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스토킹? 같이있는 사진을”…김병찬 피해유족 울분

'신변보호 여성 살인' 피의자 86년생 김병찬. 뉴시스, 경찰청 제공

전 남자친구 김병찬(35)에게 스토킹에 이어 살해를 당한 피해 여성의 남동생이 가해자의 엄벌을 요구하는 한편 경찰 부실 대응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촉구했다.

자신을 ‘스토킹 살인사건’ 피해자의 동생이라고 밝힌 청원인 A씨는 2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계획적이고 잔인한 스토킹 살인범에게 살해당한 고인과 유족의 억울함을 호소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 글을 올려 “저희 누나는 살고자 발버둥쳤으나 허술한 피해자 보호체계와 경찰의 무관심 속에 죽어갔다”고 호소했다.

A씨에 따르면 피해자는 지난 7일 살해 협박을 받은 뒤 경찰에 신고를 하고 양일간 임시보호소에서 머문 뒤 김씨를 피해 9~14일 지인의 집에서 머물렀다. 김씨는 피해자가 나타나지 않자 9일 피해자의 직장으로 직접 찾아갔고, 피해자는 다시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

A씨가 공개한 112 신고 당시 녹취에 따르면 피해자는 112에 전화를 걸어 경찰에 “임시보호소에 있는 ○○○인데 가해자가 찾아왔다”고 말했다. 이에 112 경찰 응답자는 “같이 있느냐”고 물었고 피해자는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경찰이 다시 “어디로 갔는지 아느냐”고 묻자 피해자는 “아니요,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자 경찰은 “증거가 없으면 도와드릴 수 없다”면서 “같이 있는 사진이나 동영상이 있어야 도와드릴 수 있다”는 황당한 답변을 내놓았다.

A씨는 “정말 기가 막히지 않나. 위협을 가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데 피해자가 동영상을 찍을 수 있을까. 셀카라도 한 번 찍자고 해야 하느냐”면서 “이게 대한민국 피해자 보호체계의 현실이다. 112 응답자도 ‘남’이니까 저렇게 대충하고 넘어간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씨가 직장으로 찾아온 날 피해자는 법원으로부터 접근금지 신청 승인이 됐다는 문자에 안도했으나 실질적 도움은 되지 않았다고 A씨는 토로했다. A씨는 “접근금지 명령만 나오면 가해자들이 ‘아 그렇군요. 이제 근처에도 안 가야겠네요’라고 하느냐”면서 “실질적인 보호인력이 동원되지 않는 접근금지 명령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법원으로부터 100m 이내 접근금지, 정보통신 이용 접근금지 등의 잠정 조치가 취해진 이후인 11일에도 김씨는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어왔고, 경찰은 김씨와의 통화 이후 도리어 피해자에게 “번호를 지우면서 잘못 눌렀다는데, 어떻게 할까요”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A씨는 “이런 게 (스토킹의) 증거가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 증거냐”면서 “흉기로 공격당하기 전에 사진을 찍어서 제출해야 증거가 되는 것이냐”고 울분을 터뜨렸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그는 “끔찍하게 공격당하는 와중에 누나는 살기 위해 스마트워치를 애타게 눌렀으나 스마트워치는 (피해자로부터 500m 떨어진) 엉뚱한 곳을 알려줬다”면서 “신변보호자에게 제공되는 스마트워치를 누른 최초의 시간에 경찰이 출동해 현장에 제대로 도착했다면 누나는 살 수 있지 않았겠나. 신변보호 요청을 한 여성에게 지속적으로 보호인력을 배정했다면 괜찮지 않았겠나”라고 반문했다.

A씨는 “살인범은 누나를 무참하게 살해하고, 누나가 신고하지 못하게 스마트폰을 빼앗았으며, 위치추적하지 못하게 강남 한복판에 버리고, 자신의 휴대폰은 비행기모드로 전환 후 유유히 대중교통을 타고 대구로 가서 ‘호텔’에 안착했다”면서 “이 살인범이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하나. 우발적 범행이라고 진술한 이 살인범은 반드시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건 최고책임자인 서울경찰청장은 해외출장을 가느라 서면으로 사과를 했는데 이것이 진정한 사과인가”라고 반문하며 “경찰은 무슨 원인으로 부실하게 대응했는지를 철저히 조사해 책임자를 찾아내고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처벌을 해 달라”고 요구했다.

A씨는 “누나는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접근한 치밀하고 잔인한 살인마에게 희롱당하다가 흉기에 수십 차례 찔려 꽃다운 나이에 비참하게 살해당했다”면서 “허울뿐인 피해자 보호제도는 누나를 살인범으로부터 전혀 보호해주지 못했고, 누나는 차가운 복도에서 고통 속에 홀로 외롭게 세상을 떠나야 했다”고 비통해했다.

서울경찰청은 이날 신상정보 공개 심의위원회를 열고 김씨의 신상정보를 공개하기로 했다. 김씨는 지난 19일 오전 11시30분쯤 서울 중구 한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전 여자친구를 찾아가 미리 준비한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살인)로 22일 구속됐다.

피해자는 김씨로부터 장기간 스토킹에 시달렸던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에 따르면 피해자는 지난 6월 26일부터 총 5번 김씨를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7일에도 김씨는 피해자의 주거지를 찾아가 협박해 피해자는 김씨를 두 번째로 신고했다. 법원은 김씨에게 피해자에 대해 100m 이내 접근금지, 정보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 스토킹 중단 경고 등 잠정조치 결정했다. 피해자는 사망 직전인 오전 11시29분 처음 스마트워치를 눌렀으나 경찰은 12분 뒤인 11시41분에 현장에 도착해 경찰 대응능력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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