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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표 교수의 연극人 이야기]내면의 콤플렉스를 연기로 극복한 영원한 배우 지춘성


“제가 카톨릭 모태신앙인데, 배우 이름은 스님 역할로 유명해졌네요.”

1991년도 연우무대 <동승>(박원근 연출, 연우소극장)에서 도념으로 분한 서울연극협회 회장 지춘성(57)은 스물일곱살이었다. 3남 5녀 막내는 동자승으로 완벽하게 분하면서 그해 연극계 스타가 된다. 이 작품으로 15회 서울연극제(자유참가작 부문)에서 ‘남우주연상’과 이듬해 제28회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인기상’을 수상하며 영원한 ‘동승’(童僧)으로 각인(刻印)되었고 30년이 흘러도 동승의 기억은 소환되고 있다.

“제가 카톨릭 모태신앙인데, 배우 이름은 스님 역할로 유명해졌네요.(웃음)”
1992년도에 부산 가람아트홀에서 <동승>을 본 적 있다. 그는 동자승으로 분했고, 지춘성 연기는 여전히 선명(宣明)하다. 지춘성은 그만의 특별한 연기로 무대를 그려냈고, 심리적인 슬럼프도 겪었다.

“캐릭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표현할 수 있는 분명한 캐릭터가 있어서 좋죠. 인생 절반을 도념으로 바라보는 시선과 삶으로 살았다면 이제는 무감각해졌어요.”

나이 50에 지춘성은 어린 시절 역할에 다시 도전한다. 작품 <알리바이 연대기>(2013, 김재엽 연출)에서 1인 다역으로 분해 주인공 극중 인물들의 삶의 연대기를 소년시절로 그려내 ‘연기상’(제35회 서울연극제)과 이듬해 ‘올해의 연극인상’ (2014, 희서연극상)을 받았다.

두 번의 상을 아동 역과 어린 시절 연기로 받게 된 셈이다.
“대학부터 아동 역에는 두각을 나타냈어요. 김석만 선생께서 연기를 잘한다는 소문을 들으셨는지 동승 대본을 보내주시고 역할을 맡으면 잘 할 수 있다고 하게 된 거죠.”
연극 <동승>은 연극무대로 알린 작품이 되었고 <알리바이 연대기>는 지춘성 만이 표현할 수 있는 연기로 그의 대표 작품이 되었다.

“연극 <동승> 작품이 대단했어요. 희곡, 배우, 작품성도 좋다고 입소문이 나면서 연우소극장 작품으로는 대박이 났어요. 연극 전공자도 몰입해서 볼 정도였고요. 30년이 넘어도 곁을 영원히 떠날 수 없는 작품이 된 거죠. <알리바이 연대기>는 지춘성이가 잘 할 수 있는 역할과 연기에 확신을 준 작품이죠.”
두 작품 얘기를 꺼내면서 그의 표정은 천생 배우의 얼굴과 감정을 드러내며 변했고 손동작도 다양했다. 그가 출연한 공연 연보를 봤다. 80여 작품 역할은 다양했다.


| 아동역으로 두 번의 연기상을 받은 배우 지춘성 “대한민국에서 지춘성만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가 있다는 것은 배우로 행운이죠”

-인터뷰 장소로 걸어오는 지춘성은 세련된 세미 정장을 하고 들어섰다. 어린 시절 콤플렉스는 연기의 근육으로 바뀌어 있었고 영원한 배우로 성장시켰다. 녹음 버튼을 누르면서 물었다. “콤플렉스가 지춘성만이 표현할 수 있는 배우로 성장시켰군요.”

“어려서 소설 <양철북>의 주인공 ‘오스카’라는 내면의 콤플렉스가 있었어요, 극복하고 싶었고 배우로 장점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이 있었던 것 같아요. 연기가 적성에 맞았는지 중학교 때는 ‘영어촌극대회’에서 2년 연속 최우수 연기상을 받았어요. 고등학교 때 문예반을 하면서 ‘철학과’를 다니고 싶었죠. 성당 선배들이 철학은 할 게 없다고 하고, 귀동냥으로 들리는 말이 “지춘성은 재능이 있으니 배우가 돼라”라는 소리를 듣고 그 삶을 살게 된 것 같아요.”

