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무용계 돈키호테’ 48살 김수정의 무대는 여전히 뜨겁다

이스라엘 키부츠 현대무용단 소속… 27일 서울세계무용제서 솔로춤 2편 공연

이스라엘 키부츠 현대무용단에서 무용수 겸 안무가로 활동하는 김수정이 지난 9월 9일 대학로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권현구 기자

키부츠 현대무용단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현대무용 강국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무용단이다. 신체적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춤으로 유명한 키부츠 현대무용단에서 한국인 무용가 김수정이 활약하고 있다. 48세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주역으로 무대를 장악하는 김수정은 최근 안무가로도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다.

그가 직접 안무하고 춤추는 ‘케렌시아’ ‘전염’ 등 솔로춤 2편이 서울세계무용제(10월 16일~11월 14일)에 초청돼 27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다. 여름 휴가로 한국을 찾았던 그를 지난 9월 9일 대학로에서 만나 적지 않은 나이에도 격렬한 춤을 소화할 수 있는 비밀을 들어봤다. 인터뷰 직후 이스라엘에 돌아갔던 그는 공연 직전인 22일 한국에 들어올 예정이다.

여전히 격렬한 춤을 출 수 있는 비결

“저희 무용단의 정원이 남녀 각각 8명씩 16명이에요. 1년마다 재계약이 이뤄지는데, 제가 최연장자 자리를 계속 차지하고 있네요, 하하. 제 골격이 워낙 튼튼한 편이지만 나이를 먹고도 예전처럼 춤을 추기 위해 매일 전체 트레이닝에 앞서 1시간 먼저 워밍업 합니다. 관절이 점점 뻣뻣해지기 때문에 그만큼 훈련해야 부상 당하지 않거든요. 물론 자잘한 부상이야 달고 살지만 조금만 게을러지면 바로 큰 부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트레이닝 역시 신경써서 합니다.”

1970년 창단된 키부츠 현대무용단은 1964년 창단된 바체바 무용단과 함께 이스라엘 현대무용의 중추로 평가받는다. 바체바 무용단이 수도인 텔아비브에 있는 것과 달리 키부츠 현대무용단은 안무가 예후디트 아르논이 이스라엘 북부 갈릴리에 있는 가톤 키부츠(집단농업 형식의 농업공동체)에 설립했다. 키부츠 현대무용단이 운영하는 국제댄스빌리지는 다양한 댄스 프로그램과 워크숍을 듣기 위해 여러 나라의 무용수들이 방문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아르논에게 배운 라미 베에어 예술감독이 1980년 무용수 겸 안무가로 입단해 1996년부터 무용단을 이끌고 있다. 음악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역동적 감성을 담은 베에어 감독의 작품들은 전 세계 공연장과 축제의 단골로 초청받고 있다.

키부츠 현대무용단 라미 베에어 예술감독이 안무한 'Horse in the sky'(위)와 'Asylum'. 두 사진에서 검은 머리의 여성 무용수가 김수정이다. 키부츠 현대무용단

“투어 공연이 없을 때 키부츠 안에 있으면 춤 외엔 할 게 없어요. 아무래도 시골이기 때문에 유흥거리 같은 게 없으니까요. 저희 부모님이 한번 키부츠에 왔다가 그 이후엔 다시 안 오시는 것도 재미가 없어서입니다. 대신 키부츠에선 무용가로서 내 몸과 움직임에 대한 탐구를 지치지 않고 할 수 있습니다.”

김수정은 한국에서 이화여대 무용과 동문들로 구성된 현대무용단 탐 출신으로 국내에서 무용수 겸 안무가로 활동했다. 그런 그가 40살이던 2013년 갑자기 이스라엘로 떠나 키부츠 현대무용단의 댄스 프로그램을 공부하더니 이듬해 정식 단원이 됐다는 소식은 국내 무용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한국인 최초로 키부츠 현대무용단 단원이 됐다는 것 외에 현대무용계에서 40살이 넘어 해외 유명 무용단을 들어간다는 것은 유례가 없기 때문이다.

