨다. 플랫폼화의 사각지대 중 눈에 띄는 게 라이더 문제다. 플랫폼 노동은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던 새로운 형태의 노동이다. 하지만 플랫폼 노동을 규정하는 제도 없이 공백 속에 놓여있다.”

-빅데이터와 관련해 중복규제를 지적했다.

“국가별 데이터 규제 수준에 따라 개방형 조건형 통제형 세 가지 모델로 나뉜다. 개방형은 미국처럼 자신감을 기반으로 한 예외적인 경우이거나 아프리카 동유럽 중남미 일부 국가처럼 데이터에 대한 개념이 세워지지 않은 국가들로 양극화돼 있다. 통제형은 중국과 인도네시아, 러시아 같은 권위주의 국가들이다. 나머지 국가들은 조건형에 해당하는데 유럽 일본 인도와 비교했을 때 한국이 조건형 중에 규제 리스트가 가장 긴 나라다.”

-통제형에 가까운 국가라는 뜻인가.

“그렇다. 과거의 일사불란한 발전국가 모델은 사라졌는데 개입과 규제는 그대로 남아있다. 전체적인 조율과 일관성 없이 부처마다 각자의 기준을 가지고 규제하고, 국회의원들은 의원들대로 규제 입법을 하고 있다.”

이재열 서울대 교수는 “과거 지향적인 이해관계에 포획돼 새로운 혁신의 가능성을 가로막는 방식으로 규제를 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플랫폼 사회의 미래가 디스토피아가 아닌 유토피아가 될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게 미래지향적인 관점으로 고민하자”고 제안했다. 권현구 기자

-국회에 이미 8건의 플랫폼 규제 관련 법안이 발의돼 있다.

“골목상권을 침해한 부분과 기축 인프라로서 새로운 산업화의 지형을 열 수 있는 영역을 구분해서 다뤄야 한다. 한국은 그동안 수출을 통해서 꽤 넓은 경제 영토를 차지했다. 이제 디지털 영토 싸움이다. 국내에서 규제로 다듬어진 기업들이 미‧중이 아닌 제3의 지역에 진출해 기축 플랫폼을 운영한 경험을 공유한다면 덜 위협적인 존재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알약에 설탕을 입힌 당의정 같은 비즈니스 모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디지털 G2 사이에서 한국이 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하는데, 그런 가능성은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장기적인 글로벌 전략을 세우고 규제가 불러올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해 깊이 있는 토론을 거쳤으면 한다.”

-규제 외에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은 어떤 것이 있을까.

“20세기 초 마차가 자동차로 대체될 때 마부들은 지금 플랫폼 기업에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들이 느끼는 무력함과 같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자동차 산업을 금지하지 않았다. 쇠퇴하는 산업이 있고 새롭게 등장하는 산업이 있을 때 리스크 관리를 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잠재적인 피해 집단의 위험을 줄여줄 안전장치를 보완해야 한다. 어떤 계층을 대상으로 어떤 리스크를 관리할 것이냐에 대한 정부 차원의 로드맵이 있어야 한다.”

-글로벌 플랫폼에 대한 대응은 어떤가. ‘구글갑질방지법’이 세계 최초로 시행됐고 공정거래위원회는 구글에 과징금 2074억원을 부과했다.

“망 사용료와 데이터 주권 문제가 남아있다. 한국에서 가장 압도적으로 네트워크를 장악한 건 구글이다. 전체 데이터 통신량의 25%를 차지한 게 구글의 자회사인 유튜브다. 그런데 제대로 망 사용료를 내지 않는다. GAFA와 BAT가 모으는 한국인 사용자 데이터에 대한 규제도 없다. 앞서 지적했던 규제 공백의 예다.

글로벌 플랫폼에 대응하려면 비슷한 처지의 나라들과 협력해야 한다. 이 문제를 가장 먼저 심각하게 느낀 게 일본이다. 2019년 G20 정상회의에서 아베 전 총리가 GAFA나 BAT가 개인 데이터를 부당취득하지 못하게 하고, 이들에 과세할 수 있게 하는 ‘오사카 트랙’을 제안해 영국 호주 캐나다 등이 호응했다. 그런데 우리가 일본과 공조를 할 상황이 안 되니….”


-플랫폼 기업을 향한 여론도 악화됐다. 지난주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51%가 규제 강화가 적절하다고 답했다. 과도한 규제라는 응답은 35.5%였다.

“플랫폼 기업들이 생태계의 선기능과 순기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모델에 대한 고민도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지속가능하려면 기업의 정당성을 높여야 한다. 정당성이라는 건 결국 ‘이렇게 하는 게 좋은 거다, 이게 필요한 거다’라고 설명할 수 있는 논리다. 그 부분이 비어있는 것이다.”

-사회적 가치를 채워 넣으면 한때 혁신의 상징으로 지지를 받았던 위상을 회복할 수 있을까.

“아니, 그게 살아남는 방법이다. 그렇지 않으면 투자자들까지 기피하게 된다. 경주 최부자집은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고 남의 불행을 돈을 벌 기회로 삼지 말라고 했다. 요즘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등 사회적‧윤리적 가치를 반영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방식)가 그것과 다르지 않다.”

-소비자들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나.

“경제학자 앨버트 허시먼에 따르면 기업에 문제가 있을 때 소비자들의 선택은 세 가지다. 계속 사용자로 남거나(충성‧loyalty),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거나(항의‧voice), 떠나는 것(이탈‧exit)이다. 그런데 대안이 없어서 떠날 수 없다면 문제 아닌가. 정부는 늘 대안이 있게끔 새로운 진입이 가능하게 하고, 새 진입자들이 기존 사업자들과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규칙을 만들고 관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 경쟁 상황에서 소비자들이 항의나 이탈을 통해 기업을 응징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정부가 나설 필요가 없으니까.”

권혜숙 인터뷰 전문기자 hskw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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