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 이정재 “해고된 중년의 일상과 극한…제겐 새로운 도전” [전문]

“기훈은 스스로 트라우마 가진 사람…약자보면 지나치지 못해”

배우 이정재. 넷플릭스 제공

배우 이정재에게 전 세계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주연 기훈역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평소에 즐겨하던 강한 면모의 캐릭터에서 벗어나 해고된 중년의 일상을 연기하는 게 오히려 어려웠다는 후문이다.

29일 화상으로 만난 이정재는 “기훈을 연기하면서 많은 걸 벗어던졌다는 느낌이 있었다”며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연기와 극한에서 보여줄 수 있는 연기가 섞여서 왔다가 갔다가를 계속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은 감당할 수 없는 빚 때문에 벼랑 끝에 몰린 456명의 참가자가 456억원의 상금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걸고 추억의 게임을 한다는 설정의 9회 분량 드라마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


-'오징어 게임'이 현재 83개국에서 '오늘의 TOP 10' 상위권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SNS를 하는 배우들은 직접 인기를 실감할 것 같은데, SNS를 하지 않아도 인기를 실감하는지.
“축하 연락 정말 많이 주셔서 감사하다. 오징어 게임 보신 시청자분들이 패러디하면서 올려준 영상이 재밌었다. 우리보다 훨씬 아이디어가 넘친다고 생각했다.”

“SNS에 글은 안 올려도 ‘눈팅’은 많이 해서 실감 하고 있다. 사진을 올려준 것도 보고 실제로 출연했던 배우들이 촬영장에서 찍었던 거 올리기도 하고 저에게 같이 찍은 사진 올려도 되느냐고 해서 올리라고 했다.”

-‘오징어 게임’에 전 세계가 열광하는 이유는.
“한국 콘텐츠를 떠나서도 독특한 콘셉트이면서 여러 가지 복합적으로 많이 어우러져 있는 시나리오다. 캐릭터들이 어우러지는 그런 조화가 잘 이뤄진 거 아닌가. 감독이 작품을 오래전부터 준비하셨다고 하시는데 그때보다는 지금이 공감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닌가 싶다.”

-해외에서 ‘성기훈’의 인간적인 면에 많은 감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외국 분들이 보셨을 때 기훈이 남들을 도와주고 싶어하는 모습에 얼마만큼 공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국인의 정서가 많은 것 같아서 저는 시나리오 봤을 때도 이상해 보이지 않았고 기훈이 따뜻한 친구라고 이해됐다.”

-‘오징어 게임’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했나.
“근래 했었던 작품은 긴장감을 크게 불러일으켜야만 하는 캐릭터였다. 내가 뭔가 새로운 걸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하던 때에 감독님이 기훈 캐릭터 제안해주셨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자 역할을 오랜만에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셔서 캐릭터를 보고 반가웠다.”

“기훈을 연기하면서 많은 걸 벗어던졌다는 느낌이 있었다. 평상시 하지 않는 표정과 호흡 동작들이 나왔으니까. 오래전에는 했었지만 근래에는 없는 표현이라서 저도 영상을 보고 좀 웃었다.”

“생활 연기가 가장 힘들었다. 어떤 캐릭터가 강해보이는 모습은 초반에 캐릭터 설정 잡으면 잡혀 있는 캐릭터로 밀고 갈 수 있어서 수월하게 되는 게 있는데 생활연기는 좀 더 신경 많이 써야 한다. 또 좀 더 자연스러워야 한다. 매 게임 다른 캐릭터와 극한 상황 안에서 교감이나 감정 표현해야 하는 게 고민이 많았다. 달고나 게임에서는 달고나를 핥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정도까지 해야 하나 하는 느낌이 들어서 감독과 이야기를 많이 했다. ‘목숨 걸고 하는 거니까 그럴 수 있겠죠’라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했다.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연기와 극한에서 보여줄 수 있는 연기가 섞여서 왔다가 갔다가를 반복했다.”

