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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령 포기’ 앨범 판매라니… 비뚤어진 아이돌 사랑

[모두가 지구의 사람들] 예쁜 앨범, 얼마나 많이 사세요?

지난 7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교보문고 핫트랙스에 대중음악 앨범들이 진열되어 있는 모습. 한은진 인턴기자

사상 처음으로 국내 대중음악 앨범 판매량이 5000만장을 넘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 판매량인 2500만 장을 훨씬 뛰어넘는 수치다. 가온차트는 “해외 수출 판매량의 증가” 때문이라며 “2020년에 팔린 4200만장의 앨범 중 2500만장이 해외에서 팔렸다”고 밝혔다. 세계로 나아가는 케이팝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지만 뒷맛은 씁쓸하다. 음원 스트리밍 횟수가 많아지면서 CD플레이어의 인기는 줄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CD가 포함된 앨범의 판매량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케이팝 팬들은 앨범 판매 증가가 당연하다고 입을 모은다. 남자 아이돌 가수의 팬이라고 밝힌 김소연(가명·27)씨는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 판매량은 음원 판매량과는 또 다른 영역”고 주장했다. 그는 “듣지 않을 앨범을 구매하는 데에 죄책감을 느끼지만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 판매량을 올리는 게 중요하다”며 “앨범을 많이 살수록 팬사인회 응모권도 많아지고, 가장 좋아하는 멤버의 포토카드를 구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그룹 블랙핑크가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를 맞아 영상 메시지를 남긴 모습. 블랙핑크 유튜브 캡처

케이팝 스타들은 환경보호에 관심이 많은 MZ세대에 걸맞게 선한 영향력을 펼치고 있다. 환경 파괴적인 앨범 생산을 막고자 가수 청하와 송민호는 친환경 소재로 앨범을 만들었다. 그룹 블랙핑크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를 맞아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변화에 동참하자”고 말했다. 케이팝을 이끄는 가수들의 친환경 외침과는 다르게 엔터테인먼트 회사 및 팬들의 친환경을 향한 발걸음은 아직 부족하다. 환경보호가 청년 세대에게 가장 중요한 의제가 된 요즘, 케이팝 앨범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소비되는지 알아보았다.

예쁘고 화려한 앨범… 답 없는 처리 방법

서울 송파구 잠실동 교보문고 핫트랙스에 인기 아이돌 앨범이 진열된 모습. 왼쪽은 엔시티 드림의 정규 1집 앨범 ‘맛 (Hot Sauce)’, 오른쪽은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미니 2집 앨범 ‘꿈의 장: ETERNITY’(오른쪽). 한은진 기자

케이팝 아이돌 팬이라고 밝힌 김유정(26)씨는 “예쁘게 나온 앨범 디자인은 소비 욕구를 자극하는 요소 중 하나”라고 말했다. 기자가 직접 앨범 매장에 방문해보니 저마다 다른 크기와 형형색색의 앨범 디자인들이 눈길을 자극했다. 그룹 엔시티 드림의 정규 1집 ‘맛 (Hot Sauce)’은 비닐로 앨범 내용물을 포장해 이색적인 매력을 안겼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미니 2집 ‘꿈의 장: ETERNITY’은 마치 비밀 일기장과 같은 느낌을 주도록 자물쇠와 열쇠를 포함했다.

방탄소년단의 정규 3집 앨범 ‘LOVE YOURSELF 轉 'Tear'’의 내부 모습. 한은진 인턴기자

화려한 앨범 이면에는 번거로운 분리 과정이 숨어 있었다. 앨범을 버릴 경우 비닐로 된 포장지와 CD 케이스, 종이 등을 따로 분류해야 한다. 앞서 제시된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앨범을 버릴 경우 부착된 자물쇠와 열쇠고리를 뜯어야 한다. 대부분의 음악 앨범들은 투명 폴리염화비닐(PVC)로 이루어져 있다. 고화질로 사진을 인쇄하기 위해 염색용지를 사용해 코팅 처리까지 한다. 이렇게 만들어지면 재활용이 어려운데다 불에 타면 염화수소가스가 나와 몸에 해롭다. 방탄소년단의 정규 3집 앨범 LOVE YOURSELF 轉 ‘Tear’은 포토카드를 만들기 위해 양면 비닐코팅 종이를 쓰고 앨범 안의 책자를 위해 스테이플러를 사용했다. 앨범 분리수거를 어떻게 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유정 씨는 “사실 분리수거가 까다롭고 방법도 잘 몰라 일반쓰레기통에 버리거나 종이 쓰레기통에 그냥 넣는다”고 털어놨다.

