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독 작곡가 박영희 신작 오페라 ‘길 위의 천국’ 초연

두 번째 한국인 사제 최양업 신부 탄생 200주년 기념… 15년 전부터 구상

박영희 작곡가가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무궁화홀에서 열린 ‘길 위의 천국’ 제작발표회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월 독일 예술원은 ‘베를린 예술대상’ 수상자로 재독 작곡가 박영희(75·전 브레멘 국립음대 교수)를 선정했다. 1948년부터 시작된 베를린 예술대상은 독일 예술계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상으로 음악, 순수미술, 건축, 문학, 공연예술, 영화 등 6개 부문을 대상으로 한다. 매년 6개 부문에서 예술상을 선정하는 한편 6년 주기로 1개 부문에서 대상 수상자를 결정한다. 박영희 작곡가는 베를린 예술상 역사상 전 부문에 걸쳐 최초의 동양인 수상자이자 6년 주기로 음악 부문에서 여성 최초로 대상 수상자가 됐다.

박 작곡가는 베를린 예술대상 수상 이전부터 유럽에서 각종 ‘최초’ 기록을 거듭해왔다. 서울대 졸업 후 74년 독일 유학을 떠난 박 작곡가는 78년 스위스 보스빌 작곡 콩쿠르와 79년 유네스코 작곡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80년 광주민중항쟁에서 영감을 얻은 교향곡 ‘소리’를 독일 도나우에싱겐 현대음악제에서 초연해 명성을 얻었다. 이후 1994년 여성으로는 처음 브레멘 국립예술대학 교수로 선임된 그는 동 대학에서 부총장까지 역임하다 은퇴했다.

박 작곡가는 ‘모계화음(Mutterakkord)’이라는 고유의 화성을 개발하고 한국 전통 악기를 작곡에 많이 사용하는 등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했다. 대학 은퇴 이후에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며 독일의 주요 음악상 및 작곡상 심사위원으로도 위촉받고 있다. 주독일 한국문화원은 2016년부터 매년 ‘국제 박영희 작곡상’을 개최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부터 독일 베를린 메르쯔 뮤직 페스티벌, 뮌헨 비엔날레 현대 음악극 페스티벌, 에센 나우 현대음악 페스티벌, 도나우에싱엔 현대음악축제, 오스트리아 빈 콘체르트하우스 등에서는 박 작곡가를 조명하는 프로그램을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박 작곡가의 신작 오페라 ‘길 위의 천국’이 11월 12~13일 청주, 20~21일 서울, 23일 광주에서 열린다. 그동안 국내에서 박 작곡가의 작품이 소개되긴 했지만, 신작이 초연되는 것은 매우 드물었다. 이번 작품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에 이어 두 번째 한국인 사제가 된 최양업 토마스 신부(1821~1861)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작곡됐다. 라틴어 교리를 우리말로 번역해 천주교인들에게 전한 최 신부는 조선에서 많이 불리던 가사(歌辭) 양식을 차용해 천주가사를 만드는 등 한국 고유의 음악과 서양 음악을 조화시킨 선구자로도 꼽힌다.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무궁화홀에서 열린 ‘길 위의 천국’ 제작발표회에서 박 작곡가는 “15년 전 최양업 신부님의 서한집을 읽고 최 신부님을 너무나 사랑하게 됐고, 음악을 바쳐서 나의 사랑을 돌려드리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박 작곡가는 2005년 우연히 서한집을 읽은 후 인간의 욕심과 명예욕을 온전히 비운 최 신부의 삶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서한집에 나오는 라틴어 가사로 성악곡 ‘주님, 보소서(Vide Domine)’를 작곡한 박 작곡가는 이듬해 최 신부가 활동했던 청주 근교 배티성지를 순례하기도 했다. 그리고 박 작곡가의 열정에 감동한 한국 천주교회는 작품을 의뢰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작품이 완성되기까지는 상당히 긴 시간이 걸렸다. 박 작곡가는 “신부님에 대한 사랑은 점점 깊어졌지만, 곡을 쓰면서는 오히려 순간적인 감정에 빠지지 않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조금 멀어지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작품의 대본은 고연옥 극작가와 이번 오페라 프로젝트 총감독인 청주교구 류한영 신부가 함께 썼다. 이번 작품은 기존 오페라 양식과 달리 매우 연극적이며 해설자가 등장하며 판소리 등 한국 음악이 많이 사용된다. 박 작곡가는 “우리말이 갖는 특징을 노래에 얹어서 조금 다른 형태로 청중들이 듣게 하는 게 목표였다”며 “오케스트라의 웅장함에서 벗어나 포기하는 것을 배우면서 소박한 음을 들려주려고도 노력했다”고 말했다.

오페라의 예술감독과 지휘는 독일 트리어시립극장과 울름극장의 부총음악감독 및 수석지휘자를 지낸 지휘자 지중배가, 무대 연출은 독일에서 활동하는 연출가 이수은이 맡았다. 테너 김효종이 최 신부 역으로 출연하고, 배우 이윤지가 해설자로 무대에 선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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