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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 증거 대라” 당당한 LH 직원… 말로만 패가망신? [이슈&탐사]

[LH 투기 사태 그 후] ③ ‘업무상 비밀’에 달린 처벌


“사생결단의 각오로 파헤쳐 비리 행위자를 패가망신시켜야 합니다.”

지난 3월 8일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남구준 국가수사본부장에게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의 광명·시흥 땅 투기 의혹 수사 보고를 받으며 한 말이다.

7개월여가 지난 지금 투기 의혹 당사자들은 ‘패가망신’ 수순을 밟고 있을까. LH 투기 사태 직후 법조계에선 “(혐의 입증) 난도가 굉장히 높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투기 의혹 당사자가 “인터넷을 보고 샀다. 소문으로 들었다”고 한다면 이를 반박할 증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업무 과정에서 어떤 미공개 정보(업무상 비밀)를 취득했는지, 제3자에게 어떻게 전달했는지 등이 ‘물증’으로 입증돼야 한다.

국민일보 취재팀이 전주발 집단투기 혐의(부패방지법 위반)로 재판에 넘겨진 LH 전 부장대우 정모(58)씨 공판을 취재해보니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었다. 취재팀이 지난달 14일부터 참석한 4차례 공판에선 정씨가 LH에서 취득한 ‘업무상 비밀’이 무엇인지를 놓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미공개 정보’ 입증이 관건

국민의힘 유상범 의원실이 확보한 공소장 등에 따르면 정씨는 2017년 1월 31일부터 LH광명시흥사업본부에서 근무했다. 한 달여 뒤인 3월 7일 전북 전주의 지인인 법무사 이모(57)씨, 매제 이모(54)씨 등이 광명 노온사동 토지 4필지와 건물 1채를 25억원에 샀다. 매수 자금과 지분 비율은 정씨 15%, 매제 25%, 법무사 이씨 60%로 설정했다. 정씨는 신분 노출을 피하기 위해 매제의 이름을 빌렸다.

검찰은 땅 매입에 LH 내부 정보가 이용됐다고 보고 그 출처로 땅 구매 일주일 전인 2월 28일 열린 ‘광명시흥 해제지역 계획적 관리를 위한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지목한다. 당시 LH 본사에서 열렸던 회의에 정씨도 참석했는데, 이 자리에서 ‘LH 주도로 광명을 개발한다’는 업무상 비밀 정보가 거론됐다는 것이다.

경기남부경찰청 특별수사대가 지난 3월 17일 경기도 북시흥농협 본점에서 땅 투기 의혹을 받는 LH 직원들의 대출 관련 서류를 압수하고 있다. 뉴시스

검찰은 당시 TF 회의 결과 보고서와 2017년 1월 광명시흥사업본부에서 작성된 내부 자료 등을 증거 자료로 제출했다. TF 회의 결과 보고서에는 ‘(광명) 취락정비사업은 환지 방식을 우선으로 하며’ ‘광명시에선 LH 통합 개발을 원하고 있음’ 등 문구가 적혀 있다. 광명시흥사업본부 직원이 2017년 1월 14일 작성한 ‘광명시흥 취락정비 (환지 방식) 사업 타당성 조사 용역’ 결과 보고서에는 ‘주민들이 LH 사업 참여를 적극 요구’ 문구가 있다.

하지만 정씨 측은 “TF 회의에 기밀 내용은 없었다”고 반박한다. 정씨 변호인은 “회의 내용은 LH가 그간 공개했던 수준을 크게 넘지 않았다. 회의에서 확정된 내용도 없었다”며 “검찰은 업무상 비밀이 무엇인지 특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LH 직원들이 증인으로 소환됐지만 이들의 답변은 “오래전 일이라 세부적인 회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는 수준이었다.

