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교수의 연극人 이야기] 사회 부조리를 희곡으로 표현하는 김민정 작가


“현실은 희곡의 허구보다 극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나죠”

희곡 <해무·海霧>(2007)의 김민정(47) 작가는 청바지 캐주얼 차림으로 나왔다. 기다리고 있던 김 작가는 그녀의 대표 작품이라 할 수 있는 분홍색 표지 해무 희곡집(지만지드라마 출판사)을 건넸다. 충남 당진시 합덕읍이 작가 고향으로 말투가 되었다. 당진 버스터미널에서 22㎞를 들어가면 인구 1만여 명가량의 합덕읍이 나오는데 초등학교 시절, 논으로 밭으로 과수원을 다니며 성장한 글쓰기의 심연(深淵)은 고향에서 길러졌다.

“초등학교 4학년 담임 선생님이 시를 쓰시는 선생님(이심훈) 이셨는데 아이들 데리고 소나무 밑에서 글을 짓게 하시고 밭에서 시(詩)화전도 열어주셨다. 그때 재밌었던 것 같아요. 작가 될 사람 하면, 번쩍 손을 들고 그랬죠(웃음)”

작가의 상상으로 투영되는 희곡은 현실과 비 현실의 경계를 넘나든다. 선과 악으로 대립하는 인간의 사악함과 난폭한 현실 비틀기가 무대 언어가 되었으면서도, 고향의 동심으로 써 내려간 작품은 선한 인간들이 존재하는 희곡이 많다. 연극 해무는 2001년 태창호 사건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중국인과 조선족 60여 명이 밀항선(목선, 제7태창호) 한 척에 올라탔고 배 뒤편 후미진 어구 창고와 물탱크로 몸을 숨겼다. 26명이 질식사로 죽었고, 선원들은 죽은 이들을 바다로 수장(水葬)시켰다. 35명 생존자는 다른 목선으로 갈아타고 망망대해를 떠나 전라남도 여수시 작은 섬 마을 대경도(大鏡島)에서 선원과 생존자들이 검거됐다. 인간의 잔혹함으로 대한민국을 뒤집은 사건인데도 작가는 빛 한 줌을 목 말라 하며 해수의 통로에서 숨통이 끊겨간 이들을 바다로 수장 시킨 인간의 사악한 이면보다 연민으로 바라본다. <해무>는 작가의 대표적인 작품이 되었고, 영화로도 제작이 되었다.


| 연극 <해무>로 바다를 건너 <연극 토지Ⅰ,Ⅱ>의 극작가가 된 김민정

“영화 <해무>의 시나리오는 선과 악이 뚜렷하고 그 대립을 다루는데 더 힘을 기울이는 것 같아요. 중반 이후 선장은 악당이 되어버리고, 막내 선원 동식은 선장과 대립하며 홍매를 구하는 주인공이 되어 있죠. 연극은 밀항자들을 수장하고 시신을 훼손한 죄책감에 해무 속에서 자멸하는 이야기였다면, 영화는 악당이 된 선장과 선원들에게서 동식이가 홍매를 구해내는 이야기가 된 거예요. ‘영화의 대중성’에 초점을 맞춘 변화인 것 같아요. 영화 해무와 연극 해무의 의미와 메시지의 차이라고 생각돼요” 배우 김윤석이 선장(철주)로 분한 영화<해무>(2014)는 150만 관객이 봤다.

- “연극 <해무>의 희곡 작가로 데뷔하고 8할을 성공한 성적표를 얻었군요” 김 작가는 해무 희곡집을 내려다봤다. 작가는 말보다는 희곡에 익숙해 몸을 앞으로 당기고 들었다.

