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4년 앞두고” 한국 첫 경양식당 결국 문닫는다

1925년 개업한 ‘서울역 그릴’ 코로나19 불황 속 30일 폐업
이상 소설 ‘날개’에도 등장…“일제강점기·한국전쟁도 버텼는데”

서울역 그릴 입구. 연합뉴스

1925년 개업한 국내 최초 경양식 식당인 ‘서울역 그릴’이 코로나19로 인한 불황을 버티지 못하고 30일을 마지막으로 폐업한다.

‘서울역 그릴’은 1925년 10월 15일 문을 열어 국내에 처음으로 돈가스와 함박스테이크를 선보인 음식점이다.

식당 측은 이날 가게 입구 앞에 “11월 30일 영업이 종료됩니다. 그동안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영업종료 안내문과 함께 마지막 날 가능한 메뉴를 적어놨다. 폐업 준비로 인해 이날은 돈가스와 생선가스, 오므라이스, 해물볶음밥만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30일자로 영업이 종료됨을 알리는 공지문. 연합뉴스

일제강점기에 문을 연 ‘서울역 그릴’은 96년간 한국전쟁과 외환위기 등 굴곡 많았던 한국 현대사를 함께 걸어온 식당이기도 하다.

개업 당시 한 번에 200명의 인원이 식사할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컸고 요리사도 40명이 있었던 ‘서울역 그릴’은 고급 레스토랑으로서 선망의 장소였다. 정찬 가격은 3원20전으로 당시 설렁탕 가격(15전)의 8배에 달했고 이곳을 찾는 이들은 당대 재력을 과시하거나 유행에 민감한 사람들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역 그릴의 돈가스 사진. 망고플레이트 홈페이지 캡처

소설가 이상은 소설 ‘날개’에서 ‘나는 메뉴에 적힌 몇 가지 안 되는 음식 이름을 치읽고 내리읽고 여러 번 읽었다’고 식당을 묘사했다.

오랜 세월만큼 식당에도 여러 변화가 있었다. 처음 옛 서울역사 2층에서 문을 열었지만 철도청의 방만 운영으로 1983년 프라자 호텔로 경영권이 넘어가는 등 사업자가 바뀌고, KTX 서울역사 개장으로 위치도 옮겨왔다.

이런 시절을 모두 견뎌낸 ‘서울역 그릴’이 결국 코로나19 불황은 버티지 못한 것 아니냐는 안타까운 반응이 나왔다. 누리꾼들은 “100년을 4년 앞두고 문을 닫는다니 아쉽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넘긴다” “처음으로 스테이크를 먹은 장소였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트위터 등 SNS에서는 폐업 전 마지막으로 다녀왔다는 방문 인증글도 여럿 보인다.

‘서울역 그릴’이 이날 폐업 후 5개월간 리모델링을 거쳐 스테이크를 전문으로 파는 고급식당으로 재개장할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역 그릴’이라는 이름이 새로운 식당의 이름으로 쓰일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김미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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