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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편지] 병에 지쳐 떠난 아빠, 모두 제 탓 같아요


2020년 9월 30일 오후 3시42분은 아빠가 편한 세상으로 가고 싶다고 매정하게 떠난 날이에요. 아빠는 루게릭병이었어요.

돌아가시기 전날 아빠가 배앓이를 하셨는데, 약도 안 먹고 병원도 안 가려고 해서 저랑 엄마는 반포기 상태였어요. 저녁에 목욕을 시키고 로션을 발라드렸는데 평소와 달리 싫다는 말없이 가만히 계셨죠. 엄마는 “그렇게 가려고 미리 준비했나 보다”, 그러셨어요.

돌아가신 날 점심, 엄마가 차려놓고 가신 된장국이랑 누룽지 한두 숟갈 드시길래 더 드시라 했어요. 아빠는 그냥 버리라고 하셨죠. 그러고는 아빠가 좋아하는 붕어싸만코를 사오라고 하셨어요. 저는 안 된다고, 아이스크림은 배 아플 때 먹는 게 아니라고 하고 방에 들어가서 외출 준비를 했어요. 제가 집에서 나가는데 아빠가 눈길을 주는 게 느껴졌어요. 나가지 말걸. 왠지 이상해서 아파트 단지를 한 번 더 봤죠. 그냥 그때 안 나갔어야 했는데….

오후 4시쯤 동생 전화가 왔는데 가슴이 내려앉는 것 같았어요. 받기도 전에 느낌이 불안했어요. 역시나 동생은 울음소리와 함께 아빠가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어요. 택시 타고 집에 뛰어 들어갔는데 집 앞 화단 쪽에 하얀 옷을 입은 경찰들이 보였어요. 그 앞에 천으로 덮인 아빠가 있었어요. 경찰들이 아빠를 못 보게 하더라고요.

집에 들어가자마자 아빠의 노트가 생각났어요. 찾아보니 아빠의 유서가 있더라고요. “건강해라 행복해라.” 장례식장에서 경찰들 질문을 2시간 가까이 받았어요. 지쳐서 눈물도 나오지 않더라고요. 나중에 남자친구를 보고서야 홍수처럼 눈물이 나왔어요.

아빠는 병환을 치료하려고 서울 병원만 고집하셨어요. 아빠가 없어도 잘 살 수 있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아빠가 너무 밉고 화나고 괘씸하다가도 불쌍하면서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이제는 못 해준 것만 생각나요. 아빠는 제가 남자친구가 있는지도 모르고 가셨어요. 9년을 사귀고 내년에 결혼도 생각하고 있는데 마음이 아파요. 그래서 아빠에게 남자친구를 소개하는 편지를 쓰고 불태우면서 꿈에 나와서 딸한테 답장 좀 해 달라고 하기도 했는데 허황된 꿈이었죠.

서울까지 찾아가 상담도 몇 번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아빠의 죽음이 제 탓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빠가 돌아가신 날 엄마도 “이상한 느낌을 받았으면 안 나갔어야지, 왜 나갔냐”고 했어요. 진짜 마음은 아니었겠지만요. 엄마랑은 사이가 좋아요. 주말마다 등산도 가고 최대한 엄마랑 시간을 보내려고 해요. 근데 저 한마디는 아직 잊을 수가 없어요. 그냥 제 탓을 하는 게 편해요.

제가 곁에 있었다면 그날 아빠가 그렇게 돌아가시지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어요. 여기저기 고민을 말하고 다니는 성격이 아니라 친구들이 위로를 건네면 괜찮다고 하는데 사실 모르겠어요. 그냥 아빠를 한 번 만나서 좋아하는 붕어싸만코 실컷 먹으면서 이야기하고 싶어요. 거의 1년 만에 아빠 이야기하면서 우니까 마음이 묘하네요. 긴 편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중한 온기님에게

안녕하세요 온기우체부입니다. 온기님은 편지에 아버지를 잃으신 날의 기억, 그 후의 일들을 적어 보내주셨어요. 저는 빈 편지지를 두고 제가 무슨 말을 해드릴 수 있을까,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혹여 내 편지가 상처가 되면 어떡하나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용기를 내어 펜을 든 건, 떠나가신 할아버지 생각이 떠올라서입니다. 할아버지를 떠나보낸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시간이 이렇게 흘러도 슬픔과 그리움은 지워지지 않더라고요.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몇 개월 전 폐암 판정을 받으셨어요. 처음 소식을 듣고 머리가 띵했던 것 같아요. 암이라는 병을 드라마나 영화로 접한 적은 많았지만 우리 가족이 겪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에요.

할아버지댁에 가면 할아버지께서 항상 환히 맞아주셨던 기억이 나요. 할아버지와 동네 뒷산 약수터에 오르기도 했고, 할아버지 오토바이 뒤에 타고 함께 폭포를 보러 간 적도 있어요. 어린 나이였지만 참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할아버지를 이젠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게 참 당혹스럽고 실감이 나지 않았어요.

