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獨)한 것들] 39살 아파트의 마지막 이야기

집의 의미를 묻는 영화, 집의 시간들

저는 1980년 서울 강동구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서울 도심에 있다고는 믿기 힘든 모습일 거예요. 차도 옆에는 사람들이 자주 다녀 생긴 길이 있어요. 메타세콰이아, 소나무, 벚나무 같은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우거졌죠. 하지만 수십 번의 계절이 지날 동안 사람들은 계속 저를 밀어내려고 했어요. 1999년부터 계속 재건축을 논의했거든요. 2018년 10월, 저는 40살을 채우지 못하고 무너졌습니다. 약 6천 세대가 살았던 곳인데 한순간에 텅 비어버렸죠. 그렇게 모든 흔적이 사라졌습니다. 제 이름은 둔촌주공아파트예요.

영화 '집의 시간들' 스틸 이미지

언젠가부터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는 집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사는 곳이 아니라 투자 대상이 됐습니다. 서울에 살고자 하는 사람에 비해 아파트가 턱없이 부족하니 가격이 날로 상승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서 이득을 보는 사람들도 있죠.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오래되고 낮은 아파트를 허문 자리에 고층 아파트를 지어야 합니다. 둔촌주공아파트의 143개 동도 이런 이유로 무너졌습니다. 그 자리에는 1만 2천여 가구가 살 수 있는 대규모 단지가 들어설 예정입니다.

영화 '집의 시간들' 스틸 이미지

둔촌주공에서 태어나 자란 이인규 작가는 오랫동안 같은 자리에 있었던 아파트가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했습니다. 이 작가는 둔촌주공을 두고 “계속해서 뭔가 돌아오고 있는 동네”라고 묘사했습니다. 이 작가도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하남시로 떠났죠. 2014년 둔촌주공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왔습니다. 마지막으로 둔촌주공에서 꼭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었죠.

철거를 아쉬워하는 사람은 이 작가 한 명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주민들이 둔촌주공을 고향처럼 생각했습니다. 이 작가는 아파트에 얽힌 추억을 기록하는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주민들의 이야기와 사진을 모아 책을 냈습니다. 동네의 상징이었던 기린 미끄럼틀과의 마지막을 기념하며 불꽃놀이를 열었습니다. 여기에 누군가의 집을 기록하는 라야 감독의 ‘가정방문’ 프로젝트가 만나 영화 ‘집의 시간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영화는 제목 그대로 다른 무언가가 아닌 집으로서의 아파트를 조명합니다.

영화 '집의 시간들' 스틸 이미지

둔촌주공은 오래된 만큼 생활에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수도꼭지에선 녹물이 나오고 바람이 잘 통하지 않아 곰팡이가 슬었죠. 겨울이 되면 단수가 잦을 뿐만 아니라 뜨거운 물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 씻는 것조차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추억이 많습니다. 둔촌주공은 많은 사람들의 첫 기억이 시작된 장소였습니다. 4살 때부터 둔촌주공에 살았던 아이가 자라 10개월 된 딸을 키우기 위해 돌아왔습니다. 어떤 주민은 모든 일이 잘 풀렸던 기억 때문에 독립하고 나서도 아파트를 오고 갑니다. 원래 살던 사람들과 잘 섞이지 못했던 경우도 있었죠. 사라지기 직전의 아파트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은 다양했습니다.


영화 ‘집의 시간들’의 주인공은 둔촌주공입니다. 70여 분의 시간 동안 사람에 집중되는 장면은 없습니다. 주민들의 이야기도 목소리로만 등장합니다. 대신 아파트를 둘러싼 풍경과 주민들의 집을 보여줍니다.

“이 집에는 진짜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런 부분들이 너무너무 많은 것 같아요.”
인터뷰에 응한 한 주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창문을 열어도 보이는 푸른 나무, 1층 아주머니가 심어 놓은 야생화, 해가 지며 빛이 들어오는 시간, 저녁 시간마다 들리는 절의 종소리까지. 둔촌주공은 오랜 시간 만큼 여러 색과 향기를 가진 공간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아파트는 어떤가요? “가격이 오를 위치라서”, “투자 가치가 있어서”가 아닌, 여러분의 공간에서 가장 사랑하는 부분을 떠올려보세요. 분명 그 안에는 다른 공간에서 볼 수 없는 특별함이 깃들어 있을 거예요.

집의 시간들, 이런 분들에게 추천해요!

나는...
① 잔잔한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선호한다
② 아름다운 풍경이 담긴 영화를 보고 싶다
③ 집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를 보고 싶다


김수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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