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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부장 매제의 누나, 처제의 시누이까지 땅 샀다 [이슈&탐사]

[LH 투기 사태 그 후] ② 혈연 지연으로 얽힌 땅 투기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 부장대우 정모(58)씨가 지난 4월 21일 경기도 수원남부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정씨는 3기 신도시 개발부서에서 근무하며 얻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토지를 매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뉴시스

“장기 투자하려고 산 땅입니다. 내부 정보 같은 건 몰랐습니다.”

지난 9월 28일 수원지법 안산지원 401호 법정. 황갈색 수의를 입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 부장대우 정모(58)씨 곁에서 변호인단이 목소리를 높였다. 정씨와 함께 기소된 매제 이모(54)씨와 그의 지인인 법무사 이모(57)씨도 굳은 표정으로 피고인석에 앉아 있었다.

정씨는 LH 재직 중 알게 된 업무상 비밀을 이용해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 일대 땅을 사들인 집단투기 혐의(부패방지법 위반)로 지난 5월부터 재판을 받고 있다. 이날이 네 번째 공판이었다.

검찰은 정씨와 두 이씨를 광명 노온사동 투기의 공범 관계로 지목했다. 검찰은 “정씨가 광명 근무 당시 ‘LH 주도로 광명이 개발된다’는 내부 정보를 매제와 법무사 이씨에게 전달하고, 가족과 친인척 명의로 땅 투기를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씨 측은 “광명 땅이 언젠가 개발된다는 것은 누구다 다 아는 얘기였다. 미래를 보고 사놓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투기가 아닌 투자라는 주장이다.

정씨 변호인은 “경기 광명, 시흥 일대는 그린벨트로 지정됐다가 해제된 지역”이라며 “향후 개발 가능성이 높아 미리 매수한 것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사실은 제 지인 중에도 광명 땅을 산 사람이 있습니다. (광명) 개발은 시간문제라는 정서가 이미 지역에 파다했다는 겁니다.”

LH 직원인 정씨와 가족, 친‧인척 및 지인들이 땅을 사들인 경기도 광명 노온사동 일대. 광명=권현구 기자

이들의 광명 토지 매수는 공공기관의 정보를 이용한 범죄일까, 순수한 투자일까. 국민일보 취재팀은 지난달 14일부터 네 차례 공판에 참석해 새롭게 밝혀진 사실과 법정 다툼을 취재했다.

LH 직원 친인척 대거 토지 매입

정씨는 ‘전주발 집단투기’ 사태의 핵심으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1990년 LH에 입사해 LH전북지역본부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했다. 2017년 1월 31일 LH광명시흥사업본부로 발령이 났다. 두 달 뒤인 3월 7일, 정씨의 매제 이씨와 법무사 이씨의 가족들이 광명 노온사동 필지 4곳과 건물 1채를 25억원에 사들였다.

정씨를 둘러싼 광명 노온사동 투기 의혹은 크게 네 그룹으로 나뉜다. 먼저 정씨 가족과 친인척이 땅을 대규모로 사들였다. 그의 매제 이씨는 2017년 3월 노온사동에서 땅 4필지를 법무사 이씨의 가족과 공동명의로 샀다. 또 별도 1필지를 자신의 형제 2명(누나와 남동생)과 함께 구입했다. LH 직원 매제의 형제들까지 땅을 산 셈이다. 정씨의 처제 신모(48)씨도 2018년 12월 노온사동의 농지 1필지를 매수했다. 함께 땅을 산 사람은 남편의 누나(59)였다. LH 직원 처제의 시누이까지 땅을 산 것이다.

