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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지 미드가 된 젠지 킬러

‘쵸비’ 정지훈, 지난달 한화생명 떠나 젠지 입단
“젠지와 방향성 일치해 입단 결심”

젠지 제공

‘쵸비’ 정지훈은 재밌는 인터뷰이다. 솔직해서다. 게임에 대한 지식이 유달리 해박한데, 그걸 미디어와 대중에 공개하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게임 외적인 질문을 해도 마찬가지다. 가식과 포장 없이 온전한 제 생각을 털어놓는다.

6일 서울 강남구 젠지 사옥에서 그를 만났다. 올해 이적시장 최대어로 불렸던 그는 지난달 젠지 유니폼을 입었다. 왜 젠지였을까. T1과의 ‘2021 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8강전 이후 약 한달반 만에 미디어 앞에 선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전보다 키가 큰 것 같다’고 말한다”며 웃어 보였다.

-롤드컵 일정을 마무리한 지 약 한달반 만이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거의 집에만 머물며 푹 쉬었다. 집 컴퓨터로 ‘리그 오브 레전드(LoL)’가 잘 실행되지 않아 다른 게임을 많이 했다. 주로 ‘APEX 레전드’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열심히 하니까 실력이 느는 게 체감돼 재밌더라.”

-롤드컵 8강에서 2021시즌을 마쳤다. 롤드컵 선발전에서 접전 끝에 2대 3으로 패했던 상대 T1과 다시 만났지만 이번엔 완패를 당했다. 한 달 새 두 팀에 어떤 변화가 있었기에 0대 3 패배를 당했다고 보나.
“T1은 확실히 선발전 때보다 잘하더라. 잘 연습해 왔다는 게 느껴졌다. 각 라인의 구도에 따른 지식이 풍부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8강까지 위태위태하게 올라오기도 했고, 발전이 더뎠다. 구도 데이터 싸움에서도 상대에게 밀렸다.”

-지난달 16일 FA를 선언하고, 젠지로 이적했다. 왜 FA를 선언했고, 왜 젠지를 선택했나.
“시장에서 가치를 평가받고 싶어 FA를 선언했다. 내가 지금까지 이뤄온 것들로 시장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지가 궁금했다. 젠지로 마음을 정한 건 두 가지 때문이다. 첫째는 조건이 좋았고, 둘째는 젠지가 제시한 방향성이 평소 내가 갖고 있던 가치관과 잘 맞았다.”

-젠지가 제시한 방향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나는 LoL을 할 때 내게 더 나은 방법과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그 사람의 말을 납득하고 수긍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건 싫다. 그래서 ‘스코어’ 고동빈 감독님처럼 프로게이머 경험이 풍부한, 게임 이해도가 높은 지도자와 함께하고 싶었다.”

-고 감독은 현역 시절 ‘여우’로 불렸을 만큼 게임 이해도가 높다는 평을 받았지만 지도자로서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뗐다. 이에 대한 팬들의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고 감독과 스크림 후 피드백을 해보니 어떻던가.
“실제로 얘기를 나눠보니 나와 감독, 코치님이 바라보는 방향이 비슷한 거 같다. 때로는 내가 혼자 생각했던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을 제시해주시더라. 앞으로 더 넓은 시야로 게임을 바라보고, 발전할 수 있을 거 같다.”

-‘도란’ 최현준과는 1년 만에, ‘리헨즈’ 손시우와는 2년 만에 다시 호흡을 맞춘다. 전 동료가 있어 호흡을 맞추기가 상대적으로 편한가. 아니면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인가.
“최현준과 손시우가 있어 편한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 게임은 5명이 함께하는 것이다.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하고자 한다. 처음으로 팀이 된 한왕호와 박재혁은 LoL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더라. 스크림을 해보면 확실히 게임이 잘 굴러감을 느낀다. 훗날 난제에 부딪쳐도 금방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간 ‘쵸비는 유독 젠지에 강하다’는 평가가 있었다. 본인도 동의하나.
“내가 젠지 상대로 유독 강한 모습을 보였던 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냥 컨디션이 특별하게 좋았던 건지, 아니면 실제로 팀과 선수 간 상성이 존재하는 건지…. 사람 일은 참 모르겠다.”

