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할 줄 알았는데… 명품의 이유있는 팬데믹 초대박

루이비통 덤벨. 루이비통 홈페이지 캡처

‘호화로운’이란 뜻의 영어 ‘럭셔리(luxury)’는 라틴어 ‘룩수스(luxus)’가 어원이다. 룩수스는 ‘너무 호사스러워 지나칠 정도’라는 부정적 의미로 사용됐던 말이었다. 룩수스의 명사형은 ‘룩수리아(luxuria)’로 ‘무절제’ ‘방탕’ 등을 뜻한다.

그러나 지금 럭셔리란 단어는 ‘명품’을 상징하는 말이다. 루이비통 크리스천디올 구찌 이브생로랑 같은 프랑스·이탈리아산 패션 브랜드 뿐 아니라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등의 자동차 브랜드들까지 명품 대열에 합류해 있다.

2000년대 들어 주요국가들의 1인당 국민소득이 크게 증가하면서 명품 브랜드들은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초호황기를 맞았다. 매년 몇배씩의 매출 성장률을 기록하며 약진한 것이다.

심지어 코로나19 팬데믹의 광풍이 세계경제를 초토화시킨 지난 2년 동안에도 럭셔리 브랜드의 견고한 아성은 무너지지 않았다.

지난해 초 팬데믹 사태가 터졌을 때만 해도 경제 전문가들이 가장 극심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 업종 리스트에는 럭셔리 브랜드들이 상위를 차지했다. 쇼핑몰들이 문을 닫거나 영업을 단축할 수 밖에 없는데다 소득이 감소한 소비자들이 ‘사치 비용’을 가장 많이 줄일 것이란 예상에 따른 것이었다.
태그호이어 골프 시계. 태그호이어 홈페이지 캡처

그런데 실제 시장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다른 업종들이 현상 유지는커녕 아예 망해버리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럭셔리 브랜드의 각종 초고가 상품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국세청과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로 수입된 럭셔리 브랜드의 최고급 가방에 부과된 개별소비세가 256억원으로 2019년보다 38.1%나 증가했다. 고급시계 판매에 따른 개별소비세도 792억원으로 6.1% 늘었다.

두 품목에 부과된 세금으로 판매량을 추산해보면 가방은 1741억원, 시계는 5386억원어치나 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보다 국내 소비자들의 명품 소비가 이처럼 급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처럼 럭셔리 브랜드가 더 성장하게 된 원인은 뭘까. 우선 코로나19 사태가 주요국가의 경제구조를 ‘부자는 더 부자로, 빈자는 더 빈자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대규모 자본을 투자해 수익을 얻는 금융산업은 전기차, 친환경에너지, 첨단정보통신(IT) 스타트업 등 그린산업에 투자해 전통산업에 비해 훨씬 더 큰 수익률을 거뒀다.

인터넷망을 이용한 방송 연예산업, 온라인 쇼핑, 배달·택배업도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며 일국(一國)이 아니라 전 세계를 상대로 돈을 버는 신산업으로 자리잡았다.

이에 따라 이전까지 미국과 유럽, 일본, 중동 산유국의 일부 상류층 등으로 한정됐던 ‘부자 소비자’들은 선진국으로 부상한 한국, ‘세계의 공장’ 중국 등으로 널리 확산됐다. 불과 10년 전보다 럭셔리 브랜드의 잠재적 소비자 수가 전 세계적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는 게 경제 전문가들의 이구동성이다.

지나칠 정도로 충분한 구매력을 갖춘 부자 소비자들은 더 이상 ‘가성비(價性比·가격 대비 성능)’를 쇼핑의 가치로 여기지 않게 된다. 대신 가격 대비 ‘내 마음’, 즉 ‘가심비(價心比)’를 추구한다. 몸에 걸치면 남들이 다 알아봐 주는 명품, 그 명품 하나가 가져다 주는 심리적 만족감을 맛보고 나면 아무리 비싸도 명품만 사서 쓰는 소비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럭셔리 브랜드의 인기는 바로 소비자들이 가심비 추구 심리를 오랫동안 자극해온 마케팅 덕분이었다.
그렇다고 이들 브랜드가 이 고전적 마케팅에만 의존하지는 않는다.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 접어들자 더 공격적인 시장 공략 전략을 구사하며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22일 “팬데믹 시대 명품 브랜드들의 새 전략은 바로 ‘럭셔리가 더 안전하다’는 인식의 전파”라고 보도했다.

구매력을 갖춘 소비자들에게 명품 건강용품을 쓰는 게 코로나19에 안 걸리는 지름길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이 인식을 이용해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한다는 것이다.

루이비통은 헬스클럽에 갈 수 없는 선진국 소비자들이 홈피트니스에 몰입하자 온라인 피트니스 전용 네트워크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인 ‘미러’ ‘펠로튼’과 협업해 아령과 덤벨을 팔았다. 크리스천디올 역시 특유의 로고가 새겨진 럭셔리 러닝머신을 내놨다. 이브생로랑도 흑색 대리석으로 만든 덤벨을 만들어 팔고 있다.

이들이 만든 새로운 시장인 럭셔리 헬스용품 시장은 미국에서만 지난해 23억 달러 규모로, 2019년보다 두배 이상 커졌다.

럭셔리 홈인테리어 시장도 미국에서 폭발하고 있다. 명품 로고가 새겨진 커텐과 카페트, 이불 등 침구류로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WP는 “이처럼 럭셔리브랜드들이 속속 변신하면서 ‘명품’의 정의마저 바뀔 판”이라고 전했다. 손바느질로 한땀 한땀 만든 손가방, 1㎜이하의 나사까지 손으로 조립한 스위스산 시계처럼 한정된 양만 생산하던 방식을 뛰어넘어 대량생산도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란 것이다.

WP는 “소규모 소생산 전통을 깨고 럭셔리 브랜드들이 대량생산을 마다하지 않는다거나 첨단 IT기업과 협업해 명품 IT기기 시장을 개척하고, 아예 새로운 사업 영역까지 개척하고 있다”고도 전했다.

‘남들에게 보여주는’ 명품이 아니라 ‘나 혼자 봐도 아름다운’ 명품, ‘내 건강을 지키는데 필요한’ 명품으로 탈바꿈하는 현상도 주목할 만하다.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팬디는 최고급 파자마 세트를 시판했으며, 구찌는 등산전문 브랜드 노스페이스와 협업해 오리털 파카를 선보이고 있다.

미국 최대 부동산 기업인 소사이어티그룹의 알렉산더 앨리 CEO는 WP와의 인터뷰에서 “팬데믹 사태가 계속 되면서 소위 ‘부자 소비자’들의 사치스런 욕구가 웰빙 건강 쪽으로 전도되고 있다”면서 “앞으로는 이런 방향이 건강을 넘어 부동산 시장으로도 유입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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