중앙대학교에서 연극을 전공한 탤런트 손현주와 지춘성은 대학 동기다.
“대학실기에서 합격을 예상했는지” 물었고 그는 웃었다. “붙을 거는 생각 못 했어요. 교수님들께서도 고민을 하셨대요. 지춘성이가 캐릭터가 분명하니까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합격을 시켰다고 대학 다니면서 들었는데, 적중(的中)하신 거죠.(웃음)”


-대학에서 10여 편을 공연하고 연극만 하던 시절 지춘성은 ‘붙임성’이 좋았다고 평가하던데.

선배들 쫓아다니면서 연극 열심히 하면서 대학 생활을 했어요. 많은 작품을 하고 졸업을 했는데 현장 나가면 배우로 자신이 생기더라고요. 연극 현장에 나오니까 선배들이 “연기는 수학처럼 공식은 없지만, 무대에서 정밀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게 가슴에 남아요. 그 마음으로 연극을 대하고 배우에 임하고 있죠. 40년을 배우를 해보니까 ‘진심’이 있어야 한다고 느껴져요. 연기 표현의 ‘진심’ 보다는 연극을 대하는 모든 것들로서 ‘진심’이 담겨있어야죠. 그게 배우로서 철학이 됐죠.”

88올림픽이 개최되던 해 대학을 졸업하고 현대극단 <레미제라블>에서 거리의 소년 가브로슈 역할을 맡았고 계몽아트홀에서는 <피리 부는 사나이>(1988),<해피프린스>(1990)를 공연하면서 초년병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연극 동승으로 연극배우로 일약 스타가 된 그는 1992년부터 김아라 연출의 극단 <무천>에 창단 단원으로 합류했다. 배우 신구, 정동환, 古)윤소정 씨 등이 김아라 연출과 함께하던 시절이었다. <숨은 물> (1992),<우리가 서로를 알지 못했던 시간>(1993), <오이디푸스의 여행>(1995) 등에 참여했고 영화배우 강수연이 공연한 연극 <메디아>(1995)를 기획했다.

“배우도 하고 기획도 할 때였어요. 창단 단원이고 책임감이 컸었죠. 당시 김아라 연출은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연출가셨고요. 공연되는 작품들이 연극계에 큰 반향을 불러왔을 때였어요. 그런 연출가가 극단에서 창단 단원으로 같이 하자고 했을 때 배우로 인정을 받은 느낌이었죠.”

김아라 연출이 경기도 안성에 야외극장을 만들고 죽산(竹山)으로 갈 때 극단 무천 활동을 정리했다. 이 무렵부터 지춘성은 대학로 연극무대를 잠시 떠나게 된다.
“95년도에 결혼을 하게 됐어요. 극단도 안성 죽산으로 내려가면서 프리랜서 활동을 하게 됐죠. 남편으로 책임감도 생기면서 경제 문제를 책임지려고 먹고사는 일을 했었어요.”
<숨은 물> 초연 공연 책자가 책장에 있었다. 90년대에는 샘터 파랑새 극장에서 아동극을 보고 저녁에는 대부분 극단이 하루 2회 공연 4시 30분, 7시 30분 공연을 하던 시대라 하루 세 편 이상을 극장을 옮기며 공연을 볼 수 있었다.

이 시기에 김아라 연출의 <에쿠우스>(1990), <사로잡힌 영혼>(1992), <숨은 물> (1992), <우리가 서로를 알지 못했던 시간들> (1993) 등의 작품을 봤다. 공연 안내 책자를 꺼냈다. 극단 무천 창단공연으로 체육대회를 하던 사진에서 뛰며 결승점으로 들어서는 지춘성 얼굴이 보였다. 사진을 보내주자 이모티콘이 날아왔다. 이 무렵부터 대학로 연극무대를 잠시 떠나 있었던 지춘성은 TV로 무대를 옮겼다. 어린이 간판 프로그램인 MBC ‘뽀뽀뽀’에서 콩트를 연기하는 배우로 고정으로 출연을 했고 타 방송사 어린이 프로그램에서는 동물 캐릭터 ‘탈’을 쓰고 등장하기도 했다. MC도 맡는 등 프로그램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던 때였다.


