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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윤상의 세상만사] 기득권 타파 ‘이건 아니다’부터 외쳐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마태복음 13장 12절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처럼 성경 구절에까지 등장하는 걸 보면 기득권자의 착취 구조는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세계 불평등 보고서 2018’에 따르면 지난 37년간 세계 상위 0.1%인 760만명이 얻은 부가 하위 50%인 38억명에게 돌아간 몫과 같은 수치를 나타냈다.

또 세계 상위 1%의 부유층이 1980년부터 2016년 사이에 늘어난 부 중에서 27%를 가져갔고 최상위 0.1%는 13%, 0.001%는 4%를 차지했다.

인류 역사상 이런 불평등의 시대가 있었을까? 왜 불평등의 희생자들은 분노하지 않는 것일까? 왜 그들은 갈수록 극심해지는 기득권자의 착취 구조 속에서도 오히려 부자 감세와 복지 예산 삭감에 동의하는 것일까? 이 기이한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은 그의 책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나에게 던지는 질문’에서 이 기이한 현상의 비밀을 우리가 암묵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거짓 믿음들에서 찾는다.

바우만이 통찰한 불평등에서 이익을 얻는 계층이 심어 놓은 대표적인 네 가지 거짓 믿음 중 두 가지는 이렇다.

‘인간들 간의 불평등은 자연적인 것이다’ ‘가치 있는 사람들은 올라가고 가치 없는 사람들은 배제되거나 추락하는 양면을 지닌 경쟁은 사회 질서의 재생산과 사회 정의의 필요충분조건이다’

같은 일을 했더라도 누구는 50억원을 퇴직금으로 받고 누구는 2000만원을 받을 수 있다. 2000만원을 대출받았더라도 누구는 월 이자 4만원을 내고 누구는 20만원을 낼 수 있다. 이런 불평등한 사회 구조는 자연적인 것이고 함부로 변경하면 우리 모두에게 심각한 손해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경쟁에 참여해서 추락하거나 설사 참여할 기회조차도 받지 못했더라도 이는 사회 질서의 재생산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 우리 모두에게 믿음이 된 현실…

우리는 왜 이런 거짓말에 순응하게 되었을까? 불평등을 조장하는 기득권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불굴의 용기가 필요하고 또한 많은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때로는 목숨을 걸어야 할 때도 있다. 이런 점이 기득권에 대한 저항을 매우 어렵게 만들고 따라서 저항하기보다는 체념하고 얌전히 굴복하거나 아니면 자발적으로 협력하는 방향으로 스스로 조정한다. 좋은 상황이 아님에도 ‘좋은 게 좋은 거다’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 거짓말에 순응하지 않았다고 하여 바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구조화된 현실 기득권의 힘이 생각보다 막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를 옥죄는 현실 기득권을 구조화하고 공고하게 만드는 고리를 끊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초인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먼저 현실 기득권과 손쉽게 타협하지 않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위기가 도래했을 때, 경고를 들은 적이 없다고 말하지 마시라. 우리 모두에게 최선은 아직 우리에게 힘을 합쳐 위기를 막을 능력이 남아 있을 때 위기가 구체화되지 못하게 막는 것”이라고 바우만은 말한다..

더 늦기 전에 우리는 먼저 ‘이건 아니다’부터 외쳐야 한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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