할아버지는 폐암 판정을 받으신 후에도 자주 담배를 피우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온기님처럼 할아버지가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었어요. 할아버지 오토바이 옆에 버려진 담배꽁초를 보면 답답했지만 아무 말도 못 했지요. 할아버지는 병세가 나빠져서 병원에 입원하시고는 얼마 안 돼서 세상을 떠나셨어요.

그렇게 할아버지를 보내드린 후 한참을 많은 후회로 지냈어요. 온기님처럼요. 할아버지를 자주 찾아뵙지 못한 것도, 사랑한다고 자주 말하지 못한 것도, 함께 긴 여행을 떠나보지 못한 것도 너무나 죄송스러웠어요.

하지만 이제는 할아버지를 사랑했고 여전히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슬프고 그리운 감정들이 찾아온다는 걸 알아요. 온기님은 흘린 눈물만큼, 앞으로 더 흘리게 될 눈물만큼, 아버지를 깊이 사랑했던 거예요. 그리고 그보다 더 아버지께 많은 사랑을 받으셨을 겁니다.

저는 할아버지와 함께했던 추억을 더 많이 떠올리려고 해요. 달려오는 차를 보지 못하고 길을 건너려던 제 팔을 다급히 잡아 당시기던 할아버지를 가장 잊을 수 없어요. 늘 가냘프다고 생각했던 그 손에서 그런 힘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악력에 팔이 어찌나 얼얼했던지, 그 힘을 여전히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그 기억으로 할아버지가 나를 얼마나 아껴주셨는지, 사랑해주셨는지 떠올립니다.

온기님도 이런 순간을 더 많이 떠올려보면 어떨까요? 아버지와 함께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누고, 밥을 먹고, 웃음 짓던 순간들 말이에요. 그리고 아버지를 생각할 때면 느껴지는 감정들이 당연한 마음이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그렇게 아끼고 사랑했는데 그런 사람을 잃는다는 것이 괜찮을 리 없잖아요. 편지를 쓰셨던 그날처럼 언제든 아버지 생각에 눈물이 나면 마음껏 우셔도 괜찮아요. 그저 마음껏 아파하고 그리워하시되, 오래 아프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유서에 쓰신 것처럼 아버지께서는 온기님이 늘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라실 테니까요.

온기님에게 또 해드리고 싶은 말은 너무 자책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온기님이 보내주신 편지를 읽으면서 그동안 얼마나 힘드셨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신 그날이 너무 아프겠다, 너무나 큰 상처로 남으셨겠다는 생각에 제 마음이 정말 아팠어요.

그동안 많은 날을 아버지께 죄송스럽고 또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보내셨을 거예요. 아버지가 곁에 계셨다면 아파하는 온기님을 보며 “네 잘못이 아니다. 괜찮다” 하시며 안아주고 싶으셨을 겁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다 담기엔 부족할 테지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지 않으셨을까요. 하얀색 편지지를 지금 읽어주세요.


이 편지가 온기님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온기님이 아버지와 행복했던 추억들 잊지 않고 살아가신다면 아버지께서는 봄의 벚꽃으로, 여름의 푸른 잎으로, 가을의 단풍으로, 겨울의 함박눈으로 온기님 곁에 함께하실 거예요. 그러니 부디 오래 아프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이 편지와 함께 보내는 사진은 제가 온기님에게 답장을 쓰던 날의 하늘입니다. 아무래도 온기님 아버지께서 “우리 딸 웃게 해달라”고 비가 잦던 요즘 보기 드물게 이쁜 하늘을 보여주신 것 같아요. 앞으로도 불현듯 찾아오는 후회에, 그리움에 슬픈 날이 오거든, 이 하늘을 보면서 조금이나마 덜 아프시길 바랍니다.


온기님이 편지를 읽으시는 날의 하늘도 오늘처럼 맑고 예쁘기만 했으면 좋겠네요. 저는 앞으로 온기님이 언제나 행복하시길, 안온한 내일을 맞으시길 기도할게요. 그렇게 온기님의 하루들이 모여 하나의 오로라처럼 찬란하게 반짝이길 바랍니다.

2021년 11월 30일
온기님의 인생을 응원하는 온기우체부 드림

[온기편지]는 저마다의 고민을 손으로 꾹꾹 눌러 쓴 세상 사람들의 편지와 온기우체부들의 정성 가득한 답장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일상의 아픔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크지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있다면, 온기우편함으로 고민을 담아 보내주세요. 온기우체부들이 서울 곳곳에 설치된 온기우편함과 온라인 우편함(https://ongibox.co.kr/online_letter)으로 편지를 받아 당신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따뜻한 위로가 담긴 답장을 건넬 거에요. 독자 여러분들도 댓글로 당신의 온기를 나눠주세요.

※소개된 편지는 작성자분의 공개 동의를 받았습니다.


제공=온기우편함, 정리=김용현 기자 fa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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