“생활이 안정되어야 연극을 하면서도 배우로 자존심을 갖고 버틸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한 7년 연극을 쉬면서 대학로를 나갔는데 후배들이 워크숍 공연 전단을 주는 거예요. 그때 ‘배우로 잊혀 갈 수 있다’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지춘성이 잘 할 수 있는 게 연극이고, 연기인데 무대로 돌아가서 승부를 보겠다고 하니까 아내도 격려해주는 겁니다. 그때부터 다시 2막 연기 인생을 걷게 되었어요.”

| 동승의 도념으로 지춘성을 알리고 2002년 복귀작도 스님 역할로 돌아온 그는 80여 작품에서 다양한 역할과 연기를 소화해 냈다.

‘대학로’로 돌아온 지춘성은 복귀작 <그것은 목탁 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다>(2002, 이만희작)에서도 ‘월명스님’역 이었다. 이후 연극, 뮤지컬, TV 드라마 등 50여 작품을 이어오면서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 냈고 2010 서울국제공연예술제 10주년 기념공연으로 이오네스코의 대표작품 <코뿔소>을 프랑스 대표적인 전 방위연출가이자 아비뇽 할 극장 대표 알랭티마르(Alain Timar) 연출로 한·불(韓佛) 공동 창작 작품 <코뿔소>에 배우로 출연했고 작품은 주목을 받았다. 코뿔소로 변해가는 인간의 집단적 광기를 실험적인 무대로 그려냈고 극중 인물 ‘베랑제’만이 코뿔소가 되기를 저항하며 보이지 않는 권력에 인간을 지켜내려는 처절한 역동성 들을 그려냈다.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이 작품은 2년 연속 ‘아비뇽연극제’ 에 참여하면서 국내 배우들의 열연과 작품성을 인정받게 된다.

- <풍찬노숙>(2012, 김재엽 연출)에서는 꼽추로 분한 정곱사 역으로, <후회하는 자들>(2019, 연출 류주연)에서는 성 전환 수술 후 성별이 바뀌어 살아가는 트렌스젠더로 분하면서 지춘성은 동승의 배우에서 다양한 역할을 그의 연기로 소화하는 배우로 걸어왔다. 그는 물 한 컵을 마시고는 팔짱을 끼고 말을 이어갔다. “7년 만에 돌아온 대학로 복귀작도 스님 역할이었군요.”

“제가 카톨릭 모태신앙이에요.(웃음) 배우로 이름이 알려진 것도 스님 역할이고, 복귀작도 우연히 <그것은 목탁 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다> 에서도 월명스님을 맡았어요. 처음에는 연기의 한계보다는 캐릭터의 한계가 배우로 생기는 것 같아 아역과 노역 맡는 것을 신중하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요. 배우 인생에서 지춘성만 표현할 수 있는 특수한 캐릭터가 존재한다는 것은 멋진 일이라고 생각해요. 대한민국에서 이 배역은 제일 잘한다는 은근한 마음도 있었고요. 아직 제 외모가 배우로 쓸모가 있다는 거죠. (웃음)”


- 이후 한 10년이 지나고는 <알리바이 연대기>에서 어린 시절 역할로 마지막 승부수를 걸었고, 이 작품으로 연기상을 받았어요. 두 번의 연기상을 작품이 다른 아동 역할로 받는다는 것은 한국 연극사에도 매우 이례적인 것 같은데….

“제가 아동 역할을 안 받아들였다면 힘들었을 겁니다. “숙명이구나” 생각했죠. 지춘성다운 옷을 입는다고 생각했어요. 김재엽 연출이 고집도 있고 배우가 표현할 수 있는 범위를 넓게 바라보는 연출입니다. 배우와 연출이 설득하고 이해시키면서 극 중 인물을 만들어나갔고 남명렬 선배하고도 오랜만에 작품을 하게 되어서 참 편하게 했던 작품이에요. 뭐랄까요. 작품을 하면서 행복해 본적이 없는데 <알리바이 연대기>는 분장실에서 메이크업을 지우면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의 표정은 연극 <알리바이 연대기>가 배우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준 최고의 작품으로 느끼게 했다.

