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회사 아닙니다, 미래 회사입니다… 정유사들 변신

국민일보 DB

세계에너지기구(IEA)는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석유 수요가 지속 감소해야 한다고 전망한다. 이 경우 2019년부터 2030년까지 1537백만toe의 석유 수요 감소가 필요하다고 추산한다. 석유의 시대가 저무는 것이다. 그렇다면, 석유를 수입해 정제하고 거기에서 각종 화학제품의 원료를 뽑아내는 정유사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이른바 ‘기름 회사’에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원유를 정제해 석유제품을 생산하는 정유업은 철강업과 함께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많은 산업으로 꼽힌다.

세계적 정유사들은 살아남으려면 변할 수밖에 없다고 여기고 사업의 무게중심을 ‘미래’로 옮기고 있다. 이들의 변신은 미래 연료, 친환경 신소재라는 두 축으로 크게 나뉜다.

석유 대신 미래를 잡아라

상당수 정유사들은 수소에서 미래를 찾고 있다. 정유시설에서 발생하는 ‘부생수소’는 물론 기존 시설, 수송 인프라 등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BP는 지난 3월 영국 티스사이드 공업지대에 연 26만t 규모의 수소를 생산하는 플랜트를 짓는다고 발표했다. 셸은 ITM파워와 독일 라인란트 지역에 대규모 수소 전기분해 시설을 건설하고 있다. 셰브론은 도요타, 커민스와 협력해 수소 인프라 구축과 수소 연료전지 차량 보급에 나섰다.

충남 서산시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 내 고순도 수소 정제 설비에서 수소 트레일러를 충전하고 있다. 현대오일뱅크 제공

우리 기업이라고 다르지 않다. GS칼텍스는 수소 생산과 충전소를 중심으로 사업 확대에 나서고 있다. GS칼텍스는 지난 5월 한국가스공사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가스공사의 LNG 인수기지 내 유휴부지에 2024년 완공 목표로 연산 1만t 규모의 액화수소 플랜트를 짓기로 했다. 액화수소 1만t을 수도권과 중부권에 공급할 계획이다.

에쓰오일은 삼성물산과 손잡고 수소·바이오 연료 사업을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수소 인프라 구축과 수소 공급·운영, 해외 청정 암모니아·수소 도입과 유통 등에서 협력할 예정이다. 에쓰오일은 올초 차세대 연료전지 벤처기업인 에프씨아이(FCI)의 지분 20%를 확보하며 전략적 협력 관계를 구축하기도 했다.

현대오일뱅크는 최근 수소연료전지 자동차에 들어가는 고순도 수소 정제설비를 충남 서산시 대산공장 안에 구축했다. 현대오일뱅크는 2030년까지 전국 180개 수소차 충전 네트워크를 갖출 예정이다.

친환경 신소재나 새로운 에너지 사업으로 방향타를 돌리는 기업도 많다. 가장 대표적 사례가 전기차 배터리 기업으로 탈바꿈한 SK이노베이션이다. SK이노베이션의 올해 3분기 기준 누적 배터리 수주 물량은 연초 대비 2배 이상 확대됐다. 내년 1분기 미국·헝가리 공장 상업가동 등으로 배터리 사업의 외형도 빠르게 늘어날 전망이다.

현대오일뱅크는 올해 안에 수소연료전지 분리막 생산설비를 만들 예정이다. 분리막은 수소가스에서 분리된 전자의 이동을 막고 수소이온만 선택적으로 이동시켜 주는 전해질막의 강도를 좌우하는 소재다. 올해 안에 분리막 생산 설비 구축 및 시운전을 마치고, 내년에 국내 자동차 제조사와 공동으로 실증 테스트를 거칠 예정이다. 2023년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태양광 패널 소재 생산에도 뛰어들었다.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 SK지오센트릭은 친환경 플라스틱 소재 생산에 초점을 맞췄다.

석유,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탄소 감축 노력에도 불구하고, 석유 수요는 지속한다는 전망도 있다. 사회 안전, 필수 경제활동, 국가 안보 등에 석유가 꼭 필요해서다.

가령 일반 플라스틱은 내구성을 늘리거나 재활용할 수 있지만, 인명을 다루는 의료 현장에서 사용되는 의료기기는 재활용을 하거나 교체주기를 늘리는 게 어려워 석유에서 계속 플라스틱을 뽑아내야 한다. 전기차와 전철 등은 전기·배터리가 있는 환경에서 구동할 수 있지만, 군용 차량 등은 전력 인프라 붕괴 상황에서도 가동돼야 하기 때문에 석유를 버리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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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다 코로나19 팬데믹 완화, 세계 경제 회복세가 맞물리면서 ‘석유 수익성’이 좋아지고 있다. 블룸버그NEF는 세계 석유 수요가 2035년쯤 정점에 이르며 항공, 해운, 석유화학 부문의 수요는 2050년까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석유산업 자체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지웅 한국석유공사 에너지정보팀 과장은 “사회 안전, 필수 경제활동, 국가 안보를 유지하기 위한 석유 소비는 유지될 것이다. 석유 소비가 필수 용도로 축소될 때 석유 수급의 안전성은 더 중요해진다. 따라서 석유비축사업을 통한 비축물량은 국가안보 차원에서 더 중요해질 것이고, 해외 석유개발을 통한 지분원유 확보도 그 가치가 더 커질 수 있다”고 밝혔다.

김지애 기자 am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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