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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임극 ‘돛닻’… 무대에 펼친 춤꾼 이선태의 자전 에세이

29~31일 고양아람누리, 민준호·김설진과 함께 만든 모노드라마

지난 15일 고양아람누리에서 연습이 한창인 민준호(왼쪽)와 이선태를 만나 '돛닻'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강현구 기자

공연배달서비스 간다는 국내 공연계에서 예술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작품으로 두꺼운 팬층을 거느린 드문 단체다. 극단을 이끄는 극작가 겸 연출가 민준호는 그동안 대사 중심의 연극을 많이 선보였지만 최근 대사를 최소화하고 몸짓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움직임극(신체극)을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2019년 안무가 심새인과 함께 만든 ‘템플’에 이어 지난해 안무가 김설진과 함께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다니’ ‘자파리’가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코로나19 탓에 개막 직전 취소됐지만, 김설진 및 이선태와 함께한 ‘돛닻’도 만들어졌다. ‘돛닻’이 해를 넘겨 29~31일 간다가 상주단체로 있는 고양아람누리 새라새 극장에서 드디어 관객과 만난다.

‘돛닻’은 김설진도 출연하지만 사실상 이선태의 1인극에 가깝다. 내용 또한 이선태가 무용수 겸 안무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제목은 예술가의 인생을 항해에 비유한 것으로 배가 나아가기 위해 돛을 올리고 정박하기 위해 닻을 내리는 데서 가져왔다. ‘돛닻’의 주인공 이선태는 국내 첫 댄스 서바이벌 예능 Mnet ‘댄싱9’ 시즌1(2013년)에 출연하며 실력파 꽃미남 무용수로 이름을 알렸었다. 그리고 이선태와 공동안무를 맡았으며 잠깐 출연하는 김설진은 벨기에 피핑톰 무용단 주역 출신으로 대중에게는 댄싱9 시즌2(2014년) 우승자로 유명하다.

사실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하고 한예종 졸업생 중심의 LDP 무용단에서 활동하던 이선태는 무용계에선 댄싱9 이전부터 재능있는 춤꾼으로 평가받았다. 댄싱9 이후 그는 2014년 자신의 영문 이름을 딴 1인 무용단 STL아트프로젝트(STL)를 만든 뒤 지금까지 현대무용의 대중화에 노력하고 있다. 지난 15일 고양아람누리에서 연습이 한창인 민준호와 이선태를 만나 이번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움직임극으로 돌아온 민준호와 김설진, 이선태의 만남

이선태의 삶의 여정을 그린 '돛닻'은 지난해 코로나19 탓에 개막 직전 관객을 대상으로 한 공연이 취소되고 관계자에게만 선보였다. 고양문화재단

“제가 한예종 연극원 졸업 후 무용원 전문사(석사)에 들어갔어요. 결국, 졸업은 못 했지만 무용원에서 설진이를 만나 친해졌어요. 같이 작업하고 싶었지만, 설진이가 피핑톰 무용단에 가면서 미뤄졌죠. 그러다가 한국에 돌아온 설진이랑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가 생각하는 움직임극과 설진이가 생각하는 무용의 개념이 똑같다는 것에 놀랐어요. 2019년 제 연극 ‘뜨거운 여름’에 설진이가 배우로 출연하면서부터 꾸준히 함께 작업하고 있는데요. 지난해 움직임극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다니’를 준비할 때 설진이가 선태를 소개해 줬어요. 아름다운 무용수가 있다면서요. 작품 연습을 하며 서로 얘기를 많이 나누게 된 것이 ‘돛닻’으로 이어지게 됐습니다. ‘돛닻’은 무대 위에 풀어낸 선태의 자전 에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민준호)

한예종에서 연기를 전공한 민준호는 학부 시절 움직임에 대한 관심이 커서 무용 수업을 자주 들었다. 그리고 졸업 후 뉴욕 브로드웨이의 댄스센터에서 1년간 춤을 배우기도 했다. 2004년 한예종 졸업 작품이자 프로 무대 데뷔작이 된 ‘거울공주 평강이야기’는 움직임에 대한 그의 관심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거울공주 평강이야기’ 이후 간다에서 그가 선보인 작품들은 대체로 대사극이었다. 지난 2017년 초연된 ‘신인류의 백분토론’의 경우 쉴 틈 없는 대사의 향연이 펼쳐지기도 했다. 그런 그가 다시 비언어적 요소를 통해 이야기를 전하는 작품을 만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간다를 창단할 때부터 움직임이나 춤으로 된 작품을 하고 싶었습니다. 남들과 다른 공연을 만들고 싶었어요. 하지만 배우들의 생계 등 극단을 유지하기 위해 그렇게 할 수 없었죠. 그런데, 레퍼토리가 축적되고 극단의 늙은(?) 배우들이 방송이나 영화로 많이 가면서 (생계 문제에서 자유로워지자) 움직임극을 다시 만들 여유가 생겼습니다.”(민준호)

지난해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된 민준호 연출, 김설진 안무 및 출연 '자파리'의 한 장면. 세종문화회관

민준호와 함께 극단을 만든 진선규를 비롯해 이희준 김민재 등 최근 영화와 드라마로 주가를 올리는 배우들이 바로 간다의 초기 단원들이다. 극단에 여유가 생기며 움직임극으로 돌아온 민준호에게 춤꾼들은 작품 아이디어를 샘솟게 만들었다. 이번 ‘돛닻’도 민준호가 이선태에게 “형이랑 1인극 하자”고 제안한 뒤 빠르게 진행됐다. 민준호를 매료시킨 이선태의 춤 인생엔 무엇이 있었을까.

