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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원장 “북한에겐 미국이 믿을 수 없는 나라”…미 싱크탱크와 종전선언 설전


“들으셨던 것처럼, 미국에선 (종전선언을) 적극적으로 해줄 것 같은 생각이 많이 안 든다. 예상했던 바다.”

홍현익 국립외교원장은 30일(현지시간) 미 싱크탱크 우드로윌슨센터가 ‘북미 관계 조망’을 주제로 개최한 포럼에 참석한 뒤 특파원과 만난 자리에서 서운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홍 원장은 고유환 통일연구원장, 김기정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과 함께 이날 포럼에 참석해 문재인정부의 종전선언 추진 당위성을 역설했다. 대북 정책의 핵심 부서인 외교부와 통일부, 국가정보원 산하 국책연구기관 수장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어서 미국에서도 한반도 문제 전문가 40명 가까이가 참석하며 높은 관심을 보였다.

이 자리에서 홍 원장 등은 북핵 문제 해결 교착에 대한 미국 책임론을 제기하며 조 바이든 행정부가 종전선언 진척을 위해 적극 나서줄 것을 호소했다. 그러나 토론자로 나선 미국 싱크탱크 관계자들은 종전선언의 실효성, 북한에 대한 신뢰성 의문 등을 제기했다. 양측 간 설전은 종전선언을 둘러싼 한·미 간 인식 차를 그대로 드러냈다는 평가다.

홍 원장은 북핵 문제가 교착 상태에 빠진 원인을 설명하며 “북한은 (6·12 싱가포르 공동합의에 대해) 성의를 보였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사실상 아무것도 안 했다”며 “북한 입장에서 미국은 정상 간 합의도 뒤집는 믿을 수 없는 나라”라고 말했다. 또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속았다, 기만당했다는 생각”이라며 “미국 대통령도 약속을 안 지키는데 행정부 실무진 회담에서 합의한들 무슨 효력이 있겠느냐고 여긴다. 신뢰 회복이 없으면 (북한은) 대화에 안 나간다”고 말했다.

홍 원장은 대북 제재에 대해서도 “(궁극적) 목적은 북한이 비핵화로 나가게 하는 것인데 지금은 북한을 벌주는 것뿐”이라며 “올바른 기능을 상실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제재가 북한의 핵 개발 명분이 되고 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스냅백(약속 불이행 시 원상회복을 전제로 한 제재 완화·해제) 제도를 통해 일부 제재를 완화해준다면 북미 정상 간 협상이 시작되지 않을까 한다”고 제안했다.

또 톱-다운 방식 협의를 제안하며 “카멀라 해리스 미 부통령과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정도의 회담이 안 되면 큰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언급했다.

홍 원장은 “북의 인내심은 내년 베이징 올림픽과 한국 대선까지로 본다. 종전선언이 안 되고 이 상태가 지속되면 내년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 행정부에 타격을 줄 만한 도발이 가능하다”며 “내년 4∼10월은 굉장히 위험한 시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고유환 원장도 트럼프 행정부 시절 북미 간 신뢰조성 실패 등을 교착 원인으로 꼽았다. 고 원장은 “북한으로서는 핵을 버리고 경제 발전을 하겠다고 말하며 선(先) 행동을 취했다. 미국에도 상응하는 대북 제재 중단, 적대시 정책 철회를 요구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며 “선 행동에 대한 선순환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고 원장은 그러면서 “종전선언 제안이 상황관리의 측면도 있다고 본다”며 “핵실험 도발로 파국으로 끌고 가지 못하게 한·미가 대화 재개 촉진요인으로서 종전선언을 제안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정 원장은 “임기가 얼마 안 남은 정부의 쇼라는 비판도 있지만, 전략 관점에선 한반도에 지속해서 작동 가능한 메커니즘을 만드는 것은 미래세대를 위한 전략이기에 중요하다”며 “(남과 북의) 평화로운 공존이 한반도에서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발언이 끝나자 미국 싱크탱크 관계자들의 반박이 시작됐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북한은) 미국의 적대 정책을 이야기하는데, 누가 테러를 했고, 누가 유엔안보리 결의를 어겼느냐. 다 북의 잘못”이라며 “북한의 적대적 정책이 (교착) 현상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싱가포르 합의에 대해서도 “북한이 이후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안 하고 있다고 했지만, 미사일 발사는 다 유엔안보리 결의안 위반”이라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안 했다고 칭찬하는 건, 오늘 살인을 안 했다고 강도질하는 걸 잘했다고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또 “종전선언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위한 추진력을 제공할 것이라고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북한은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유럽에서 병력을 줄인 것처럼 (한반도에서) 미군 병력을 빼라고 요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민주주의수호재단(FDD) 데이비드 맥스웰 선임연구원도 “북한이 한국에 대해 적대적 정책을 철폐하려는 의지를 못 봤다. 북한은 그동안 외교나 무력을 통해 여러 가지로 협박하고, 한반도를 점령하려는 모습을 보여 왔다”고 지적했다. 관계 교착의 책임이 북한에 있다는 것이다.

맥스웰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적대시 정책 철회 등을 대화 조건으로 내걸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김정은 위원장으로선 한·미 동맹 자체가 위협이다. 주한미군 주둔, 핵우산, 확장억지력 다 위협”이라며 “적대시 정책 철회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줘야 김 위원장이 만족할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고 신중론을 제기했다.

홍 원장은 토론회 마지막 발언에서 “큰 희망이 생기는 것 같지 않다. 지금은 김정은 위원장을 미하일 고르바초프로 만들어야 한다”며 “김 위원장이 고르바초프가 되려고 나섰는데 우리가 오히려 스탈린이 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미국을 믿지 못하고 핵 만이 살길이라고 여기게 만든 게 아쉽다”고 했다.

그는 이어진 특파원 간담회에선 “미국이 종전선언을 망설이는 건 북핵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 평화협정을 생각하면 종전선언은 첫걸음인데, 토를 다는 것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며 “북한이 선뜻 받을지도 모르는데 자꾸 시간을 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와 관련해선 “우리도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을 개발하는데 그에 상응하는 사거리 미사일을 시험 발사할 땐 크게 문제 삼지 않는 게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또 “한·미연합훈련을 해도 1부는 방어, 2부 반격인데 북한 입장에서는 2부 훈련이 북한을 점령하는 내용이 있어 굉장히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본다”며 “2부 훈련은 생략해야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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