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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기만 해봐, 한방에 훅 간다…대선 가르는 ‘말실수’


19대 대선을 한 달 앞뒀던 2017년 4월 초,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후보의 상승세는 거침없었다. 안 후보는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턱밑까지 추격했다. 한국갤럽의 4월 첫째 주 지지도 조사에서 안 후보는 35%를 기록하며 1위 문 후보(38%)를 3% 포인트 차이로 바짝 쫓았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골든 크로스(지지율 역전 현상)’도 나타났다.

그러나 4월 23일 3차 TV토론 직후 양강 구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한국갤럽의 4월 넷째 주 조사에서 안 후보 지지율은 첫째 주와 비교해 11% 포인트나 빠졌다. 지지율은 시간이 지날수록 떨어졌다. 안 후보는 결국 대선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에도 밀려 3위(득표율 21.41%)에 그쳤다.

대권의 근처까지 갔던 안 후보의 발목을 잡은 것은 말실수였다. 안 후보는 당시 TV토론에서 “제가 MB(이명박 전 대통령)의 아바타냐”고 말했다. 자신을 겨냥한 민주당의 비방이 확산되자 문 후보에게 따져 물은 것인데 오히려 역효과를 낳았다. 국민의당 대선평가위원회는 2017년 9월 ‘19대 대선 평가보고서’에서 “TV토론을 통해 오히려 ‘MB 아바타’라는 이미지를 강화했다”고 지적했다. 당시 안철수 캠프에 있었던 한 전직 의원은 29일 “‘내가 MB 아바타냐’고 질문한 순간 안 후보가 MB 아바타라는 것을 시인한 셈이 됐다”며 “민주당이 호남 지역 표를 얻기 위해 만든 프레임 공작에 그대로 걸려들면서 무너졌다”고 회고했다.

안 후보의 사례는 말실수가 대선의 향방을 갈랐던 경우다. 하지만 말실수가 큰 변수가 되지 못했던 경우도 있다. 17대 대선 때인 2007년 8월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는 ‘마사지걸’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다. 그는 해외 근무 경험을 얘기하면서 “현지에서 오래 근무한 선배는 얼굴이 덜 예쁜 여자를 마사지걸로 고르더라”며 “예쁘지 않은 여자들은 자신을 선택해준 게 고마워 성심성의껏 서비스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 당시 이 발언에 대한 비판이 거셌지만 20% 포인트 이상 벌어져 있던 정동영 당시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이 격차는 대선까지 이어졌다.

18대 대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는 2012년 12월 TV토론에서 “지하경제 활성화”라고 말했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잘못 말한 것이다. ‘5.8조(5조8000억원)’로 쓰인 원고를 “5점8조”라고 읽거나 ‘바쁜 꿀벌은 슬퍼할 시간도 없다’는 명언을 “바쁜 벌꿀은 슬퍼할 시간도 없다”고 잘못 얘기하는 등 실수를 자주 범했다. 실수가 반복되자 정치권에서는 박 후보의 별명이던 ‘수첩공주’가 다시 회자됐다. 하지만 대세론은 굳건했다. 박 후보는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 안철수 무소속 후보와 15% 포인트 이상의 지지율 격차를 유지했다. 야권이 막판 단일화에 성공해 박 후보에게 도전했지만 대권은 박 후보가 거머쥐었다.

역대 선거를 보면 말실수는 대세론을 꺾지는 못하지만 박빙 승부일 때는 당락을 좌우했다. 이 때문에 20대 대선을 불과 4개월 앞둔 현 시점에서도 말실수가 대선판을 뒤흔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국민의힘 주자들의 가상 대결 결과는 팽팽하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17대 대선 때처럼 결과가 이미 어느 정도 예측되는 경우에는 실언이나 막말이 변수로 작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집 차이로 승패가 결정되는 경우는 어느 후보를 찍어야 할지 고민하는 유권자들이 실언이 잦은 후보를 뽑지 않을 수도 있다”며 “단 한 번의 실수가 판세를 흔들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주자들은 이미 경선 과정에서 ‘설화 논란’에 휘말린 적이 있다. 여야 모두에게 말실수가 불안 요소인 셈이다. 이 후보는 앞서 민주당 경선 초기에 ‘바지 발언’으로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7월 TV토론에서 배우 김부선씨와의 스캔들 관련 해명을 요구받자 “바지를 한 번 더 내릴까요”라고 반문한 것이다. 이 후보는 “백제가 주체가 돼 한반도 전체를 통합한 때가 한 번도 없었다”는 언론 인터뷰 발언이 지역감정을 조장한다며 집중포화를 맞기도 했다.

국민의힘 대선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지난 6월 대권 도전을 선언한 이후 유독 잦은 설화로 ‘1일 1실언’을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는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 “가난한 사람은 부정식품이라도 먹을 수 있게 선택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 “손발 노동은 인도도 안 한다. 아프리카나 하는 것” 등의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최근에는 ‘전두환 옹호 발언’으로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홍준표 의원도 지난달 “경기도의 차베스를 잡을 사람은 저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재명 후보를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에 빗댄 것인데, 상대 후보를 독재자에 비유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홍 의원은 19대 대선 때도 “집안일은 여자가 하는 것” “경상도에서는 장인어른을 친근하게 표시하는 속어가 영감탱이” 등의 발언으로 홍역을 치렀다.

정치 전문가들은 대선 후보의 실언에 국민이 분노하는 이유로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여전히 크다는 점,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졌다는 점을 들었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대통령은 한 나라의 리더다. 국민들의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며 “이 때문에 대선 후보의 실언이나 막말에 국민들이 더 분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회적 약자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수준이 과거에 비해 훨씬 높아졌다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자질이나 리더십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잣대가 말”이라며 “대선 후보들은 중요한 발언의 경우 준비된 발언들로 얘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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