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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윤상의 세상만사] 우리에게 ‘명문’은 있는가


‘남의 약점을 이용하지 말라. 비굴하지 않은 사람이 돼라. 약자를 깔보지 말라. 항상 상대방을 배려하라. 잘난 체하지 말라. 다만, 공식적인 일에는 용기 있게 나서라’

‘이튼 칼리지’라는 영국의 한 고등학교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교훈이다. 이 학교는 1440년에 세워지고 지금까지 19명의 수상을 배출한 영국의 명문 고등학교다.

이 학교는 자신만 아는 엘리트는 원하지 않는다. 교과목 중 제일 중요시하는 과목은 체육이라고 한다. 하루에 한 번은 함께 축구를 해야 하고 공휴일에는 두 번 운동해야 한다. 공부보다 체육을 통해 ‘함께 하는 정신’을 강조한다. 한겨울이면 진흙탕에서 레슬링을 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페어플레이 정신’을 기르기 위해서다.

어느 해 졸업식에서 교장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학교는 자신만 출세하거나 자신만이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원하지 않습니다. 주변을 위하고 사회나 나라가 어려울 때 제일 먼저 달려가 선두에 설 줄 아는 사람을 원합니다”

실제 이 학교 학생들은 1·2차 세계 대전에서 무려 2000명이나 전사했다. 전시 중에 어떤 때는 전교생의 70%나 참전해 전사하기도 했다.

이렇게 공부만을 강조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학교 졸업생 대부분이 대학에 진학하고, 그 중 3분의 1은 옥스포드나 케임브리지에 진학한다. 자긍심과 국가관, 특히 사명감을 강조하는 것이 학생들에게 엄청난 학습 유발 효과를 가져다준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이튼 칼리지가 ‘명문’으로 인정받는 이유다.

지난 11월 18일에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이 수능은 수험생의 인생을 결정할 수도 있는 중요한 연례 행사로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 온 가족, 온 사회가 이 시험에 매달린다.

수능이 끝났으니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입시 전쟁이다.

각 고등학교는 소위 ‘명문대학교’, 특히 ‘서울대학교’에 한 명이라도 더 보내기 위해 머리를 쥐어짤 것이다. 그리고 내년 초에 언론은 어느 고등학교에서 서울대학교에 몇 명 합격시켰는지에 대해 순위를 매겨가며 대대적으로 보도할 것이다. 그 성적에 따라 2022년도 ‘명문’ 고등학교가 자연스럽게 정해질 것이다. 그렇다. 우리의 ‘명문’은 이렇게 정해졌다.

그런데, 이상하다. 현재 딱히 떠오르는 ‘명문’ 고등학교가 없다. 정부의 입시정책에 따라 어느 때는 과학고가, 어느 때는 외고가, 어느 때는 자사고가, 또 어느 때는 영재고가 많은 학생을 서울대학교에 보냈지만, 어느 고등학교가 ‘명문’인지 딱히 뇌리에 남지 않는다.

뿌리 깊은 대학 서열화가 낳은 병폐가 하나의 원인이겠지만, 입시만 있고 입시의 이유나 철학이 없는 것이 더 큰 원인이 아닌가 생각된다.

현재와 같은 방식의 교육과 입시로는 결국 ‘자신만 출세하거나 자신만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을 양산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키워진 사람들은 온갖 기득권을 다 누리지만, 국가나 사회가 위기에 봉착했을 때 먼저 도망가거나 외면할 가능성 또한 높다.

이제 전반적인 교육 재설계가 필요하다. 어쩌면 우리의 미래를 위해 당면한 시급한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이를 통해 입시 성적이 아닌 교육 가치관으로 ‘명문’이 탄생하는 날을 기대해본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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