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대지주가 묻었다는 ‘금괴 2t’…미확인 풍문에 꼬이는 이들

소문 시발점 익산 농장 가보니
광복회도 “도굴 흔적” 가세
“미확인 소문에 행정력 낭비”

지난 18일 기자가 찾은 전북 익산 주현동의 구 일본인 농장 사무실. 일본식 2층 목조 건물 형태다. 일제강점기 농업 수탈의 역사를 보여주는 장소로서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2015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지난 6일 오후 국가등록문화재인 전북 익산의 옛 ‘오하시 농장’ 사무실에 30대 중반 남성 A씨가 침입했다가 검거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건물은 올해 3월 ‘지하에 1400억원대 금괴 2t이 묻혀있다’는 소문이 돈 후 일반인 출입이 통제된 상태였다.

26일 익산경찰서에 따르면 A씨는 전북 정읍에 거주하는 직장인이었다. 유튜브에서 금괴 매장설을 접한 뒤 무단으로 침입했다가 외지인의 침입을 수상히 여긴 주민 신고로 덜미를 잡혔다. 경찰에 붙잡힐 당시 A씨는 별도의 발굴 장비는 갖추지 않았다. 온라인에서 떠돌던 검증 되지 않은 소문이 현실의 담을 넘게 만든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농장 사무실에 실제로 금괴가 묻혀있든 아니든 금괴를 훔치려는 목적을 가지고 해당 장소를 물색한 것으로 조사돼 절도미수 혐의로 입건했다”며 “조만간 검찰에 불구속 송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일보는 소문이 시발점인 전북 익산을 찾아 농장 사무실 인근 주민들, 관할 시청 및 경찰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구 일본인 농장 사무실과 지붕 철골 구조로 연결돼 있는 창고 건물. 사무실을 소학교로 사용했던 이 지역 화교들이 1960년대 증축한 건물이다.

어둠의 역사, 꼬리 무는 소문
지난 18일 찾은 농장 사무실 건물은 모든 창문과 입구가 봉쇄돼 있었다. 이 건물은 1945년 일제 패망 이후 오랜 기간 지역 화교들의 소학교로 사용됐다. 사무실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창고, 앞쪽에 교실이 자리하고 있다. 사무실과 지붕 철골로 연결된 창고와 교실은 화교들이 각각 1960년대, 2000년대 증축했다. 문화재청에 의해 문화재로 지정된 건물은 이중 사무실이다.

A씨는 유일하게 봉쇄되지 않은 창고 옆 창문을 통해 침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A씨 검거 후에는 창고 옆 창문도 나무 합판으로 덮여 있었다.

인근 주민들은 금괴 매장설이 일제시대 호남지역 최대 쌀창고로 알려진 오하시 농장 주인이 광복 후 일본으로 넘어간 후 나온 소문이라고 말했다. 오하시 요이치 일가는 99만2000㎡에 달하는 오하시 농장을 경영하며 막대한 재산을 축적했으나 광복 후 일본으로 가져갈 수 없어 각종 보물, 금괴를 농장에 묻어 놓고 떠났다는 게 소문의 요지다. 현재 성당 주차장으로 쓰이는 농장 사무실 앞은 1919년 4월 4일 독립만세운동이 벌어진 곳으로 조선인들이 일본 군경에 학살된 장소이기도 하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아온 고모(71)씨는 “어린 시절부터 동네에서는 일본 놈들이 재산을 금괴로 바꿔 묻어 놓고 도망갔다는 소문이 있었다”며 “정말 금괴가 묻혀 있다면 좁은 부지 위에 선 농장 사무실이 아니라 일본인 관사가 있던 곳 지하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창고 건물 옆쪽 창이 나무 합판으로 봉쇄돼 있다. 익산 구 일본인 농장 사무실 금괴 매장설을 듣고 금괴를 훔치러 침입했다가 절도미수 혐의로 검거된 30대 중반 A씨는 이 창을 통해 건물 내부로 진입했다. 사건 이후 건물 창은 전부 나무 합판으로 봉쇄됐다.

日대지주 떠난 뒤 손바뀜만 3번
오하시 일가가 떠나고 농장 사무실 주인은 3번 바뀌었다. 처음 이 건물을 공동 명의로 소유하고 소학교로 운영했던 화교들은 2000년대 초반부터 신입생 모집이 어려워지자 사실상 이 건물을 빈 곳으로 방치했다.

공동 명의 대표자로 이름을 올린 화교 3세대 유모(72)씨는 인근에서 3대째 90년 동안 가업을 이어받아 비단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는 2018년 6월 28일 주현동성당에 사무실 건물과 부지를 6억여원에 팔았다. 주차 공간이 없었던 성당 측이 먼저 제안했다.