배우 이정재. 넷플릭스 제공


-처음 대본 받았을 때 어땠는지.
“처음부터 콘셉트가 좋았다. 어른들이 하는 서바이벌 게임인데 어렸을 때 했었던 게임을 한다는 설정이 그로테스크하다고 해야 할까. 공포감이 느껴졌었다. 일반적인 서바이벌 게임 장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게임 안에 들어온 사람들의 애환과 고충이 왜 거기까지 갔는지 꼼꼼하게 구성됐고 과장되지 않게 회차마다 감정을 쌓아오면서 그 캐릭터의 마지막 모습에 감정적으로 폭발하는 게 다른 영화와는 차별성을 느꼈다.”

-극 초반 성기훈이 어머니를 대하는 태도가 워낙 철없고 불효막심한 아들로 비쳐서 오징어게임에 참가하자마자 ‘오일남’을 향한 따뜻한 인간미가 나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도 있었는데.
“자기는 누군가에게 도움 못 받을지언정 기훈은 스스로가 보잘것없는 약자다. 자기 눈으로 더 약자를 봤을 때 자신을 볼 때처럼 측은지심이 발동돼서 지나치지 못하는 심리가 컸던 것 같다. 자기가 회사 다닐 때 죽어가는 자기 친구를 지키지 못했던 트라우마도 있어서 게임장 안에서 가장 약해 보이는 일남이라는 캐릭터가 측은해 보이기도 하고 그래서 일남을 더 챙겨주고 도와준 것 같다.”

-기훈의 설정이 쌍용차 해고자를 참고해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기훈의 밑바탕이 거기서 시작한다고 생각해서 마음이 좀 무겁고 아팠다. 기훈이 아픈 과거가 있는 상태에서 이후 다른 일자리 찾지 못하고 어머니랑 살면서 대리운전을 하는 사람으로 나오는데 그런 현실로 만들어놓은 게 개인적으로 마음이 무겁다. 극 중 게임을 하면서 트라우마가 나오는 장면을 찍을 때 개인적으로도 슬펐다.”

-중년 남성의 고민과 삶에 대한 막막함 등을 표현하기 위해 한 노력이 있다면.
“중년 남성들이 아주 힘들 것 같다. 노후도 준비해야 하고, 세상이 매우 급하게 변화해 나가니까 그 변화에 뭔가를 다시 배우고 습득해서 삶을 살아 나가야 한다. 기훈은 변화하는 속도에 빨리 반응하지 못해서 그렇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기훈이 딸을 만났을 때 아빠로서 충분히 뭔가를 해주고는 싶은데 해주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 때문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떡볶이 먹으면서나 딸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비 맞고 올 때 성공하지 못한 중년 남성의 감정을 느꼈다.”

-기훈이 다시 게임에 참가하는 엔딩은 게임 주최 측 실체를 밝히고 복수를 하러 가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데, 기훈이 그런 캐릭터로 변화하는 것이 공감되는지.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더 펼쳐질 수 있을 것 같다. 힘도 능력도 없는 기훈이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라는 대사와 무시무시한 세계로 뛰어드는 듯한 기훈의 용감함과 정의 그런 것들이 느껴져서 좋았다.”

-현장에서 다른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는지.
“일남역을 맡은 오영수 선배는 연기가 뛰어난 선배다. 나이 차이도 크게 나고 한 번도 뵌 적도 없고 하니까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선생님의 생각이 젊으시더라. 촬영 중간 휴식할 때는 사회 전반 이슈나 그 당시 생기는 뉴스들을 같이 이야기해보면 굉장히 생각이 젊다고 느꼈다. 같이 출연했던 다른 배우분들하고 더 자주 만나서 저녁 식사도 더 자주 했던 기억이 난다. 연기적으로도 저랑 꽤 많은 부분 함께하는 캐릭터다 보니까 호흡이 처음부터 잘 맞았다. 일남을 처음부터 깊이 고민하고 오셔서 나타날 때 일남으로 나타났다.”