“제가 대학을 졸업했을 때는 지금처럼 한국 무용수들이 해외 현대무용단에서 활동하는 사례가 거의 없었어요. 저도 해외는 생각도 못하고 주변 선배나 친구처럼 동문무용단을 중심으로 춤도 추고 안무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30대 후반 은퇴를 고민할 때 국립현대무용단에서 여러 안무가와 작업하면서 자극을 받게 됐어요. 2011년 프랑스 안무가 조엘 부비에의 ‘왓 어바웃 러브’와 이듬해 전미숙 안무 ‘토크 투 이고르’에 출연하면서 좀더 춤출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던 것 같아요. 그리고 2012년 이스라엘 키부츠 현대무용단 출신 안무가 우리 이브기와 작업한 것이 해외로 나가는 결정적 계기가 됐죠. 제가 좀 돈키호테 같은 기질이 있어서 이것저것 계산없이 하고 싶은 일에 뛰어드는 편인데, 당시 이스라엘 현대무용에 대해 정말 알고 싶었어요.”

1996년부터 키부츠 현대무용단을 이끌고 있는 라미 베에어 예술감독. 지난 2019년 서울에서 열린 국제현대무용제에 무용단을 이끌고 참석했을 때의 모습이다. 뉴시스

40세에 이스라엘로 떠났다가 붙잡은 기회

2013년 나이 마흔에 김수정은 이스라엘로 떠났다. 키부츠무용단이 운영하는 댄스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키부츠무용단의 메소드와 레퍼토리들을 익히는 댄스 프로그램은 6개월마다 코스가 바뀌는데, 매년 40명을 선발한다. 키부츠 현대무용단에 입단하고 싶은 젊은 무용수들에겐 필수 코스다. 물론 무용단에 정원이 생겨야만 치열한 경쟁률의 오디션을 뚫고 입단할 기회가 주어진다.

“저는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무용단 입단은 생각도 못했어요. 사실 댄스 프로그램조차 30세 미만으로 연령 제한이 있었지만 특별히 허락받은 거였거든요. 당시 남편과 부모님은 제가 1년 정도만 있다가 한국에 돌아올 거로 생각했었죠. 그런데, 3개월이 좀 지났을 때 해외 투어를 앞두고 있던 무용단이 무용수 부상으로 급하게 오디션을 치르면서 제게도 기회를 줬어요. 베에어 감독님이 저를 마음에 들어해 투어에 참여했고, 이듬해 오디션을 거쳐 정식 단원이 됐습니다. 그리고 매년 계약을 연장한 것이 벌써 8년째에요. 너무 놀라운 일이죠. 사실 재작년부터 감독님에게 ‘잘 할 때 그만두고 싶다’고 말씀드리는데, 감독님은 ‘이번 시즌 끝나고 생각해보자’고 하시면서 저를 계속 춤추게 만들어요.”

김수정에 대한 베에어 감독의 중용은 2019년 키부츠 현대무용단 내한 공연 기자간담회에서도 밝혔던 “무용수를 선발할 때 개개인의 예술성과 개성을 중요하게 본다”는 평소 철학에서 비롯됐다. 당시 베에어 감독은 김수정에 대해 춤의 깊이가 남다르다고 평가했다. 최초의 한국인 단원 김수정에 대한 믿음은 이후 한국인 무용수들을 여러 차례 단원으로 뽑는 결과로 이어졌다. 2019년 키부츠 현대무용단 내한 공연에는 김수정을 포함해 한국인 단원 3명이 무대에 섰었다.

“감독님은 늘 제게 용기를 주세요. 제가 나이 때문에 그만두려고 하니까 ‘사람들이 나이 들어서 안되는게 아니라 나이 들었다고 생각해서 안하니까 안되는 거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는 제가 게을러질까봐 안무하라고 독려하는 한편 작년부터 무용단 내 세컨드컴퍼니(대형 무용단이 운영하는 2군 개념의 단체)에서 티칭을 시키셨어요.”