비보이·한예종·댄싱9을 거쳐 STL아트프로젝트로

“제가 춤을 좋아해서 시작한 게 아니라는 걸 4~5년 전 제 과거를 되돌아보다가 깨달았어요. 제가 시골(부여) 출신이라 어릴 때는 춤 같은 거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4학년 때 3살 위 형이 중학교에서 힙합에 빠진 뒤 제게도 춤을 가르쳤습니다. 당시 형한테 혼나지 않으려고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덕분에 부여에서 가장 잘 춘다는 얘기를 듣게 됐고, 거리 공연도 했습니다. 그리고 중학교 때 제 춤을 보신 충남예고 선생님의 권유로 예고를 거쳐 한예종에 입학했습니다. 형과 선생님의 영향이 있었지만 제 자신이 점점 춤을 즐기게 된 거 같아요. 그리고 주변에서 칭찬을 해 준 게 춤을 계속한 동력이 됐죠.”(이선태)

대학 입학 후 자신의 춤에 대해 본질적 고민에 빠진 그는 한때 유학을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한국에 남아 LDP 무용단 입단 및 한예종 전문사 입학으로 방향을 튼 것은 댄싱9이라는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줬다. 댄싱9에 출연하며 “대중이 무용을 외면한 것이 아니라 무용이 대중을 고려하는 데 소홀했다”는 생각이 든 그는 STL을 만들었다.

이선태가 지난 2013년 Mnet ‘댄싱9’ 시즌1에 출여했을 때의 모습. Mnet

“흔히 ‘예술의 대중화’라고 하는데, 저는 ‘대중의 예술화’가 필요하다고 봐요. 현대무용이 발전하려면 대중이 현대무용의 가치를 알고 좋아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현대무용이 다양한 장르와 연계하고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작업을 보여줘야 합니다. 바로 STL을 만든 이유에요. 다양한 예술가와 만나 경계를 허무는 창작 작업을 하고 싶었습니다.”(이선태)

큰 포부와 함께 STL을 만들었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댄싱9 당시의 열광이 오래 이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선태는 “창단 공연을 2주 가까이 했다. (많은 관객을 기대하고) 한 달간 하려다가 주변에서 극구 말려 줄인 거였는데, 소극장이지만 어떤 날엔 29명밖에 안 왔다”면서 “그때 미디어가 만든 거품인기를 확실히 깨달았다. 동시에 미디어의 위력을 실감하면서 영상에 대한 관심도 더 커졌다”고 말했다.

장르 경계 없는 도전으로 ‘대중의 예술화’ 추구

창단 공연 이후 지금까지 그는 창작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선배 안무가들이 이끄는 현대무용단들과 함께 현대무용협동조합에 참여한 것도 대중과 현대무용의 접점을 찾기 위해서다. 현대무용 작업 외에도 그는 연기를 배우고 연극과 영화 등에도 꾸준히 출연하고 있다. 2016년 영화 ‘허수아비의 반격’, 2017년 웹드라마 ‘사사롭지만 좋은 날’, 2018년 드라마 ‘열두 밤’와 댄스필름 ‘봄날’, 2020년 넷플릭스 드라마 ‘스위트홈’ 등 그의 필모그래피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올해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내년 2월 2일까지 디큐브아트센터)에도 어른 빌리 역으로 출연 중이다. 배역은 크지 않지만 어린 빌리와 꿈속에서 춤추는 임팩트 있는 이인무를 춘다.

이선태(오른쪽))가 지난 15일 고양아람누리에서 민준호 연출가와 함께 '돛닻' 리허설을 하고 있다. 강현구 기자

“다양한 장르를 경험하며 배우는 게 많아요. 연기와 춤이 통하는 걸 느끼기도 했고요. 요즘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댄스필름 등 무용 영상작업이에요. OTT 등 여러 플랫폼에서 댄스필름을 볼 수 있게 되는 등 재밌는 시도를 할 기회가 많아진 것 같습니다.”(이선태)

‘돛닻’은 바로 예술의 바다 위를 배처럼 항해해온 이선태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무대는 미니멀하지만 이선태의 말과 몸짓으로 가득 찬다. 돛(항해)과 닻(정박)이 맞물려 돌아가는 삶은 비단 이선태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관객의 공감을 얻기에 충분하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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