“해무를 쓸 때 옥탑방에서 살았어요, 뉴스에서 해무에서 다루고 있는 태창호 사건을 듣게 됐어요. 밀항선에서 26명이 질식사한 사건이었는데, 그들이 죽음까지 좁은 창고에 갇혀 얼마나 두려웠고 살고 싶었겠어요. 희생자의 비극은 처참했죠. 그때 또 인상적이었던 건, 의도치 않은 죄를 짓게 된 선원들이 죽은 사람들을 수장하고 나서 쓴 소주를 아무 말 없이 마셨다는 증언이었어요. 그들의 죄의식을 그리고 싶었어요. ‘죄의식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그 이후의 삶을 어떻게 견디어 낼까’하는 물음에서 출발하게 된 작품이죠”

천안 단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다니던 작가는 대학 시절 연극반 활동하면서 연기, 연출을 경험하며 희곡과 연극을 이해하는 토양이 되었다. 희곡 쓰기를 제대로 배우고 싶어한 김 작가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전문사)를 졸업한 후 희곡작가의 길을 걸었다. 그녀가 존경하는 스승 극작가 박조열 선생을 만난 것도 그 시절이었고, <해무>의 초고를 쓴 것도 그 때였다. 졸업 후 연우무대 유인수 대표와 인연이 되어 안경모의 연출로 <해무>가 연우무대 30주년 기념공연으로 올려지게 된다.

“해무를 만드는 과정은 시간이 걸렸어요. 2001년에 그 사건을 알게 됐어요. 수업 시간에 초고(草稿)를 만들어갔는데 낭독 등 발표 과정에서 많이 고치면서 작품이 단단해진 것 같아요. 그리고 연우무대와 인연이 되어 작품을 보여드리게 됐는데, 그래서 연극 해무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죠. 작품을 발표하고 영화화 되는 데 또 7년이 걸렸죠. 어느새 제 대표작이 해무가 되었고요”

“영화에 원작의 요소들이 많이 살아있어요. 우선 주인공이나 주요 배역 이름과 핵심적인 사건도 동일하고요. 다만 연극 해무는 인간의 죄의식에 맞추었다면, 영화는 선악의 대결로 이끌어가요. 그게 연극과 영화의 근본적 차이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연극의 주인공은 강선장이었다면, 영화에서는 막내선원 동식이가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끌고 가죠” 이 작품을 김 작가는 오페라로 고쳐 쇼케이스로 공연을 했다.


- “작품을 다 본 것은 아닌데, 사실과 실화를 바탕으로 작품을 많이 쓰더군요” 그녀는 1시간을 넘기자 목이 말랐는지 식은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실제 사건이 더 극적으로 느껴질 때가 많아요. 실제로도 그렇고요. 자연스럽게 현실의 사건에서 모티브와 영감을 얻게 되고 그 사건들을 취재해 상상과 허구들을 배치해 이야기를 만들어나가게 돼요. 사실, 현실을 보면 희곡의 허구보다는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서 더 충격을 받을 때도 많고 희곡보다 더 극적(劇的)인 일들이 일어나는 것 같아요”

희곡 <해무> 이전은 국립극장 신작희곡 페스티벌에 당선된 <가족의 왈츠>(2004)와 이듬해 극단 작은 신화 우리 연극 만들기 작품 <십년 후>(2005), 서울연극제 ‘희곡아 솟아라!’<나, 여기 있어!>(2006) 로 작가를 알렸고, 연극 <해무>를 기점으로 더 활발하게 활동하는 희곡작가가 되었다. <가족왈츠>(2014)로 서울연극인 대상 극작상을 수상했고, 창작 산실 대본 공모 우수작으로 당선된 <하나코>(2015)는 한태숙 연출로 공연되면서 평가가 좋았다. <이혈(異血)>(2014), 가족 음악극 <이중섭의 편지>(2018), 최불암 선생과 함께한 <바람 불어 흔들릴 때>(2018)와 국립광주아시아전당이 5, 18 민주화운동 40주년 공연으로 제작된 창작스토리 콘텐츠 작품 <시간을 칠하는 사람>(윤시중 연출, 2020), 문삼화 연출 <정의의 사람들>(서울시극단, 2021) 등 한 해에 그녀의 작품 2~3편이 공연되고 있다.

| 사회 부조리와 비극적인 현상을 희곡으로 표현하는 작가

2020년과 올해는 경남도립극단의 창단작품으로 <토지Ⅰ,Ⅱ>(2020~2021 박장렬 연출)를 각색하고, 성공적 공연이 되면서 김민정 작가를 각인시켰다. 다작의 희곡작가에서 연극적인 대중성으로 무대를 읽어내는 작가로 인식되면서 작품은 연극 분야에서 선호하는 작가가 되었다. 작가의 각색은 무대의 결을 따라가며 재창작 서사를 견고하게 만들었다. 일본의 도쿄 나토리 씨어터에서는 영화 <해무>를 보고 작품을 의뢰해 <갈애(渴愛)>라는 작품이 만들어졌고, <짐승의 시간>(시라이 케이타 연출, 2019)을 일본에서 초연 공연했다.