김수정이 27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선보일 예정인 ‘케렌시아’의 한 장면. (c)Lior Horesh

김수정은 이스라엘에 가기 전 한국에서 2007년 서울댄스콜렉션 우수상, 2009년 서울국제안무경연대회 대상, 2010년 공연예술축제(PAF) 주최 ‘최우수 레퍼토리상’을 받는 등 안무가로서 재능을 인정받았었다. 키부츠 현대무용단에서 다시 안무를 시작한 그가 만든 작품들 가운데 ‘만화경(Kaleidoscope)’은 세컨드컴퍼니의 레퍼토리가 되기도 했다. 이스라엘에서 그의 활발한 활동은 2019년 야이르 샤피라 어워드 무용 부문 수상으로 이어졌다. 이스라엘의 유명 기업가 야이르 샤피라가 만든 이 상은 주로 혁신적이고 모험적인 인물과 프로젝트를 지원한다.

안무가로도 다시 활동하며 활발하게 작업

현재 한국과 이스라엘을 오가며 안무 작업에 적극 나선 그는 2018년 대구시립무용단에서 ‘Vedi, Amavi(We came, we loved)’를 만들어 호평받았다. 그리고 2019년 제1회 모노탄츠 서울 페스티벌에서 선보인 솔로춤 ‘케렌시아(Qurencia)’로 당시 최우수 예술가상 및 한국춤비평가협회 춤연기상을 받았다. ‘케렌시아’는 지난해 헝가리에서 코로나19 탓에 영상으로 열린 제9회 모노탄츠 페스티벌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올해 서울세계무용제(SIDance)에서 김수정은 ‘케렌시아’와 함께 또다른 솔로춤 ‘전염(Infection)’을 선보일 계획이다.

“어릴 때는 안무의 소재를 사회적 이슈에서 주로 찾았어요. 그런 이슈와 우리 삶을 연결해 안무를 생각했다면 요즘엔 제 주변에서 이야기를 찾게 됐어요. ‘케렌시아’의 경우 스페인어로 피난처 또는 안식처를 의미하는데요. 투우 경기장에서 투우사와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소가 잠시 쉬는 곳을 뜻하는데, 최근에는 바쁜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이 자신만의 휴식처를 찾는 현상을 지칭합니다. 그런 현대인의 모습을 소에 빗대 만든 작품입니다. 그리고 ‘전염’은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비대면과 거리두기가 일상이 된 우리 삶을 소재로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경우 백신 접종이 빠르게 이뤄지면서 다른 나라마다 상황이 좋았다곤 하지만 지난해 요새같은 키부츠에서만 머물며 느꼈던 고립감은 컸습니다. 지난해엔 가족을 만나러 한국에 올 수도 없었죠.”

영국 홀리 아트(the Holy Art) 갤러리가 전 세계 예술가를 상대로 한 공모에서 뽑힌 김수정의 펜화(왼쪽). 지난 9월 그리스 아테네에서 김수정의 펜화를 비롯해 공모에서 뽑힌 작품들이 전시된다는 내용을 담은 포스터. 김수정

코로나 팬데믹 기간 김수정이 몰두한 것은 춤 연습 외에 그림이었다. 이스라엘에 와서 시간이 남을 때마다 그림을 그린 그는 좀더 집중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덕분에 올해 영국 홀리 아트(the Holy Art) 갤러리가 전 세계 예술가를 상대로 한 공모에서 그의 펜화가 뽑히는 기쁨을 안았다. 김수정의 작품을 비롯해 당시 뽑힌 그림들은 지난 9월 그리스 아테네에서 ‘Humanism’이란 타이틀 아래 전시됐다.

“예전부터 무용 외에 이것저것 배우는 것을 좋아했어요. 호기심이 생기면 바로 도전하는 성격이라서요. 퀼트, 택견, 특공무술, 그림, 드럼 등등요. 특공무술은 1단까지 땄죠. 좀더 나이가 들어서 춤을 안하게 되면 미술은 좀더 본격적으로 배우고 싶어요.”

돈키호테를 가리켜 무모하다고 하지만 그렇게 도전하는 사람이야말로 꿈을 이룰 수 있는 법이다. 김수정 역시 그런 도전을 통해 현대무용계에서 자신의 이름을 깊이 각인시키고 있다.
김수정은 41살에 이스라엘 키부츠 현대무용단에 입단해 8년째 활동하고 있다. 48세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주역으로 무대를 장악하는 김수정은 최근 안무가로도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다. 권현구 기자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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