수령 포기까지… 남은 앨범 처리는 누가?

가수 김요한의 팬이 그룹 엑스원의 앨범을 대량으로 구매한 사진. 페이스북 페이지 아이돌이슈 캡처

최근 케이팝 팬들 사이에서 앨범을 과하게 사는 문화를 지양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의 판매 정책 아래에서 팬들의 대량 소비를 막기는 쉽지 않다. 팬들은 앨범을 많이 살수록 앨범에 있는 팬사인회 응모권을 많이 얻을 수 있어 팬사인회 당첨 확률이 높아진다. 앨범에 포함된 포토카드는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비싼 값에 팔리곤 하는데 앨범을 많이 살수록 좋아하는 멤버의 포토카드를 얻기 쉬워진다. 요즘에는 앨범 발매 첫 주 판매량을 뜻하는 ‘초동’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앨범 발매 초기에 대량 구매를 독려하는 모습이 크게 잦아졌다.


한꺼번에 많이 산 앨범들을 처리하기 힘든 팬들을 위해 앨범 수령을 포기하라는 선택지가 생겼다. 한 아이돌 가수의 팬사인회 응모 홈페이지에는 응모권만 받을 수 있도록 앨범 수령포기 칸이 만들어졌다. 일부 가수들의 팬사이트들은 아예 “앨범 판매량을 늘리고 싶지만 받기를 원치 않는 경우에는 기부 공동구매에 참여하라”고 못박았다. 기부 공동구매로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 판매량을 늘리고 포토카드와 팬사인회 응모권은 받되 공간을 차지하는 앨범 실물은 다른 곳에 보낼 수 있다. 기부하는 팬들의 입장에서는 순수한 의미가 담긴 행동일 수 있지만 비판 여론은 만만치 않다. 기부되는 앨범 대부분에 포토카드나 팬사인회 응모권은 빠진 경우가 많아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짬처리다”, “쓰레기 처리하는 것이다”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최애 대체할 수 없듯… 지구도 대체 불가능하다

케이팝 팬들이 강원도 삼척 맹방해변에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에 반대하는 기후행동을 하고 있다. 케이팝포플래닛 제공

케이팝 팬들로 이루어진 기후행동 플랫폼 ‘케이팝포플래닛’은 “누구도 최애(가장 좋아하는)를 대체할 수 없듯, 지구 또한 대체 불가능하다”는 문구로 케이팝 팬들의 기후정의행동을 촉구한다. 케이팝포플래닛의 이다연 활동가는 “요즘 만들어지는 앨범들은 재활용이 불가능한 소재"라며 “분리배출방법 표기를 개선하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앨범 생산으로 인한 환경파괴를 막기 위해 친환경 소재로 앨범을 만드는 것을 제시했다. 이 활동가는 “가수 청하와 제이비도 친환경 소재로 된 앨범 제작에 동참해서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며 “생산자인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이 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산업을 바꿔나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스테이씨(위)와 지켜츄(아래) 유튜브 캡처.

MZ세대가 이끌어가는 케이팝 가수들은 환경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룹 스테이씨는 쓰레기 줄이기 챌린지를 진행하며 에코백과 다회용기를 쓰는 모습을 보여줬다. 가수 츄는 환경보호를 주제로 한 웹예능 ‘지켜츄’에서 분리수거 방법, 종이 빨대까지 다양한 환경보호 콘텐츠를 소개했다. 이제는 케이팝 팬들과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이 환경보호에 함께할 차례다. 앨범을 만드는 가수와 구매하는 팬 모두 마음 편히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친환경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한은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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