“실제 사건이 극적으로 느껴질 때가 많죠. 실제 그렇고요. 사회성이 강한 작품을 쓰다 보니 현실에서 영감(靈感)을 얻게 돼요. 현실의 사건들을 토대로 상상과 허구들을 극에 배치해 이야기를 만들어나가요. 현실을 보면 허구보다 더 극적(劇的)인 일들이 종종 일어나니까요. 그래서 극 속의 사건들이 현실과 가깝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딸과 천문대 수업을 듣고 별을 보며 “사람과 인생을 별들과 연결시켜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까?” 싶어 쓰게 된 작품이 <아인슈타인의 별>이다.


-작가의 창작 과정은 스타일이 있는데, 플롯이나 이야기 구조는?

“큰 스케치 북에다 끄적이고 시작해요. 큰 산을 그리고 핵심적인 사건들을 배치하고 이야기를 만들어가죠. 주제와 핵심이 중요하고요. 반드시 전달해야 할 메시지가 작품으로 드러날 수 있도록 해요. 스케치북에 그린 산에 발단-위기-절정-결말의 흐름을 그리고 장면과 이야기를 배치해요. 작품을 준비하는 작업자들을 만나면서 보완하고 디테일을 만들어 희곡이 무대화될 수 있는 대본으로 만들어가는 편이죠”

- 작품 쓰기가 막힐 때는?

“작품과 비슷한 주제를 찾아 영화도 보고 소설도 읽고 산책도 해요. 글로 써낸 작품이 무대화 되는 과정이 작가로서 충족감을 주는 것 같아요. 창작 공간은 집이죠. 출퇴근 정해져 있는 건 아닌데 규칙적으로 쓰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아이들이 등교하면 책상에 앉는 편이에요”

- 희곡과 각색에서 작가의 작품 세계는?

“갑자기 코미디를 쓴다고는 안 할 것 같고요. 사회적인 비극에 시선이 가는 것 같아요. 비극적인 현실과 현상에 질문을 던지는 게 작가의 역할이고 의무인 것 같아요. 작품 <갈애>로 인연이 된 일본극단도 제 작품에서 사회적인 메시지를 좋아하셔서 연락을 받고 쓰게 됐어요. 앞으로도 사회 부조리와 비극적인 현상을 희곡으로 표현하는 작가로 남을 거 같아요”

- 희곡 쓰기가 어떤가. 문장과 음절 사이에 통증도 밀려오던데

“작가한테 이야기가 안 흘러갈 때가 있죠. 글을 쓰면서도 망하고 있는 게 느껴지는 것 같은데, 그럼에도 계속 원고를 붙들고 쓰다 보면 길이 보이고, 끝이 보이는 순간이 와요. 수정은 필수죠. 공연 연습 과정에서도 수정하고 극의 흐름을 보완해 담아내려고 합니다. 희곡은 공연으로 무대화 되는 언어가 중요하니까요”

올해는 창작 산실 연극 뮤지컬 분야 대본 공모에서 <509호실: 미궁의 설계자>가 최우수작으로 선정되었다. 오페라와 뮤지컬도 쓰고 싶어 현업 작가인데도 ‘뮤지컬, 오페라 창작아카데미’를 다녔다. 오페라 <새야새야>, <붉은 자화상>, <황허의 뱃사공>등을 썼고 뮤지컬로는 <눈부시게 빛나는 오늘>(2020), <뮤지컬 바이칼 로드>(2021) 등을 써오며 3권의 희곡집을 발간했고 5권의 단행본과 <하나코 이야기>를 청소년 소설로도 썼다. 작가는 초고를 끝내고 작품 토론을 거치고 수정하는 과정을 늘 거친다. 그 과정에서 연극 무대로 들어갈 수 있는 희곡의 언어로 다듬고, 작가의 손질을 거치면 희곡은 무대로 들어갈 수 있는 집이 된다.