역시 어린 시절부터 농장 어딘가에 금괴가 묻혀 있다는 소문을 접한 적 있다는 유씨는 “긴 세월 동안 이곳을 매입하겠다거나 발굴사업을 해보고 싶다고 접촉했던 이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며 “그래서 성당 문의가 들어왔을 때 빨리 팔게 됐던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금괴 매장 소문의 신빙성이 있었다면 매입하려는 시도가 꾸준히 있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성당 측은 당초 건물들을 전부 허물고 주차장으로 사용하려 했다. 하지만 사무실이 2015년 11월 문화재로 등록돼 있어 문화재청 허가가 필요했다. 성당은 급한 대로 창고와 교실 건물이라도 허물어 주차장 부지를 최대한 넓히려 했으나 문화재청은 세 건물이 모두 지붕 철골로 연결돼 있어 철거 과정에서 훼손이 우려된다며 철거를 불허했다. 성당 입장에서도 애물단지가 된 것이다. 성당 관계자는 “우리가 건물을 가지고 있을 때도 매입 시도나 발굴 사업 계획 타진은 없었다”고 말했다.

익산시청은 사무실과 부지를 지난해 12월 24일 주현동성당으로부터 5억2000만원에 구매했다. 3·1운동 100주년이었던 2019년을 기해 일본 적산가옥이 많이 남아 있는 전북 군산 등 인근 지자체들에서 너도나도 문화재 정비사업을 진행하고 있던 것이 영향을 미쳤다. 익산시는 올해 초부터 사무실 건물과 부지를 항일운동기념관으로 개보수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창문으로 보이는 익산 주현동 구 일본인 농장 사무실 내부 모습. 2019년 익산시청이 복원한 계단이 보인다. 광복회는 계단 뒤쪽 나무 널판이 깔려 있는 장소를 금괴 매장 위치로 의심하고 있다.

다시 등장한 ‘탈북민 김씨’
익산시가 문화재 정비사업을 시작한 후 금괴 매장설은 다시 퍼지기 시작했다. 그럴싸한 시나리오까지 뒷받침됐다. 2012년 대구 동화사 대웅전 금괴 매장 소동을 일으켰던 탈북민 김모(50)씨가 오하시 요이치 손자의 부탁을 받아 정비사업 발주에 참여하고 본격 금괴 발굴에 나선다는 소문이었다.

해당 소문은 올해 초 경찰에도 포착됐다. 익산경찰서 관계자는 “올해 초 시중에 그런 얘기가 돌았다”며 “경찰 정보 수집 차원에서 파악했고, 따로 정리를 하거나 보고서를 만들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 인근 CCTV를 늘리고 순찰을 강화했다. 살이 입혀진 소문은 온라인에서 그럴 듯하게 포장되면서 이전보다 더 빠르게 번져나갔다. 지역 언론들도 가세했다.

이런 상황에서 광복회 귀속재산특별위원회가 가세해 금괴 매장설이 더 힘을 얻었다. 귀속재산특별위는 지난 8월 익산시청에 낸 사전 탐사 및 매장물 발굴 허가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전북 행정심판위원회에 해당 결정을 취소해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지난달 행정심판위원회 주관 농장 사무실 현장검증에 참여한 광복회 관계자들은 “사무실 구석 계단 근처에서 명백한 도굴 흔적을 발견했다”며 지난 2일 문화재청에 조사와 수사를 의뢰한다고 밝혔다.

바뀌는 추정 장소, 신빙성 의심
하지만 소문의 신빙성은 현재로선 높지 않다. 2012년 금괴 소동 당시 동화사 관계자는 탈북민 김씨에 대해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당초 할아버지가 대구의 절 어딘가에 묻어 놓은 금괴를 찾아야 한다며 처음 동화사에 찾아왔던 건 탈북민 가족 4명이었다”며 “이후 이들은 사라지고 두 달 뒤 김씨가 갑자기 나타나 대웅전 뒤편을 매장 위치로 지목하며 발굴을 주장했다”고 말했다.

논란이 일자 문화재청은 조건부 발굴 허가를 내줬지만 발굴 작업과정과 매장물 처리문제 등을 두고 이해 당사자들이 갈등을 빚다 결국 무산됐다. 김씨도 종적을 감췄다.

금괴 매장 장소로 지목된 곳도 소문이 퍼지면서 달라지고 있다. 올해 초 금괴 매장설이 다시 대두 됐을 때만 해도 매장 위치로 지목된 곳은 사무실이 아닌 창고였다. 하지만 취재 결과 현지 주민들이 기억하는 소문에서 매장 장소는 사무실도 창고도 아닌 성당 인근이다. 소문에서 금괴 매장 장소가 ‘오하시 농장’이라는 점에선 일치하지만 구체적 매장 장소는 소문이 다시 부상할 때마다 달라지는 것이다.

광복회 문제제기에 대해서도 익산시청은 도굴이 아닌 본인들 작업의 결과라는 입장이다. 익산시청은 “2019년 문화재 복원 사업을 진행하면서 내부 계단만 복원한 뒤 나머지는 사료 없이 임의대로 진행할 수 없어 임시로 닫아 놓은 흔적”이라고 설명한다. 익산시청 관계자는 “지역 사회가 소문에 계속 휩쓸리면서 행정력 낭비가 이어지고 있다”며 씁쓸해했다.

익산=글·사진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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