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만 타던 ‘미스터 고물’, 600억 기부 약속 지켰다

[단독인터뷰] 이주용 KCC정보통신 회장
서울대 문화관 건립에 100억원 기부 약정
“돈 버는 것보다 제대로 쓰는 게 어려워”


구순을 바라보는 이주용(86) KCC정보통신 회장은 1967년 국내 1호 IT서비스 기업을 창업한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다. 이 회장은 9일 서울대 문화관 건립에 100억원 기부를 약정하며 ‘생전 600억원을 기부하겠다’던 4년 전 약속을 지켰다. 그는 “내가 무슨 위대한 사람이라서 (기부)하는 건 아니다”라며 수줍게 웃었다.

이 회장은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돈은 버는 것보다 제대로 쓰는 게 더 어려웠다”고 말했다. 중학교 시절부터 그의 별명은 ‘고물’이었다. 당시 담임 교사가 붙인 별명이다. 학교에서 소지품 검사를 할 때마다 소년의 교복 주머니에선 못, 단추, 머리핀이 나왔다. 물자가 귀했던 6.25전쟁 당시 이 회장은 길 가면서 주워 담은 온갖 잡동사니를 챙겼다고 한다. 자라는 몸을 감안해 신발과 교복도 늘 헐렁했다.

미국 유학 후 한국에서 회사를 창업하고도 새 차를 산 적이 없었다. 한번 산 중고차는 10년씩 타고 다녔다. 아들인 이상현(55) 부회장이 수입차 사업을 시작한 2012년에야 이 회장은 새 차를 타봤다. 이 회장이 76세 때다. 이 부회장은 “내가 대학생 때 백화점에서 바지를 샀다는 이유로 아버지가 크게 혼낸 적이 있다”며 혀를 내둘렀다. 이 회장은 늘 서울 중구 평화시장에서 5000원짜리 바지를 사 입었다.

아내 최기주(78) 여사는 “이 사람은 미국에서도 ‘미스터 고물’이라고 해야 사람들이 누군지 알아들을 정도였다”며 “그래서 난 졸지에 ‘미세스 고물’이 됐다”며 웃었다. 최 여사는 “장을 볼 때도 ‘세일하는 품목이 아니면 안 된다’며 잔소리했던 남편이 나와 상의도 없이 사회에 몇백 억을 기부한다고 했을 때 솔직히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돈 있으면 기부하는 게 쉬워 보이지만 가족들의 지지가 없었다면 기부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이 회장은 2017년 ‘600억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울산시에 350억원을 기부한 데 이어 크고 작은 기부처에 150억원을 더 냈다. 남은 기부처를 고심하던 이 회장은 아들 권유로 서울대 문화관 기부를 결심했다.

이 회장은 “단순히 모교에 기부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한국 사회 인재 양성에 가장 필요한 곳에 투자를 하고 싶었다”며 “나 역시도 미국 근무 당시 백지수표를 제의를 받고도 ‘고국의 소프트산업을 육성하겠다’는 뜻을 품고 돌아왔을 정도로 한국 인재 발전에 관심이 크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앞서 상대적으로 지원이 열악한 인문학부 교수들을 지원하는 기금 약정도 했다.

이 회장 선친도 재산 상당수를 사회에 환원하고 떠났다. 1976년 울산에 주민들을 위한 시설을 지어달라며 체육관 건립에 토지 3800평과 건립비용 전액(1억3000만원)을 울산시에 기증했고 ‘종하체육관’이 설립됐다. 그는 청년 세대들에게 “당장의 월급보다 ‘내가 지금 어떤 일을 하는지’를 새기는 것이 중요하다”며 “나의 인생을 돌이켜보니 돈 보다도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지’ 고민했던 삶이었다”라고 전했다.

이 회장이 기부한 100억원은 내년 12월 착공에 들어가는 서울대 관악캠퍼스 내 문화관을 재건립하는 데에 쓰일 예정이다. 문화관은 지역 주민에게도 개방돼 문화예술 공간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신용일 기자 mrmonst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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