- 작가 작품을 수정하고 훼손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작가도 있죠

“제 스타일은 완벽을 추구하는 스타일보다는 흙(이야기 구조)을 뭉쳐가면서 이야기 디테일을 만들어가는 것을 선호해요. 초고를 쓰고 나면 큰 산을 넘은 것 같죠. 연극 토지도 100페이지 정도를 써 놓고 갈아엎고 다시 쓰는 작업을 많이 했어요. 연출과 작업자들한테 이야기를 들으면서 무대화 되는 과정에서 글을 과감하게 덜어내고 다시 쓰니까 텍스트가 탄탄해지고 정교해져요. 그런 의미에서는 희곡 쓰기는 함께하는 작업이죠. 충분한 시간을 준다면 2년은 준비하고 구성해야 완성도가 높아지는데, 쉽지 않은 일이죠”

- 작가가 참여하면 불편할 수도 있을텐데

“가능하면 연습에 자주 참여하는 편입니다. 무대화 되는 연습 과정에서 연출과 배우들에 의해 작품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들어보고요. 수정하면서 희곡이 무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대다수 연출은 작가 참여를 선호하죠. 때로는 작품 안에서 연출과 작가의 희곡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서로의 재능을 더 발휘하기 위해서요. 긍정적 싸움이 되면 시너지가 생기죠. 작품을 바라보는 예술적인 감각들이 모이면 작품도 무대도 단단해집니다. 저는 당연히 작가한테 개방적인 연출을 선호하고요, 개방적인 작가가 되려고 합니다”

- 김 작가의 작품을 공연 과정에서 이야기 살점과 구조만 남기고 해체한 희곡이 된다면

“살점과 구조가 남아있고 작가의 핵심적인 메시지가 남아 있다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고 너무 많은 것이 바뀌어 버리면 속상하죠. 작업자로서 서로 존중하고 대화하는 과정은 필수인 것 같아요”

-작가한테 원작의 힘을 무대로 그려나가는 연출을 만나고 싶을텐데. 이런 점에서 작가한테 한태숙 연출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한태숙 선생님과 다시 연극을 하고 싶어요. 처음 인연은 국립극단 재창단 공연 <오이디푸스>의 각색으로의 만남이었어요. 선생님과의 첫 작업은 힘들고 버거우면서도 치열해요. 연습실에 많이 나오라고 하시는 연출이세요. 대본만들기에 연습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시죠. 열 개의 대사를 써간다면 한 두 개의 대사만 살아남을 정도로 언어의 압축을 중요하게 생각하세요. 그 과정이 많은 공부가 되었어요. 선생님의 연극을 대하시는 태도도 존경스럽고요. 개인의 역량을 최대한 무대로 집중시키고 끌어내기 위해 집요한 요구를 하세요. 본인의 작업에 누구보다 충실하신 모습에서 연극 정신과 무대를 대하는 태도를 배우게 되니 선생님을 존경할 수밖에 없죠”


- “어떤 연출과 작업을 하고 싶나?” 김 작가는 이 질문에 생각이 길어졌다.

“열정적으로 작품을 잘 만드는 집요한 연출과 만나고 싶습니다. 그래야 서로 발전하는 관계가 되니까요”

김 작가가 존경하는 작가로는 (故) 박조열 선생을 말했고 ‘오장군의 발톱’ 같은 작품을 써보고 싶다고 말한다.
“박조열 선생님의 작품 <오장군의 발톱>을 읽으면서 초연 후 많은 세월이 지났는데도 촌스럽다는 생각이 안 들었어요. 작가로 그 부분이 놀라웠어요. 시간이 지나도 현재를 잇고 말하고 있는 작품이 명작이죠. 작품에 작가 냄새가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유효한 작품을 쓰고 싶고요”

이메일로 보내온 작가의 작품 수록을 읽었다. 각색한 작품은 <오이디푸스>(2011, 국립극단 재창단, 한태숙 연출), <인형의 집>(2011, 연출 최용훈), <안티고네>(국립극단 레파토리, 2013, 한태숙 연출), <도서관의 생쥐>(2013), <오방선생>(2014, 광주시립극단, 심재찬 연출>, <정의의 사람들>(2021, 서울시극단, 문삼화 연출)과 경남도립극단의 창단공연 <토지Ⅰ,토지Ⅱ> 정도 되어 보였다. <토지Ⅰ>은 경남도립극단 창단공연 작품으로 박경리 대하소설을 박장렬 연출이 지난해 연극으로 무대화해 초연으로 <토지Ⅰ>을 선보이면서 도립극단의 정체성과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다. 예술의 전당(토월극장)과 전국을 부분적으로 순회공연 하면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 경남도립극단 창단공연 연극 <토지Ⅰ>에서 작가로 “시련에서도 땅을 지키며 살려고 했던 인간의 생명력과 정신을 말하고 싶었어요”

- 등장인물과 시공간의 변화가 많은 박경리 선생의 소설 <토지>를 연극으로 각색한다는 게?