결국 정씨의 투기 혐의는 TF 결과 보고서 등에 기재된 서류상의 문구와 관련자 진술을 재판부가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달린 상황이다. 사건을 심리 중인 수원지법 안산지원 형사합의2부(부장판사 남천규)는 공판에서 “TF 결과 보고서 등 업무상 비밀 여부를 판단할 직접 증거에 대해 심리를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업무상 비밀 이용 사실이 인정돼 유죄 판정이 내려진다고 해도 ‘패가망신’ 수준의 형량이 나올지는 미지수다. 지난 18일 LH 내부 정보를 이용해 투기한 혐의(부패방지법 위반)로 LH 전북지역본부의 다른 직원 A씨(49)가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형량은 징역 1년6개월이었다. A씨는 자신이 지구계획안을 기안한 전북 완주 삼봉 공공주택지구에서 2015년 3월 아내 명의로 토지 1322㎡(약 400평)를 구매했다.

투기 이익 환수, 가능할까

투기한 LH 직원을 패가망신시키려면 재산상 이익도 환수해야 한다. 기소된 LH 직원 등의 재산은 유죄가 확정될 경우 국가가 몰수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LH 직원 지인이나 친인척이 산 땅은 현재로서는 몰수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직 직원 정모(58)씨와 가족, 친인척 및 지인들이 땅을 사들인 경기도 광명 노온사동 일대. 광명=권현구 기자

검찰이 정씨 등의 사건에서 투기로 지목해 기소 전 몰수보전을 신청한 토지는 5필지에 불과하다. 2017년 3월 7일 법무사 이씨와 그의 가족, 정씨 매제가 구입한 광명 노온사동 땅이다. 취재팀이 등기부등본 분석을 통해 파악한 정씨 관련 노온사동 토지는 24필지가 넘는다. 기소 전 몰수보전은 법원 확정판결 전까지 부동산 처분을 막는 조치다.

정씨 아내와 연결된 전북 지역 의사들의 노온사동 토지(국민일보 3월 22일 1·2면 참조)도 몰수보전 대상에서 제외된 상태다. 의사 S씨 부부와 P씨 부부가 2017년 4월에 매수한 노온사동 농지 1필지는 현재도 처분할 수 있다. 의사 L씨와 Y씨가 2018년 10월과 2019년 4월 각각 사들인 토지도 마찬가지다. L씨는 수사기관에서 “S씨 아내가 ‘친한 친구의 남편(정씨)에게 들었다는 정보’라며 말해줬다”고 진술했지만 해당 토지는 몰수보전 대상에선 제외됐다.

올해 3월 LH 직원 투기 의혹을 최초로 제기한 서성민 변호사(민변 민생경제위원회)는 “친인척·지인 간의 거리가 멀면 멀수록 미공개정보가 어떤 방식으로 흘러 들어갔는지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정씨가 LH 전현직 직원 17명과 함께 설립한 부동산개발회사 ‘파인애플’(국민일보 10월 15일 1·5면 참조) 회원들의 토지 구매 행위도 처벌 가능성이 작아 보인다. 파인애플 회원들이 구매한 광명 노온사동 땅 가운데 몰수보전된 것은 LH 직원 최모(60)씨 아내가 2019년 2월 취득한 농지 1필지뿐이다. LH 현직 직원이자 파인애플 회원인 한모(59)씨의 친인척이 2017년 4월 13일 노온사동 논 2필지를 사들였지만 현재로선 몰수보전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또 다른 파인애플 회원인 LH 직원 오모(54)씨 가족(전 대통령경호처 과장 포함)이 같은 해 9월 매입한 노온사동 임야 1필지도 몰수보전되지 않았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위치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 경기지역본부 모습. 뉴시스

LH 투기 의혹이 여론의 관심에서 멀어지면서 수사 진행도 난항을 겪는 모습이다. 경기남부경찰청은 LH 전현직 직원의 투기 의혹을 수사한 인력 가운데 상당수를 최근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의혹’ 사건에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참여연대 상임집행위원 이강훈 변호사는 “대선 국면이 다가오면서 LH 사태 해결이 중간 지점에서 멈춰 있는 형국”이라며 “부동산 투기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 개혁과 더불어 수사 인력도 충분히 배치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슈&탐사팀 권기석 권민지 기자, 양민철 방극렬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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