“공연을 올리고 한 2~3일이 지났나요. 분장실에서 공연을 끝냈는데 눈물이 흐르는 겁니다. 작품성도 좋았지만, 배우로 무대에 선다는 게 정말 행복한 작품이었어요. 작품을 만들고 공연한 시간이 행복했어요. 연습도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푸른 잔디를 바라보면서 했어요. <변방연극제>에 팀에서 월드컵 경기장 내 시설물 일부를 연습실로 운영한 적이 있어요. 경기장 4층에 귀빈실이 있는데, 서울시에서 경기장 시설들을 경기 없을 때 다용도로 사용했고 연극인들한테 일부를 개방했어요. 하루 만 원을 받았는데, <알리바이 연대기>가 월드컵 경기장 귀빈실에서 연습했던 작품입니다. (웃음) ”

-남명렬 배우하고도 이 작품으로 20년 만에 공연하게 됐죠.

“명렬이 형이 대전에서 활동할 때 작품을 보고 처음 만났어요. 그 뒤로 극단 무천 창단을 하면서 형이 극단 작품을 자주 보러 왔어요, 단원은 아닌데 극단에서 함께 작업을 많이 했고 <오이디푸스 여행>을 같이 했어요. <알리바이 연대기>로 20년 만에 같은 무대에 섰는데 영광이죠. 연극무대에서는 스타 배우가 되셨잖아요(웃음)”

| 서울연극협회 회장 지춘성 “공정(公正)하고 회원들 모두 형평성이 있는 협회가 되어야 한다.”

대학로를 중심으로 배우 활동을 하던 지춘성은 서울연극협회 회원이었다가 2010년부터 서울연극협회 이사를 거쳐 2016년도에는 부회장을 맡으면서 연극 행정과 조직 관리에도 재능을 보였다. 2019년에는 현재 화원 4,389명의 서울연극협회장이 된다.
“조직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연극계 복지 사각지대를 배우로 대변(代辯)해 발전시켜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서울연극협회 이사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제가 복지 분과 이사를 맡고 도입한 것이 근조기(謹弔旗)를 보내는 첫 사업이었어요. 연극 동료들이 힘들 때 곁에 협회가 있다는 존재감을 보이고 연극인 회원들과 같이하고 싶은 마음으로 도입된 건데, 여전히 시행하고 있어요. 언제나 연극계 소리를 듣고 뛰어다니려고 하고 있어요.”


그는 서울연극협회 회원 중 최장수 임원이라고 웃었다. 그는 서울연극협회 회장을 맡으면서 변화를 이끌었다. 대표적인 사업(서울연극제, 서울청소년연극제, 서울미래연극제, 대한민국연극제 서울대회)은 예산들이 증가했고 안정적인 연극축제로 지원사업프로그램도 풍부해졌다. 예술감독제를 도입하고 있는 ‘서울연극제’는 김승철 연출 체제가 되면서 작품성이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김수정(생활풍경), 서지혜(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 등 한국연극을 견인할 만한 연출가들을 서울연극제에서 발굴했다는 평가다. 미래연극제는 젊은 연출가들의 실험적인 현대적 작품들과 연출들의 연극제가 되고 있다. 연극인 자녀 입학축하금 프로그램도 연극인들한테 좋은 인상을 주고 있다.

-‘배우’보다는 ‘연극 행정’ 분야가 더 익숙해진 것 같군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죠. 이사, 부회장, 회장을 거치면서 자리에 욕심을 내본 적은 없어요.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한 게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 회원들 불만이 없어지려면 ‘공정’(公正)하고 회원들 모두 형평성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 두 가지에 초점을 맞추고 방향을 잡고 해왔습니다. 서울연극협회 상임 직원들도 묵묵하게 연극인들만 바라보면서 잘 견디고 맡은 일들을 잘해 주었고요.”

-특히 올해 “미래연극제” 작품 중에 가능성이 있는 수작(秀作)들이 보이던데.

