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 쉬라는데 갈 데가 없어” 서글픈 노년의 돌보미

[‘휴식’이란 이름의 노년 무임노동]④ 의무 휴식에 쉴 공간도 없어

아이 돌봄 노동자 강씨는 법으로 정해진 휴게시간 1시간을 쉬어 본 적이 없다. 강씨는 “아이를 혼자 놔두고 휴식을 취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주변에서 휴게시간에 온전히 쉬는 사람은 한 명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기사와 무관한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강모(60)씨는 20대 중반부터 ‘엄마’의 삶을 살았다. 15년 전쯤 자녀들 모두 성인이 됐지만 그 무렵 남편이 직장에서 은퇴하면서 강씨도 돈을 벌어야 했다. 강씨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엄마 경력’으로 선택한 건 ‘아이 돌봄’ 일이었다.

두 가정의 아이를 돌보는 15년차 강씨의 일과는 오전 7시30분 시작된다. 첫 번째 돌봄 가정 아이 엄마의 출근 시간에 맞춰 아이 집으로 출근한다. 강씨가 돌보는 아이는 이제 막 걷는 것이 익숙한 18개월 남아다. 이 집에서 강씨는 하루 8시간 30분 근무한다. 아이를 씻기고, 재우고, 먹이다 보면 잠시 앉을 새도 없이 정해진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정부는 2018년 7월 개정 근로기준법 시행 이후 아이 돌보미도 4시간 일하면 30분, 8시간 일하면 1시간을 휴게시간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하지만 강씨는 1시간을 온전히 쉬어 본 적이 없다. 그는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소리”라며 “돌보던 아이를 혼자 놔두고 휴식을 취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주변에서 휴게시간에 온전히 쉬는 사람은 한 명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4시간이 지나 30분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규정을 잘 아는 엄마들이 휴식을 권하는 경우도 있다. 강씨가 일하던 곳의 아이 엄마도 “30분 쉬었다 오라”고 말하지만 그때마다 난감했다. 이동하는 시간을 고려하면 30분 동안 근처 카페를 간다거나 휴식을 취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강씨는 “날 배려해서 하는 말인 줄 알면서도 난감했다”며 “낯선 곳에서 나 혼자 밖에 나가 쉴 곳이 어디 있겠나.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 마신다고 해도 돈이 드는 일이고, 그러기에 30분은 너무 짧다”고 했다.

결국 아이의 집에서 ‘무늬만 휴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이가 울면 모른 척하기 어려웠다. 그냥 쉬는 시간에도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게 마음 편했다. 분명 일을 했지만 돈을 받지 못하는 시간이었다. 강씨는 “유명무실한 강제 휴게시간이 아닌 다른 방식의 처우 개선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가정에서 강씨는 휴게시간 1시간을 규정에 없는 ‘요리’를 하는 시간으로 쓴다. 규정상 아이 돌보미는 불을 사용할 수 없다. 육아만 담당해야 하고 요리 등 다른 업무를 해선 안된다는 의미다. 원칙대로라면 부모가 준비해 놓은 음식을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아이에게 먹여야 한다. 하지만 규정대로 육아를 할 수 있는 집은 거의 없다. 강씨는 “15년 넘게 일을 했지만 아이 집 대부분 밥은커녕 간식거리도 없다”며 “돌봄 노동자는 집안일에 능숙한 나이 많은 여성들이기 때문에 요리 정도는 수월하게 해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때문에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로 요리를 만드는 일은 사실상 고정 업무다. 추가 수당은 없다.

쉬는 시간에 아이 조부모 수발까지 해야 할 때도 있다. 아이 육아는 육아대로 하고, 쉬는 시간에 ‘부모님 식사를 차려달라’는 식이다. 이를 거부하면 “예전 선생님은 해주셨는데요?”라고 따지는 경우도 있었다. 강씨는 “부모가 아이 돌봄 센터에 항의를 하면 바로 일을 그만둬야 한다”며 “우리에게는 고용주이니 들어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근무표도 허위로 작성해야 한다. 8시간 넘게 연달아 일했음에도 ‘1시간 쉬었다’고 기록하는 식이다. 또 4시간을 한 곳에서 일했어도 문서에 2시간을 일하고, 또 다른 곳에서 2시간 일한 것으로 쪼개서 기록하기도 한다. 강씨는 다른 돌봄 일자리 상황도 비슷하다고 했다.

서울 25개구 아이 돌보미 3000여명의 평균연령은 만 65세로, 대부분 60~70대다. 대표적인 노인 일자리로 자리 잡았지만 각 가정에서 원하는 조건들이 다르기 때문에 부당한 조건을 요구 받아도 거절하기가 어렵다. 대부분 생계형 근로이기 때문에 다른 일을 찾아 그만두는 것도 쉽지 않다. 강씨는 “나이 든 사람에게 고용 시장은 팍팍하다”며 “모든 엄마들이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일자리이기 때문에 돌봄 노동자 처우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휴식'이란 이름의 노년 무임노동]
▶①“16시간 학교 지키면 4.5시간이 근무고 다 휴식이래”
▶②“난 염전노예 같은 신세, 노인네가 회사를 어떻게 이겨”
▶③“장염 걸렸다고 해고 통보” 아픔 숨기는 노년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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