-게임에 프리시즌 패치가 적용됐다. 눈여겨보는 변화가 있나.
“새 시즌 대비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확답을 드리긴 어렵다. 우선 AP 아이템이 상당히 좋은 것 같다. ‘치명적 속도’ 룬을 사용하는 요네와 야스오도 너무 강력하다. 드래곤 2개가 새로 추가돼 새로운 드래곤 영혼의 효과를 알아보고 싶은데, 요즘엔 솔로 랭크를 하면 무조건 ‘15 GG’가 나와서 도무지 알 도리가 없다. 데이터가 부족한 상황이다.(웃음)”

-서구권에선 화학공학 드래곤 등장 이후 바뀌는 지형지물이 불합리하다는 불만도 나온다.
“아, 나도 스트레스받는다. 내가 오랫동안 LoL을 해오며 쌓아온 개념 자체가 바뀌는 느낌이다. 분명 내가 가진 데이터에 따르면 특정 플레이를 해도 되는 자리였는데, 최근 화학공학 드래곤 효과가 적용된 협곡에서 그 플레이를 시도했다가 낭패를 봤다. 새로운 현상금 시스템도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역전이 너무 쉬워졌다. 예전엔 리드를 잡고, 게임을 굳히는 단계에서 실수가 나와 역전을 당했다. 요즘엔 실수가 아니라 교환만 해도 이기고 있던 팀의 기분이 나빠진다. 어떻게 게임을 해야 할지 알기 어렵다.”

-라이엇 게임즈가 ‘굳히기’를 싫어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확실히 싫어하는 거 같다. 유리한 상황일 때 상대보다 더 빠르게 속도를 내거나, 더 많은 타워를 철거하거나, 더 빠르게 턴을 가져가는 걸 개인적으로 선호한다. 지금은 상대가 우리보다 늦게 턴을 써도 반대쪽 라인에 인원수를 똑같이 배치하면 골드 차이가 좁혀진다. 유리한 쪽에서 굴리기가 어렵다.”

-개인의 기량은 정점에 다다른 듯하다. 갓 데뷔했을 때와 비교하면 어떤 차이가 있을까.
“기본기가 더 좋아졌다. 2018~2019년엔 ‘턴(turn)’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졌는데, 지금은 스스로도 높다고 자부한다. 2019년까지는 그냥 라인을 극한까지 밀곤 했다. 지금은 한 라인 더 밀 수 있어도 기회를 포기하고 팀원들과 턴을 맞추는 플레이를 한다.”

-그렇게 플레이하게 된 이유가 있나.
“동료들과 턴을 맞추는 게 팀 게임에선 더 효율적이라는 걸 체득했다. 그러기까지 경험하고, 납득하는 과정을 거쳤다. ‘내가 언제나 정답’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늘 ‘이 플레이가 정답일 수도, 저 플레이가 정답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그중 가장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룬 연구를 유독 골똘히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는 이 게임을 플레이할 때 실수는 병가지상사라고 생각한다. 매번 기계처럼 플레이해서 이길 수는 없다. 실수를 저질러도 이길 수 있도록 환경에 변화를 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룬, 아이템 빌드, 스킬 터득 순서를 바꿔보는 수밖에 없다.”

