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돈이 샌다… ‘밀실 심사’로 슬쩍 추가한 사업 76개

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2022년도 예산안에 대한 수정안이 가결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올해도 국회 예산 심의과정에서 정부 예산안에 없던 국회의원들의 ‘쪽지예산’이 대거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내년도 예산안에는 정부 원안에는 없는 사업 76개가 새로 포함돼 있다. 국회는 예산편성권이 없어 정부의 예산안을 증액하거나 감액하는데, 예산 심의 과정에서 의원들이 지역구 예산을 끼워 넣은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주로 토건 사업에 집중되는 이런 선심성 예산은 소위 ‘실세’ 의원들이 지역구를 챙기기 위해 비공개 회의인 ‘소(小)소위’에서 증액한다.

나라살림연구소가 5일 분석한 내년도 예산안 수정안을 보면, 태릉-구리 광역도로 건설에는 38억원이 새로 편성됐다. 이는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지역구 사업이다. 부전-마산 광역철도 30억원, 태화강-송정 광역철도 21억원 역시 정부 원안에는 없던 사업이다. 부전-마산선은 김도읍 국민의힘 정책위의장 지역에, 태화강-송정선은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 지역에 해당한다.

김영진 민주당 사무총장 지역구인 경기 수원병에는 신분당선 연장(광교-호매실)으로 정부 원안 130억원에서 20억원이 증액됐다. 수원 팔달경찰서 신축에 드는 예산도 85억3600만원에서 14억6400만원 증액해 100억원이 됐다. 박완주 정책위의장은 KTX 천안아산역 지하에 재난 대피용인 구난역 설치 예산을 확보했다. 평택-오송 구간 선로 예산 1100억원 중 일부가 여기에 쓰인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 지역구에는 울산 석유화학단지 통합파이프랙 구축에 17억원, 울산의료원 설립에 10억원 등이 국회 심의 과정에서 새로 편성됐다. 권성동 사무총장 지역구인 강릉-제진 철도 건설에는 100억원이 증액됐고, 강릉 지식산업센터 건립을 위한 예산은 10억원이 새로 생겼다. 김도읍 정책위의장 지역구인 부산 암모니아 친환경 에너지 규제자유특구에는 기존 예산 669억원에 더해 99억9500만원이 추가로 증액됐다.

이밖에도 의원 외교활동 목적으로 책정된 예산이 기존 79억원에서 16억원 증액되기도 했다. 전직 국회의원 모임인 헌정회에 배정된 예산은 기존 60억원에서 8000만원이 늘었다.

증액된 사업 중에는 국도, 철도 건설 등에 일괄적으로 100억원이 늘어난 사업도 7개나 있었다. 예산 심의 과정에서 늘어난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총 4000억원이다. 나라살림연구소 이상민 수석연구위원은 “국회에서 증액된 다수의 철도와 도로 건설 사업은 사업 규모가 각각 다른데도 국회 증액 규모가 100억원으로 같다는 점에서 경제적 필요에 의한 증액이라기보다는 정치적으로 분배받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위원은 “보통 소소위라고 불리는 ‘비공개 밀실 협의체’에서 대부분의 예산 삭감과 사실상 모든 예산 증액이 다루어진다”며 “비공개 회의더라도 속기록 작성은 즉시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매년 반복되는 여야 예산담합, 근절책은 없나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지역구 예산 확보에 열을 올리는 가장 큰 이유는 ‘표’다. 지역구 예산을 얼마나 가져왔는지가 정치 생명을 가르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매년 국회 예산 심의 때면 어김없이 지역구 예산 끼워넣기 논란이 벌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개중에서도 특정 예산 증·감액을 임의로 결정하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小)소위’가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예산 심의 과정의 투명성이 확보돼야만 이러한 폐단이 사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내년 예산 역시 지역구 의원들의 의중이 상당 부분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정된 재원에 실세 의원들의 민원사업이 들어가면 그만큼 다른 필요불급한 예산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5일 나라살림연구소에 따르면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 예산안 중 500억원 이상 감액한 사업은 모두 17개다. 코로나19 등 국가 비상사태 발생 시 쓰기 위해 쟁여두는 예비비 감액 규모가 1조1000억원으로 가장 컸다. 국고채 이자로 나가는 예산 역시 7603억원이 감액됐다. 국민들의 전세자금 등 융자에 쓰이는 예산은 3700억원씩이나 깎여나갔다. 이 금액의 일부를 지역구 예산 확보에 활용한 것이다.

불필요한 예산이라면 심의를 통해 줄이는 게 타당하다. 코로나19 대응 등 더 필요한 분야 예산 증액에 활용하기 위해 한정된 자원을 배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필요성이 불분명한 지역 예산까지 패키지로 들어간다는 점은 문제다. 특히 회의록조차 남지 않는 소소위에서 결정된 예산은 어떤 명분으로 편성된 것인지조차 알 수가 없다. 지역구 예산 증·감을 다루는 소소위는 여야 각 교섭단체에서 1인씩 참여해 비공개 회의 후 결론을 내놓는다.

전문가들이 소소위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매년 반복적으로 지적되는 쪽지예산 구태가 사라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소소위는 법적 근거가 없다. 국회법은 예결위 전체회의나 산하 소위 또는 분과위원회를 통해 예산을 심의하도록 규정한다. 소소위란 명칭은 아예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심의 과정을 기록해야 할 법적 근거도 없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소소위가 기록을 남기는 식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형준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는 “아예 소소위 논의를 차단하거나 국회 증액 권한을 제한하는 방식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심희정 신준섭 기자 simcity@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