“원작이 워낙 방대하다 보니 읽는 것 자체가 힘들었어요. 소설, 만화책도 읽고 드라마도 참고해 연극 텍스트로 각색해 나갔다. 욕망을 가진 등장인물들이 연극으로 어떻게 살아가게 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어요. 서희 일가가 땅을 빼앗기고 몰락하면서 간도(間島)로 쫓겨간다는 이야기인데, 연극<토지Ⅰ>의 주제를 ‘인간의 욕망’으로 주제를 잡았다. 평사리 땅을 차지하기 위한 두 인물 갈등 중 최치수 씨(種)를 받아 신분 상승을 하고 싶어 하는 귀녀와 평사리 땅을 차지하려는 조준구의 욕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많았어요. 연극 토지는 관객 반응도 정말 좋았어요”

원주 박경리 선생의 문학관과 기념관을 다녀온 적이 있다. 박경리 문학공원 내 토지 4, 5부를 집필하신 가옥에서는 선생의 곧은 성품을 읽을 수 있었고, ‘문학의 집’에서는 원고지 한 장, 한 장 고행의 글쓰기 여행을 견딘 고름들이 터져 나왔다. 그 숨결은 문학관으로 살아 숨 쉬는 공기가 되고 있었다. 망자 동상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이 선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 소설 <토지(土地)>는 등장인물만 600여 명에 달하고 1897년 구한말 평사리(최참판댁)을 배경으로 시작해 시공간을 넘으며 1945년 최참판댁에서 할머니가 된 서희가 해방 소식을 들으며 끝난다. (토지 5부작(20권)


- 연극 <토지> 서사를 희곡으로 써내고 박장렬 연출로 무대화 된 게 어땠는지?

“연출과는 믿음이 있었어요. 여러 작품을 함께 한 경험도 있었고요. 경남도립극단이 진주에 있다보니 자주 갈 수 없는 상황이어서, 서울에서 미팅을 하고, 메일로도 자료와 의견을 많이 주고 받으며 작업을 했어요. 연습이 시작되면서는 연출과 배우들이 연습하고 무대화하는 과정에서 수정본을 보내왔고, 또 연습실에서 수정된 부분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며 작품을 다듬어 나가면서 처음에 110페이지가 되었던 초고가 70페이지 분량으로 압축이 됐어요. 연출의 의도로 긴 대사 대신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장면들도 있었고, 무대로 형상화되는 연습에서 과감하게 덜어내기도 하면서 희곡 <토지Ⅰ>과 <토지Ⅱ>가 만들어졌죠”

- 토지는 방대한 대하소설이다. 소설의 시공간을 연극으로 각색해 시각화 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을텐데

“토지의 방대한 서사의 변화를 무대에서 보여주어야 하는데, 그것을 발출해 내는 것이 핵심이고 공을 들여야 하는 부분이었다. 박경리 선생님의 강연을 유튜브로 듣고 책을 읽으며 원작의 핵심이 뭔지 파악하는 게 가장 처음 해야 할 일이었어요. <토지>라는 제목처럼 땅에 어울려 살아가는 농부들의 생명력이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당연히 희곡에서도 이 생명력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전염병이 돌아 사람이 죽어나가고, 일본의 침략이라는 시련에서도 우리 땅을 지키며 살려고 했던 생명력과 정신을 말하고 싶었죠”