-작년에 젠지 상대로 선보였던 ‘칼날비’ 에코가 인상 깊었다.
“선수마다 색깔과 개성이 있지 않나. 나는 룬 연구란 색깔이 짙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기민한 발놀림’ 아칼리나 ‘콩콩이’ 루시안이 기억에 남는다. 아, 나중에 다시 대결해보니 칼날비 에코는 칼날비 아지르한테 지더라. 그땐 순전히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딜러와 AP 메이지 모두 숙련도가 높다. 어떤 종류의 챔피언을 더 선호하나.
“나는 사실 딜러를 좋아하지 않는다. 딜러를 플레이하면 한 끗 차이 싸움이 나오기 쉬운데, 개인적으로는 한 끗 승부를 즐기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동시에 딜러를 잡았을 때 항상 유리한 구도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다. ‘뭘 잡아도 상관없다’는 주의다.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근접 AD 챔피언인데, 성능은 AP 메이지가 더 좋다고 생각한다.”

-AP 메이지 중에서도 오리아나 숙련도가 특히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리아나 장인으로 알려진 인터넷 방송인 ‘도파’도 정 선수의 오리아나 플레이를 높게 평가하던데.
“‘도파’와 ‘루키’ 송의진 선수의 플레이를 많이 챙겨봤다. 오리아나는 디테일이 정말 많이 필요한 챔피언이라고 생각한다. 구체의 위치 선정, 상대와의 거리 조절, 그 두 가지를 신경 쓰는 와중에 CS를 수급하는 집중력, 구체의 다음 위치에 대한 고민…. 신경 쓸 게 정말 많은 챔피언인데, 내가 디테일한 플레이에 일가견이 있다 보니 좋은 평가들을 해주시는 것 같다.”

-왜 하필 두 사람인가.
“모든 선수의 오리아나 플레이를 참고했다. 정답을 찾기가 정말 어려운 챔피언이더라. 두 사람을 언급한 것은, ‘루키’ 선수가 공격적인 오리아나 플레이를 가장 잘해서다. ‘도파’는 안정적인 플레이를 잘한다. ‘반반 구도로 게임을 풀어나가면 나중에 상대보다 잘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느껴지는 플레이를 한다. 그 두 사람의 플레이를 많이 참고하면서 나만의 것을 찾아 나갔다.”

-롤드컵에 글로벌 밴 됐던 챔피언, 벡스와 아크샨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두 챔피언을 배제하고 롤드컵 연습을 해서 아직 데이터가 부족하다. 아크샨은 솔로 랭크에서 만나 보니 라인전이 정말 강력하더라. 챔피언을 잘못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벡스는 초반 라인전이 강력한데, 첫 귀환 후엔 대미지가 조금 애매한 것 같다. 니코가 처음 나왔을 때를 보는 것 같다. 플레이 방식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하고, 상대가 마법저항력 아이템을 갖추면 힘이 확 빠진다.”

-각 팀의 내년 로스터가 서서히 공개되고 있다. 특히 경계하는 팀이 있나.
“솔직하게 정말 잘 모르겠다. 다들 로스터가 많이 바뀌지 않았나. 단순 느낌에만 의존해서 말씀드리자면 T1과 담원 기아는 내년에도 잘할 것 같다. 항상 상위권을 유지하는 팀들에겐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머지 팀들도 서로 ‘할 만하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2022시즌이 곧 시작된다. 임하는 각오를 알려 달라.
“프로 선수의 시즌은 개막일이 아니라 겨울 휴가가 끝난 다음 날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시즌에 들어가자마자 잘하려면 지금부터 예열을 해놔야 한다. LoL에 빗대자면 12월은 이미 우물에서 출발해 미니언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는 시기다. 지금부터 열심히 준비하겠다.”

-끝으로 인터뷰를 통해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여태까지 잘해 왔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팬들께 앞으로도 계속 잘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게임 말고 다른 방법으로도 저를 보여드리고 싶다. 프로게이머 ‘쵸비’ 말고 인간 정지훈의 모습도.”

-기부를 자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유가 있나.
“어머니의 교육 영향이 가장 크다. 늘 기부의 선한 영향력에 대해 말씀하신다. 내가 돈을 헤프게 쓰는 편이 아니다 보니 남는 돈을 기부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기부로 누군가가 행복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지 않겠나.”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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