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시간 학교 지키면 4.5시간이 근무고 다 휴식이래”

[‘휴식’이란 이름의 노년 무임노동]① 24시간 일해도 근로시간은 6시간


“학교는 나이 든 사람을 싫어해. 일하다가 쓰러져봐, 교장이 장사 치러줘야 하잖아.”

박동환(가명·80)씨는 서울 한 초등학교 야간당직 노동자다. 동년배 친구 소개로 딱 1년만 일해 보겠다는 게 어느덧 5년째다. 이제 그는 죽을 때까지 일할 생각이다.

박씨는 은퇴 뒤 30년 넘는 공무원 경력을 살려 말단 사무직이라도 해보려 했지만 찾아주는 곳이 없었다. 당장 돈이 궁한 것도 아니어서 그렇게 15년을 쉬었다. 용역회사 소속 파견직 당직노동자가 될 때만 해도 소일거리 정도로 여겼다.

석 달이 지나자 생각이 싹 바뀌었다. 평일 오후 4시30분 출근해 다음 날 오전 8시30분까지 학교를 지켰지만, 4시간 반만 근무로 인정받는 게 도통 이해가 안 됐다. 돌발상황이 생기면 자다가도 일어나 순찰하러 갔고, 매 순간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24시간 학교에 붙어 있는 주말엔 6시간 근무에 해당하는 돈만 받았다. 이렇게 한 달 중 15일을 일한 급여는 90만원 남짓이다.

동료들도 이상한 휴식 제도에 공감했지만 “나이 먹고 그러려니 해요”라며 체념하기 일쑤였다. 결국 그는 짬이 날 때마다 관련 법 조항과 서류를 들춰가며 부당함의 이유를 찾아 나서야 했다. 교장, 서울시교육청, 고용노동부를 찾아가 항의하고 다시 당직 서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5년이 넘었다는 게 박씨의 설명이다. 하지만 심신 피로가 적고, 간헐적으로 일한다는 이유로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상황은 그대로다.

정부 공무직으로 전환이 된 뒤 상황은 더 나빠졌다. 정부는 용역회사 소속 파견직이던 이들을 2018년 9월 공무직으로 전환했지만, 정년을 만 65세로 제한했다. 전환 당시 이미 65세가 넘던 대다수는 1∼5년의 고용 유예기간이 끝나가자 해고되거나 다시 용역회사 간접고용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박씨도 2018년 전환 뒤 1년간 공무직으로 일했다. 하지만 학교의 직접고용을 포기하고 다시 간접고용을 자원해 같은 학교에서 일한다. 공무직 연장을 앞두고 학교에서 온갖 핀잔과 눈치를 받았기 때문이다.

박씨는 가족의 만류에도 죽을 때까지 일하고 싶다. 노년 일자리에 대한 부당 대우가 바뀌는 것도 두 눈으로 보고 싶다. 그는 “자식들은 ‘아버지가 독립투사도 아니고 왜 그러시냐’고 말리지만, 죽을 때까지 재밌게 일하려면 꼭 바꿔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근로계약서에만 있는 휴식시간
지난 9월 30일 오후 4시. 김동규(가명·61)씨가 인천의 한 중학교 교문에 들어섰다. 남들이 퇴근을 준비하는 시간, 김씨의 하루는 시작된다. 그는 2학기 들어 등교가 확대된 학교 구석구석을 지키는 당직노동자다. 학생·교사가 떠난 학교는 고요했지만 김씨의 하루는 갖은 업무와 긴장감으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오후 5시. 김씨의 첫 순찰 시간이다. 4층 본관, 3층 구관 건물부터 운동장까지 학교 곳곳이 순찰 구역이다. 외부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잠그는 게 첫 순찰 임무다. 1시간 남짓 학교 구석 구석을 돌아본 뒤 당직실 전기밥솥에 저녁밥을 안친 김씨는 숨 돌릴 틈 없이 2차 순찰에 나섰다. 이번에는 학교 내 18개 사무실의 전등과 에어컨을 끄고 창문이 잘 닫혔는지, 누수는 없는지 확인해 보안점검표를 작성했다. 단순 업무지만 하루도 빠뜨릴 수 없는 일이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손 가는 일이 더 많아졌다. 학교 입구에 설치된 체온 감지용 열화상 카메라가 잘 작동하는지 살피고 외부인들을 통제하는 역할도 한다. 이렇게 학교를 한 바퀴 더 돌고 나자 어둑한 오후 8시가 됐다. 김씨는 그제야 한숨 돌리며 저녁 식사를 했다. 아내가 싸준 마른 찬에 간단한 국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30일 서울 한 중학교 당직실의 모습. 비좁은 당직실에 취사를 위한 냉장고 등 주방시설 함께 폐쇄회로(CC)TV 같은 보안설비가 들어차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서울지부 제공

식사 뒤 오후 9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김씨에게는 휴식시간이 주어진다. 김씨는 이를 “무늬만 휴식시간”이라고 표현한다. 김씨가 일하고 쉬는 당직실은 5평(16.5㎡) 남짓이다. 당직실에는 접이식 야전침대·냉장고·전자레인지·전기밥솥·TV 등 생활필수품과 함께 CCTV·화재 경보장치·방송 등 보안설비가 있다. 그는 잠들기 전 TV나 책을 보며 시간을 보내지만, 낡은 건물이 신경 쓰여 보안설비 모니터로 계속 눈을 옮길 수밖에 없다.