- 발출(發出)해 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등장인물이 많고 서사가 긴 소설을 희곡화 하려면 덜어내고 압축하는 과정이 필요했어요. 등장인물을 줄이고 서사에도 변화를 주어야 했어요. 소설 속 600여명의 주인공 중에서 연극에 등장하는 인물은 서른 명 정도이고, 서른 세 명의 배우가 이들을 다 표현해야 하니까요. 특히 <토지Ⅱ>에서는 세대가 바뀌어 수많은 인물이 등장해요. 소설 속에서는 그런 많은 인물들의 서사가 다 나와있지만 시간상으로 연극 속에서 그러기는 힘들어요. 결국 덜어내야 합니다. <토지Ⅰ> 같은 경우는 구천이가 별당 아씨를 데리고 도망가는 상황을 보여줄 것인가, 전사로 넘길 것인지 고민을 했어요. 마을에 전염병이 돌고 누가 죽는다든가, 조준구가 돌아와서부터 최참판댁을 차지하는 핵심적인 사건 위주로 진행을 하게 배치하고, 원작의 훌륭한 문장을 대사화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요”

| 우리나라는 이야기가 될 만한 비극적인 이야기가 많은 것 같다. 현실은 지독히도 아픈데 희곡은 “희망이 있어”라고 섣부른 결론을 낼 수도 없다.

- 희곡 쓰기에서 중요한 것은?

“희곡이라는 장르를 잘 아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연극적인 경험이 많으면 좋다고 생각해요. 보는 것이든 해보는 것이든. 연극을 이론적으로 이해하고 희곡을 쓰는 것보다는 충분한 경험을 하고 이론을 이해하면 대본(희곡)을 쓰거나 연극이라는 무대 특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죠”


- 작가로 보이는 현실은 어떤가. 연극보다 더 극적인 일들이 현실에서 일어나는 것 같다고 했는데.

“사회가 점점 양극화되는 것은 뭔가 폭탄 같은 것을 안고 살아가는 것 같아요. 위험을 계속 쌓아 놓으면 언젠가 터져버리지 않을까 싶어요. 빈부의 문제가 교육의 불평등으로 심화되는 건 정말 걱정이 돼요. 학력 위주의 사회인 우리나라에서 그건 곧 사회의 불평등으로 번지게 되고... 폭탄을 자꾸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사회적 분노가 점화될수록 작가로는 좋은 것 아닌가. 한국 사회에 쓸 수 있는 이야기가 많으면 작가는 건져 올리면 되니까요.

“그럴 수도 있겠죠. (웃음) 뉴스에서 신기한 일들이 일어나면 “어, 이거 글감이야”하고 생각하지도 하지만. 이제는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아수라 같기도 하고 사회적 문제와 비극들을 글감으로 잘 녹여낼까 생각보다는 현실에서 불안해 하며 잘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게 돼요. 이야기가 될 만한 비극적인 사건이 정말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현실은 지독히도 아픈데 희곡은 ‘희망이 있어’라고 섣부른 결론을 낼 수도 없죠”

- 20년 뒤 김민정 작가는?

“70대네요. 써 놓은 작품의 수가 지금보다 더 많아졌기를... 그 작품들이 다양하기를 바래요. 경치와 풍광이 좋은 곳에서 가족들과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연극을 하면서 많은 보상을 받은 것 같아요. 물질적 보상이 아니라 함께하는 동료, 또 객석에 앉아 자기 작품이 공연되어 올라가는 것을 보고 느껴지는 작가의 희열 등은 무엇과도 바꾸기가 힘들죠”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을 촬영하자고 말했다. 희곡의 언어를 만들고 쓰는 작가는 카메라 바라보기에 서툴렀다. 연극<해무>로 본격적인 전업 희곡 작가의 길을 걷고 있는 김 작가의 다작의 내공은 “동료 창작자들과 개방적인 글쓰기 태도”에 있는 것 같았고, 연출들은 작가의 성실함에 믿음을 가지는 것 같다. 국내 대표적인 희곡 공모에도 작가의 작품이 생산적으로 올려지고 연극, 오페라, 뮤지컬 분야에서도 그녀의 이야기가 무대화 되면서 작가는 연극 <해무>의 시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남편인 문창완 배우를 위해 1인극을 써줄 생각은 없는지 묻자 “1인극은 재미없죠. 제 희곡 캐릭터에 본인 이름을 써 놓으라고 농담으로 그러는데, 좋은 작품을 쓰고 함께하고 싶은 마음은 늘 가지고 있죠”라고 한다. 극중 인물의 내면을 인간의 온기가 흐를 수 있게 하는 작가다.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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