“박해수 씨도 연극에서 베이스 탄탄히 잡혀서 그런지 캐릭터 구축해가는 데 있어서 깊게 해석을 해왔더라. 캐릭터의 또 다른 면을 보려고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해수 씨는 덩치와 다르게 귀여운 면이 많다. 현장에서 유머러스하다. 오히려 현장에서 제일 분위기 메이커였다고 해야 할까. 또 맨 마지막까지 함께하는 친구다 보니까 잘 맞았다. 성격이 좋다 보니까 가장 더울 때부터 추울 때까지 촬영하면서 여러 어려운 구간들을 해수 씨의 밝은 성격으로 제작진들과 잘 이겨냈다.”

-가장 무서웠던 게임은.
“징검다리 건너기가 어려웠다. 한 1.5m 되는 공간에 강화유리를 깔아 놨는데 ‘안전하니까 뛰세요’ 하는데 잘 안되더라. 발에 땀이 나서 자꾸 미끄러졌다. 징검다리이다 보니까 유리 사이 간격을 떨어뜨려 놓는데 초반에는 많이 떨어뜨려 놓았다가 나중에는 붙였다가를 반복해서 더 어려웠다.”

배우 이정재. 넷플릭스 제공

-게임이 끝난 후 기훈은 왜 빨간색으로 머리를 염색했는지.
“빨간 머리는 그 나이대의 중년 남성이 절대 하지 않는 건데, 절대 하지 않는 행동을 하는 건 자신을 뛰어넘는 의지 같다.”

-‘이정재가 잘생김을 내려놓았다’는 반응들이 있는데.
“연기자로서는 망가졌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다. 성기훈이라는 캐릭터를 헤어스타일이나 옷 스타일 등 성격을 표현하기 위해서 했기 때문에 망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촬영할 때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생활 연기를 하는 건 망가지는 게 아니다. 기훈 역을 준비하면서 밤에 많이 걸으면서 거리 사람들도 관찰하게 되고 준비했던 기억이 난다.

-온라인에 등장한 ‘오징어 게임’ 옥에 티를 보셨나. 특히 성기훈의 ‘공기 도시락 먹방’이 화제다.
“먹는 장면을 찍게 되면 처음에는 열심히 먹는데 3번째 4번째 넘어가면 배도 부르고 요령을 피우게 된다. 제가 안 나온다고 생각하고 요령 폈던 것 같다. 근데 너무 잘 먹어서 편집하면서도 몰랐던 것 같다.”

-넷플릭스와 작업을 하시면서 기존의 작업환경과 달랐던 점이 있다면.
“촬영할 때는 잘 못 느꼈고 공개될 때 많이 느꼈다. 촬영할 때는 영화 프로덕션에서 영화감독과 제작진분들이 촬영한 거라 영화 찍는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공개되면서 넷플릭스의 힘을 느꼈다. 넷플릭스가 안 들어가 있는 나라가 없을 정도로 아주 많은 나라에서 스트리밍을 하고 있다는 거에 놀랐다. 시시각각 올라오는 반응들 모아서 홍보도 함께 잘해나가는 걸 보면서 ‘매우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즌2에서 배우 이병헌과의 본격적인 만남을 기대하는 팬들이 많은데.
“병헌이 형과는 한번 하자고 계속 말하는데 데뷔할 때부터 친해서 같은 소속사에도 있었기도 하고 친분이 남다르다. 근데 같이할 기회가 없어서 황동혁 감독님과 연 때문인지 특별 출연해주셔서 저하고는 딱 한 신을 만나게 됐다. 오징어 게임 시즌2가 나온다면 병헌이 형과 작업하고 싶고 시즌2에 제가 못 나와도 다른 작품에서라도 꼭 하고 싶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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