“작년까지도 미래연극제 집행 예산이 부족했어요. 다행히 올해 예산이 늘어나면서 지원금이 예년보다 높아졌으니까 작품도 창작자도 작품을 만드는 활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지금까지 미래연극제 참가 작품과 배우들 그리고 연출들이 묵묵하게 견디어 주셨어요. 올해 미래연극제 다행히도 작품들이 좋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올해 제11회 서울미래연극제는 2010년 서울연극제 신진연출가 프로그램 ‘미래야 솟아라’로 출발해 2017년부터 독립연극제 ‘서울미래연극제’로 치르고 있다. 총 54편의 신청 작품 중 최종 5편이 선정되었고 2020 밀양공연예술축제 차세대 연출가전에서 미래상(작품상)을 받은 공연예술창작소 호밀의 <연필과 지우개)(연출 윤광희)와 2021 제42회 서울연극제 단막 스테이지에서 호평을 받은 창작공동체 아르케 <구멍>(연출 김승철) 두 작품이 공식 초청되었고 5편의 차세대연출가들의 실험적인 작품들이 공연되었다. 한국 설화인 ‘바리데기’를 모티브로 한 1인극 <발이 되기> (극단적인 승우, 연출 이승우)가 올해 대상(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과 연출상을 받았다.

- 올해 대상 작품을 ‘아비뇽 연극제’ 참가작으로 추진하고 있다고요.

생각만 하고 있죠.(웃음) <발이 되기> 작품이 한국적인 신화와 굿, 설화를 모티브로 해서 1인극으로 발칙하게 표현했어요. 소재도 한국적이고 공연 형식도 제의(祭儀)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만든 작품입니다. 아비뇽은 <코뿔소>를 공연할 때 연출과 인연이 있었고요. 우리 연극들이 세계로 더 많은 작품이 공연되어야 한다는 간절한 바람도 있고요. ‘아비뇽 가자’ 하면 문화 사대주의처럼 비추어질 수도 있는데, 서울연극협회 수장으로 좋은 작품일수록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서울연극협회가 앞으로도 젊은 연극인들한테 사다리가 되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서울연극제도 한국 사회의 이슈와 현상의 문제들을 다양한 시선의 작품들로 올려지고 있더군요. 특히 올해 서울연극제는 김수정 연출의 <생활풍경>과 <붉은낙엽>(연출 이준우)이 눈길을 끌었어요. 연극적 반전과 비극적인 서사를 섬세하게 무대로 구현하려는 <붉은 낙엽> 연출은 앞으로 기대가 되더군요.

“서울연극제가 작품을 수용하는 다양성 관점에서 작품들이 많은 성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전임 예술감독과 남명렬, 김승철 연출이 분명하게 연극제의 방향성을 잡고 잘해 주셨고 여전히 잘 이끌어 가고 있고요. 작품으로 우열을 가리기가 정말 힘들어요. 시각에 따라 평균적인 작품들일 수도 있죠. 그런데 연극축제의 결과는 수상 결과로 연극축제의 성격을 드러내야 하는데 그때가 마음이 아프죠.”

그는 내년 1월까지 서울연극협회장 임기가 끝나면 미련 없이 ‘배우 인생’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배우는 선택 받는 입장이잖아요. 젊을 때 바쁘게 선택 받으면서 살았는데 지금부터 제가 그럴 수 있을지 걱정이 돼요.”

지춘성은 다시 태어나면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놀란 표정을 보이자 “어, 저 축구 정말 좋아해요. 우리 시대는 ‘펠레’였잖아요. 아버지가 50세에 절 낳으셨는데 얼마나 귀여우셨겠어요. 축구공을 선물하셨죠. 볼을 차고 운동장을 뛰면 모든 걸 잊게 돼요. 뛰고 달리면 마음이 편안해지죠. 저, 축구 잘합니다.(웃음) 요즘 손흥민 좋아하죠.” 내년 1월에는 서울연극협회장 선거가 있다. “서울연극협회 정책도 발전적으로 이끌면서 연극인들과 소통과 화합을 이룰 수 있는 리더십 있는 분이 되셨으면 해요.”

30년 전 동승의 도념 지춘성은 3살 때 스스로 성장을 거부하며 항상 북을 치며 부조리한 현실에 저항한 <양철북> 주인공 오스카가 아니었다. 그의 표정과 무대의 연륜은 수 백 가지의 극 중 인물의 캐릭터와 감정을 담아낼 수 있는 표정과 연기의 근육으로 바뀌어 있었다. 단단한 키는 영원한 배우 지춘성으로 돌아와 있었고 무대에서는 운동화 끈을 묶고 달리고 싶어 하는 소년이었다.







연극평론가(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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