정씨는 2018년 1월 동서 김모(54)씨에게 노온사동 토지를 매수할 것을 권유하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해당 토지를 실제로 매수한 건 정씨 등 LH 전현직 직원 18명이 돈을 출자해 설립한 ‘유한회사 파인애플’(국민일보 10월 15일자 1·5면 참조) 회원들이었다. 검찰은 “정씨가 동서에게 토지 매수를 권유했다가 파인애플 쪽으로 돌린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두 번째 그룹은 전북 지역 의사들(국민일보 3월 22일자 1·2면 참조)인데 정씨 아내 S씨가 연결고리인 것으로 드러났다. S씨의 대학 동창인 K씨의 남편이자 의사인 다른 S씨(57)는 2017년 4월 28일 노온사동 농지 1필지를 아내와 함께 3억8100만원에 매수했다. 함께 땅을 산 사람은 그의 후배 의사 부부였다. 의사 S씨는 경찰 조사에서 “정씨를 전혀 모른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LH 직원 중에 아는 사람이 없다는 말은 허위 진술이었다”며 “S씨도 정씨를 알고 함께 골프도 쳤다”고 다른 증언을 했다.

정씨의 초등학교 동창이자 공인중개사인 K씨(59)도 2017년 4월과 8월 광명 노온사동 토지 2필지를 매수했다. 당시 K씨와 거래한 광명 지역 공인중개사는 경찰 조사에서 “K씨는 노온사동에서 가장 싼 땅, 맹지를 물색했다. 계약자는 못 봤고 K씨가 전화하면 금세 계약금이 입금됐다”고 말했다.

정씨의 지인이자 법무사인 이씨도 이번 사태의 한 축을 구성한다. 그가 2017년 3월 7일 정씨 매제와 공동 매수한 노온사동 토지 4필지에는 그의 아내와 딸·아들·조카 이름이 모두 올라 있다. 이씨는 약 20일 뒤 아내와 노온사동 농지 1필지를 추가로 샀다. 이씨는 땅을 산 의사 S씨와 고교 동창 사이다.

‘장기 투자였다’면서 휴대폰은 폐기·교체

정씨와 법무사 이씨의 가족·지인은 대부분 전주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정씨가 광명 지역으로 이동한 뒤 두 달도 안 된 시기에 이들이 광명 땅을 대거 산 것은 정씨가 LH 내부 정보를 전달했기 때문이라는 게 검찰 주장이다. 근거로 법무사 이씨 등이 은행 적금을 해지하고 대출까지 받아 거액의 매수 자금을 동원한 점, 공동 매수인으로 이름을 올린 가족·지인들이 “땅을 직접 본 적은 없다”고 진술한 점 등을 들고 있다.

반면 정씨 등은 모두 “순수한 장기 투자”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는다. 법무사 이씨의 아내는 지난 5일 법정에서 “LH 직원(정씨)은 몰랐다”며 “(광명 땅은) 전적으로 남편을 신뢰해서 산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의 동서도 “평소 이씨가 땅에 관심이 많았고, 법무사니까 믿고 투자했다”고 했다. 이씨의 지인이자 광명 땅을 산 의사 P씨는 “광명이 7~8년 뒤 개발될 수 있다는 내용을 인터넷에서 보고 샀다”며 “장기 투자처로 괜찮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하지만 일부 지인의 증언은 엇갈렸다. 공인중개사 K씨와 함께 광명 노온사동 땅을 산 L씨는 법정에서 “K씨에게서 LH라는 단어를 들었다”며 “LH 다니는 W(정씨 이름의 이니셜을 의미)가 환지로 개발할 것이라고 했고 최소 3배 오를 것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환지는 공공이 토지를 개발할 때 원소유주에게 현금 보상 대신 토지 소유권을 그대로 돌려주는 개발 방식이다. 땅을 정비해 돌려주기 때문에 토지 가치가 더 높아진다. L씨는 “경찰 조사를 받기 전 K씨에게 ‘W라는 친구를 모르는 것으로 해 달라’는 말도 들었다”고 했다.

피고인들의 가족·지인이 휴대전화를 폐기하거나 기계를 교체한 사실도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 올 3월 LH 투기 사태가 언론에 보도되자 정씨 아내는 스마트폰을 물에 넣은 뒤 쓰레기통에 버린 것으로 조사됐다. 공인중개사 K씨는 스마트폰을 폐기했고, LH 직원 최모씨는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다”고 했다. 법무사 이씨도 스마트폰 사용 내역을 삭제했다. 경찰 조사에선 “엉겁결에 그랬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이슈&탐사2팀 권기석 양민철 방극렬 권민지 기자 listen@kmib.co.kr

[LH 투기 사태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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