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獨)한 것들] 인생의 쓴맛에 대처하는 방법

세상 모든 찬실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세지, 찬실이는 복도 많지

저는 5년차 직장인입니다. 제가 원하는 분야에 취업하기 위해 대학 시절부터 쉼 없이 달려왔어요. 뭐든지 알차게,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바라던 목표를 이뤘지만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더라고요. 좋은 커리어를 쌓아야 하니까 바쁘게 일했어요. 지난 주 출근을 했는데 문득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회사에 가기 싫고 일도 부담스럽게 느껴집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스틸컷

의욕적으로 일하다 어느 순간 무기력함에 휩싸인 경험이 있으신가요?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꿈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달리다 에너지가 모두 소진되어버리는 그런 경험 말이죠. 이런 증상을 ‘번아웃 증후군’이라고 합니다. 취업 정보 사이트 인크루트의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64.1%가 최근 1년 간 번아웃 증후군을 경험했습니다. 계기로는 직무와 진로에 대한 회의감, 일과 삶의 불균형 등이 꼽혔죠. 취업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고도 행복보다 허무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스틸컷

찬실은 영화 프로듀서‘였던’ 사람입니다. ‘집시의 시간’을 보고 영화를 하겠다고 다짐한 이후 영화에 청춘을 바쳤죠. 그만큼 하고 싶었던 일이기에 마흔이 되기까지 ‘이찬실’이 아닌 ‘이 PD’로 살아왔습니다. 감독 한 명과 오랜 시간 작업하며 그의 작품에서 사람을 모으거나 자금을 관리하는 등 다양한 일을 했죠. 그런데 감독이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촬영 예정이던 영화는 그대로 멈췄고, 제작사에서도 해고되고 맙니다. 감독과 달리 프로듀서는 얼마든지 대체 가능하다는 이유에서였죠. 영화만 하느라 집도 없고 남자도 없는데 일까지 끊긴 상황이 된 겁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법. 찬실은 친한 배우 소피의 집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기로 합니다. 가는 길이 조금 험난하긴 하지만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런데도 젊은 시절을 함께했던 영화와의 이별은 도통 익숙해지지 않았습니다. 평생 좋아하는 사람들과 영화만 하고 살 줄 알았던 삶이 한순간에 무너진 것이죠. 영화가 전부였던 인생에서 영화가 빠진 자리에 무엇을 채워 넣을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스틸컷

그런 찬실 앞에 이상한 남자가 등장합니다. 한겨울에 혼자 속옷 차림으로 나타나 자신이 장국영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어린 찬실이 좋아했던, 유명 홍콩 배우 장국영 말이에요. 장국영은 찬실에게 뜻밖의 이야기를 건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라고 말했죠.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스틸컷

찬실은 장국영의 조언대로 진짜 나 자신을 찾아 나서기로 합니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산책도 하고, 방 안의 영화 물품도 모두 정리했습니다. 그러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단편영화감독 김영에게 영화 안 하고도 살 수 있을 것 같냐는 질문을 던집니다. 김영의 대답은 그동안 찬실이 갖고 있던 생각과는 달랐죠.

“영화보다 중요한 게 더 많죠. 사람들하고 함께 있는 거, 우정을 나누는 거, 사랑하고 사랑 받는 거. 그런 것들도 영화만큼 중요하죠. 전 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김초희 감독

김초희 감독이 전한 말도 이와 비슷했습니다. 실제로 김초희 감독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 프로듀서로 일하다 갑자기 일이 끊기고 말았습니다. 찬실과 비슷한 상황이었던 겁니다. 김 감독은 무비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영화도 삶의 일부라는 점을 뒤늦게 알았다고 말했습니다. ‘영화하면 됐다’는 식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만 정했을 뿐 어떻게 살 것인지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은 채 그저 꿈을 향해 내달리는 삶을 살았다고 자신을 평가했습니다. 김초희 감독도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만들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태도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스틸컷

“목이 말라서 꾸는 꿈은 행복이 아니에요. 저요, 사는 게 뭔지 정말 궁금해졌어요.”

찬실은 전부였던 영화를 잃고 난 뒤 앞만 보고 달렸던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제서야 자신에게 찾아온 복이 보였죠. 집주인 할머니와의 만남, 소피와의 우정, 언젠가 함께 영화를 만들자는 옛 동료들까지. 일에만 치여 사느라 잊고 살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찬실은 분명 이전과는 다른 태도로 살아갈 겁니다. 또다른 위기가 찾아와도 좀 더 의연하게 마주할 수 있겠죠.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스틸컷

경쟁 속에서 지쳐버린 우리가 스스로에게 질문할 차례입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지, 꿈을 쫓기 바빠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사는 것은 아닌지 말이에요. 꿈과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와중에도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의 방파제를 쌓아야 한다는 의미죠. 좋아하는 일이 나에게 상처를 줘도 흔들릴지언정 무너지지 않도록 말입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계속 살아가야 하니까요.

우리 마음 속 장국영은 이미 인사할 준비가 됐을 겁니다.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면 어떨까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이런 분들에게 추천해요!

나는...
① 자극적이지 않은 콘텐츠를 보고 싶다
② 유머러스한 대사로 웃음을 주는 영화를 좋아한다
③ 영화 속 숨겨진 오마주 발견을 즐긴다


김수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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