휴식시간에 잠을 잘 수도 있다. 다만 쪽잠의 연속이다. 김씨는 “긴장 상태에서 대여섯 시간 선잠을 자고 5시에 깬다”며 “도중에 경보가 울리거나 하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게 다반사”라고 했다. 실제 최근 새벽녘 화재경보기가 오작동해 소방관까지 출동하는 일도 있었다. 수리업체 직원이 지하실 시설물을 고친 뒤 물이 찬 지하실에서 감전될까봐 아찔했던 기억도 있다. 김씨의 경우는 평일 학교에 있는 16시간 중 6시간만 근로로 인정되고, 나머지 10시간은 휴식시간으로 처리된다. 휴식시간은 사실상 근로계약서로만 존재하는 시간인 셈이다.

서울 한 중학교 당직 노동자가 30일 좁은 당직실에 앉아 시설물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냉장고, TV 등 생활필수품과 함께 폐쇄회로(CC)TV 같은 보안설비가 들어차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서울지부 제공

24시간 당직을 서는 주말도 근무 양상은 비슷하다. 휴식시간은 15시간이 주어진다. 그는 “분명 쉬는 게 아닌데 휴식 시간이라고 한다”며 “국가가 내 휴식 시간을 빼앗는 기분”이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김씨는 이렇게 한 달 중 15일 근무로 90만원가량 월급을 받는다. 서울, 경기, 인천의 시·도교육청에 따르면 김씨 같은 학교당직노동자는 서울 1300∼1400명, 경기 2000여명, 인천 600여명이다. 학교 규모나 상황에 따라 1∼2시간 차이가 있을 뿐 근무·휴식시간 비율은 판박이다. 수도권뿐 아니라 전국 학교 당직노동자들의 사정은 비슷하다.

개발자 출신으로 지난해 초까지 대기업 간부로 일한 김씨는 이런 임금 제도가 납득되지 않는다. 과거엔 밤낮없이 야근은 많았어도 일한 만큼 버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정반대라는 것이다. 김씨는 “종일 학교에 붙어 있는데 100만원도 안 주길래 깜짝 놀랐죠”라며 “정부 기관도 이런데, 은퇴 후에 다닐 수 있는 용역회사 등 기업들은 더 열악할 것”이라고 씁쓸해했다.

김씨는 운 좋게 재취업에 성공했지만 질 좋은 일자리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희망한다. 정부가 일자리 숫자에 신경 쓰지만 일자리 질에는 신경을 덜 쓴다는 쓴소리도 했다. 김씨는 “주위에선 대기업 퇴직해 ‘그냥 놀지 뭐하러 돈 버냐’고 하는데 그냥 일하는 게 좋다”며 “많은 돈을 바라는 게 아니다. 은퇴해서도 상식선에서 할 만한 일자리가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근로시간 초과 휴게시간 안 된다지만…
고용노동부는 지난 8월 18일 감시·단속적 근로자의 근로조건, 휴게시설 기준을 구체화한 근로감독관 집무규정(고용부 훈령) 개정안을 행정 예고했다. 감시·단속직은 학교당직노동자, 경비원처럼 감시 업무를 주로 해 심신 피로가 적거나 시설 수리 같은 간헐적 업무에 투입돼 대기시간이 많은 노동자를 뜻한다.

감시·단속직 노동자는 월 평균 4회 이상의 휴무일을 보장받는다. 휴게시간이 근로시간을 초과해서도 안 된다. 노동자가 사업장에 머무르는 시간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휴게시간을 고무줄처럼 늘리고, 근로시간은 줄여 임금을 낮추는 꼼수를 막기 위한 장치다.

하지만 현장에서 변화를 체감하기까지는 최소 3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번 개정안은 고용부 훈령이라 법적 구속력이나 처벌 규정이 없다. 개정안이 감시·단속적 근로자 승인의 기준이 되기에 미충족 시 승인을 못 받을 가능성이 크지만, 이마저도 유예기간이 있다. 정부가 감시·단속적 근로자 승인 유효기간을 3년으로 새로 정하고, 이미 승인받아 노동자를 고용 중인 사업주에 대해서도 유예기간 개념의 3년을 인정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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